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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r 05. 2024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애니메이션 <어린왕자>  2015년

<어린 왕자>(1974), <어린 왕자>(1979), <어린 왕자>(2011)  

    

여섯 살 때 나는 <체험담>이라는 제목의, 원시림에 관한 책에서 놀라운 그림 하나를 본 적이 있다. 보아뱀이 맹수를 잡아먹는 그림이었다. 그 책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보아뱀은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켜 버린다. 그리고는 그걸 소화시키느라 꼼짝도 하지 않고 여섯 달 동안 잠을 잔다.”

그래서 나는 밀림 속의 신기한 모험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후 색연필을 가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림을 그려 보았다. 내 그림 제1호는 이런 것이었다. 

     

비행기 수리를 서둘러야 했던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쓱쓱 그림을 그려 놓고는 한 마디 툭 던졌다. 

“이건 상자야,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속에 있어.”   

  

내가 소행성 B612호에 대해 이렇게 번호를 붙이며 자세히 이야기하는 건 모두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얘기를 하면 어른들은 중요한 것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 친구의 목소리는 어떠니?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그 친구도 나비를 수집하니?”

이렇게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 애는 몇 살이지? 형제는 몇 명이니? 몸무게는? 아버지의 수입은 얼마지?”라고 묻는다.

그리고는 그걸로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갔던 어느 별에 얼굴이 빨간 아저씨가 있었어. 그 아저씨는 꽃향기를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대. 별을 바라본 적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어. 계산 말고는 해본 게 없었어. 하루 종일 그는 아저씨처럼 말했어.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진지한 사람이야!‘ 얼마나 잘난 척을 했는지 몰라. 그런데 그는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지!”       (P43)     

“나는 장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 장미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했어야 했는데, 장미는 내게 향기를 선물하고 내 삶을 눈부시게 밝혀주었는데, 그렇게 도망쳐 오는 게 아니었어! 딱한 거짓말 뒤에 숨겨진 장미의 마음을 알아차려야 했는데, 꽃들은 모순 투성이야! 난 너무 어려서 장미를 사랑할 줄 몰랐던 거야.”         (P49)     

“내 꽃은 덧없는 존재구나.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진 거라곤 가시 네 개가 전부야! 그런데 나는 그런 꽃을 혼자 두고 별을 떠나왔구나!”         (P87)


“그런데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린 서로 필요해진단다. 넌 내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나도 네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여우가 되고.”            (P105-106)     


“인내심이 필요해. 우선 내게서 좀 떨어져서 저쪽 풀밭에 앉으렴. 내가 살짝 곁눈질로 널 바라볼 거야. 넌 아무 얘기도 하지 마. 언어는 오해를 낳거든. 그래도 날마다 내게 조금씩 더 가까이 와서 앉아.”           (P107)  

   

“내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봐야 보인단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거든.”       (P111) 

    

“너는 여기 사는 아이가 아니로구나, 무엇을 찾고 있니?” 여우가 물었다.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런데, ’길들인다‘라는 게 뭐지?”

“사람들은 총이 있는데 그걸로 사냥을 해, 그것 때문에 곤란할 때가 많아, 사람들은 닭을 기르기도 해. 그게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야. 너도 닭을 찾고 있니?” 여우가 물었다. 

“아니, 난 친구를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뭐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사람들 사이에서는 잊혀진 것들인데.....,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관계를 만든다고?”

“그래. 넌 나에게 아직은 다른 수많은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야. 그래서 난 네가 필요하지 않아.나 또한 너에겐 평범한 한 마리 여우일 뿐이지.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야.......”     

그러자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아저씨는 이제 일을 해야 해. 아저씨 기계로 돌아가, 난 여기서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을게. 내일 저녁에 다시 와......”

그렇지만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갑자기 여우가 생각났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지만, 여우가 말했다. 그래도 너는 잊지마. 네가 길들인 대상에 대해 넌 영원히 책임져야 한다는 걸. 넌 네 장미를 책임져야 해..........”         (P112)

     

“어린 왕자가 잠이 들어서, 나는 그를 품에 앉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음까지 따스해졌다. 부서지기 쉬운 보물을 앉고 가는 것만 같았다. 지구상에서 이보다 더 연약한 존재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달빛이 비치는 어린 왕자의 창백한 이마와 감은 눈,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건 껍질일 뿐이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P119)    

 

“나는 어린 왕자가 더더욱 깨어지기 쉬운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이 등불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바람이 한 번만 불어도 꺼져버릴 수 있다..... 그렇게 걸어간 끝에 동이 틀 무렵, 나는 우물을 발견했다.”            (P120)     

“사람들은 허겁지겁 급행열차에 올라타. 정작 자기가 무얼 찾고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냥 불안에 떨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어.”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럴 필요 없는데.”      (P121)  

   

“아저씨 별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정원에 장미 5천송이를 갖고 있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뭘 원하는지 결코 찾지 못하지. 찾지 못하지. 나는 대답했다.

한 송이 장미나 물 한 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정말 그래, 나는 대답했다. 

어린 왕자는 덧붙였다. 눈으로는 볼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만 해. 나는 물을 마셨다. 숨이 편안해졌다. 태양이 떠오르면서 사막의 모래가 꿀 빛깔로 물들어갔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모래를 보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이유로 나는 그렇게 힘들어했던 것일까.......”        (P123)  

   

“꽃도 마찬가지야. 아저씨가 어느 별에 있는 꽃 한 송이를 사랑한다면 말이야. 밤마다 하늘을 바라보는 게 행복할 거야. 모든 별에 꽃이 있으니까.”         (P131) 

    

“아저씨가 밤마다 하늘을 볼 때 말이야....... 내가 그중 한 별에 살고 있으니까. 그중 한 별에서 웃고 있으니까, 아저씨는 마치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처럼 느낄 거야.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갖게 된 거야.”              (P132)     

“누가 수천, 수백만 개의 별들 중에서 하나밖에 없는 어떤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그 사람은 ‘저 별들 어딘가에 내 꽃이 있겠지....’라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만약 양이 그 꽃을 먹어 버리면 그 사람에게는 저 별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도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어린 왕자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어느새 밤이 깊었다.      

그렇게 해서 어린 왕자는 일곱 번째 별인 지구에 도착했다. 지구는 지금까지의 별과는 달랐다. 지구에는 1백 11명의 왕과 7천 명의 지리학자, 90만 명의 사업가, 7백 50만 명의 술꾼, 3억 1천 1백만 명의 허영심 많은 사람들, 다시 말해 약 20억쯤 되는 어른들이 살고 있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6대륙을 통틀어 46만 2천 5백 11명이나 되는 가로등 켜는 사람들을 두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구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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