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헌 Mar 06. 2024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고양이>

영화 <에드가 알란 포우의 검은 고양이>  1990년

<검은고양이>(1981), <검은고양이>(1966), <검은고양이>(1934), <검은고양이>(2017), <검은고양이>(1941)  

   

<에드가 알란 포우의 검은 고양이>(Two Evil Eyes)는 포의 단편인 <M. 발데마르 사건의 진상>과 <검은 고양이>를 선보인 옴니버스 영화다. 전자는 조지 A. 로메로가, 후자는 다리오 아르젠토가 각각 각본 및 연출을 맡았으며, 하비 카이텔이 주연으로 등장하였다.    

 

내가 이제 써 나갈 이야기는 너무나도 괴이하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평범한 이야기인데, 나는 독자들이 그 이야기를 믿어 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고, 믿어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는다. 나 자신의 감각들조차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증거를 거부하는데, 남들이 그것을 믿어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실로 정신나간 일이리라. 하지만 난 분명 미친 것도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있으니, 오늘 내 영혼의 짐을 덜고자 하는 것뿐이다. 내 일차적인 목적은 한갓 집안 일에 지나지 않는 아주 평범한 일련의 사건을 분명하고 간결한 언어로, 아무런 설명이나 덧붙임 없이 세상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 사건들로 인해 나는 공포에 떨었으며 고통에 시달렸고 파괴되었다. 그러니 그 사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일은 자제하겠다. 내게 그 사건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P221)     

플루토 —이게 바로 그 고양이의 이름이었다— 는 내가 가장 사랑하던 애완동물이자 놀이 친구였다. 오직 나만이 그 녀석에게 밥을 주었고, 내가 집 안의 어디로 가든지 그 녀석이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심지어 밖에 나갈 때까지 따라 나오려고 하는 바람에 애를 먹기도 했다.     (P223)    

 

어느 날 밤 늘 가던 시내 술집 중 한 곳에서 만취한 채로 집에 돌아왔는데, 얼핏 고양이가 나를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홧김에 그 녀석을 확 낚아챘더니 내 난폭한 행위에 놀란 녀석이 이빨로 내 손을 물어 상처가 약간 났다. 갑자기 악귀와도 같은 격노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었다. 본래의 영혼이 순간적으로 육체를 벗어난 것 같았다. 몸의 모든 섬유조직 하나하나가 술이 부추긴 극악한 증오심으로 전율했다. 나는 조끼 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펼쳐 들고, 그 불쌍한 짐승의 목을 손으로 꽉 눌러 잡은 뒤 한쪽 눈을 천천히 도려냈다! 저주 받아 마땅한 그 잔혹 행위를 이렇게 적어 나가자니,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거리며 몸서리가 쳐진다.      

아침에 잠이 깨어 이성을 되찾고 전날 밤의 방탕함에서 비롯된 흥분이 사라지자, 내가 지난 밤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공포와 후회의 감정이 솟아났다. 그러나 그래 봤자 그런 감정은 희미하고 애매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영혼 깊숙한 곳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나는 이내 다시 극단적인 타락으로 빠져 들었고, 내 잔혹한 행위에 대한 기억은 모두 술 속에 잠겨 버렸다.      

그 사이 고양이는 상처를 서서히 회복했다. 눈을 잃은 자리에 생긴 텅 빈 구멍은 보기에 참으로 흉측했다. 그러나 녀석은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전처럼 집 안을 어슬렁거리기는 했지만,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라도 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극도로 겁에 질려 도망쳤다. 나에게도 옛날의 심장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 그 녀석이 처음에 그런 모습을 보일 때는 한때 그리도 나를 사랑했던 짐승이 이젠 이렇게 대놓고 나를 혐오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그러나 서글픈 감정이 짜증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나를 회복 불가능한 파멸에 결정적으로 몰아넣기 위해서이기도 하듯 도착적인 심리가 나를 찾아왔다. 이 도착적인 심리에 대해 철학은 아무런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도착적인 심리란 인간 감정의 원초적 충동 중 하나, 즉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인간으로부터 결코 분리해 낼 수 없는 본질적 기능 내지 감정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내 영혼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만큼이나 분명히 믿고 있다. 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야유 때문에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행위를 저질러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법에 어긋나는 짓임을 알면서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최상의 판단력을 무시하고 그 법을 위반하려는 충동에 끊임없이 사로잡히는 존재가 바로 인간 아니던가? 이 도착적인 마음이 마침내 나를 결정적인 파멸로 몰고 간 것이다. 바로 이 갈망, 스스로의 본성을 거슬러 혼동시키고, 오로지 잘못을 저지르기 위해 잘못을 저지르게 만드는 인간 영혼의 불가해한 갈망 때문에,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짐승에게 내가 준 상처를 아물게 하기는 커녕 그 녀석을 아예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나는 너무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그 녀석의 올가미를 씌운 다음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그렇게 매달 때 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나왔고, 마음은 회한으로 가득 차서 비통하기가 그지 없었다. 그 짐승이 나를 끔찍이 사랑해 왔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짐승이 내게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녀석의 목을 매단 것이다. 그런 행위를 함으로써 내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가장 자비롭고도 가장 무서운 신의 가엾는 자비심이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내 불멸의 영혼을 쫓아낼 —만일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치명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 녀석의 목을 매단 것이다.          (P224-226)     

그런데 내가 그 녀석을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그 고양이란 녀석은 나를 더욱더 좋아하고 따르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이 내 발뒤꿈치를 어찌나 끈질기게 졸졸 따라다녔던지, 아마 독자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의자에 앉아 있으면 녀석은 언제나 의자밑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아니면 내 무릎 위로 날렵하게 뛰어올라 나한테 애무를 퍼부어 나를 소름끼치게 했다. 내가 일어나 걸으려고 하면 내 두 발 사이로 끼어들어 나를 넘어질 뻔하게 만들었고, 아니면 길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옷을 짓밟으며 가슴께로 기어 올라갔다. 그럴 대 나는 주먹질로 그 짐승을 작살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꾹 참았다. 이는 부분적으로 이전의 범죄행위에 대한 기억 때문이기도 했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이 자리에서 고백하거니와— 그 짐승에 대해 느끼던 절대적인 공포심 때문이기도 했다.      

이 공포가 육체적인 위해에 대한 공포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위해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면, 다른 어떤 종류의 공포라고 정의하는 게 좋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짐승이 내게 불러일으킨 공포와 전율이 가공의 괴물에 대해 상상함으로써 더 커졌다는 사실을 부끄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중죄인 감방에 앉아 있는 지금까지도 그걸 생각하면 창피하다. 아내는 내가 앞서 언급했던 그 흰 털 반점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해 내 주의를 환기시켰다. 내가 죽였던 고양이와 이 희한한 고양이 사이의 유일한 가시적인 차이인 그 반점 말이다. 독자들은 그 반점이 비록 큰 것이긴 해도 윤곽은 아주 희미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 윤곽은 아주 서서히,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변하다가 마침내 분명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윤곽의 색은 너무나 서서히 변했기 때문에, 내 이성은 오랫동안 그건 나의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며 내가 목격했던 걸 애써 부인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반점은 그즈음 이름을 말하면 몸서리가 쳐지는 바로 그 물체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그 형태 때문에 나는 그 짐승을 더욱더 혐오하고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감히 그럴 용기만 있었다면 그 괴물 같은 짐승을 내 손으로 죽여 버렸을 것이다. 그 반점은 그때 아주 무시무시하고 소름 끼치는 것의 모양, 즉 교수대의 모양을 띠었던 것이다! 교수대, 오, 서글프고 끔찍한 공포와 범죄의 기계, 고뇌와 죽음의 기계여!     

나는 정말 비참한 기분이었다. 그 비참함은 단순한 인간적 비참함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한 것 야수에 지나지 않는 그 존재가 지고하신 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인간인 나에게 그렇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로움을 주다니! 그 녀석의 동료인 또 다른 야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버린 내게 말이다. 오호 슬프도다! 나는 더 이상 낮에도 밤에도 휴식이라는 축복을 알지 못했다! 낮동안에는 그 짐승이 나를 한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리고 밤에는 매시간 형용할 수 없이 무시무시한 꿈에서 놀라 깨어나 보면, 그 존재의 뜨거운 숨결이 내 얼굴에 느껴졌으며, 떨쳐버릴 수 없는 악몽의 현신인 그 존재의 엄청난 무게가 내 심장을 영원히 압박하고 있었다.           (P230-232)     

빈곤해진 형편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한 낡은 건물에 살림을 내어 지내던 어느 날,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아내와 내가 지하실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고양이가 가파른 계단을 바짝 뒤따라오는 바람에 나는 거꾸로 넘어질 뻔했고, 그 때문에 미칠 듯이 화가 치솟았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그때까지 내 손을 묶어 두었던 유치한 공포조차 잊고 도끼를 번쩍 쳐들어 고양이를 향해 내리쳤다. 도끼가 내가 원한 곳으로 떨어졌다면 고양이는 당장 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손을 들어 가격을 막았다. 방해를 받자 더욱 미칠 듯이 화가 난 나는 그녀의 손에서 내 팔을 빼낸 뒤 그녀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쳤다. 그녀는 신음 소리 한 번 못 내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P233)     

그러나, 신이시여, 사탄의 송곳니로부터 저를 보호해 주소서! 내가 두들기는 소리에 대한 반향이 고요 속으로 찾아 들자마자 갑자기 그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 무덤 속으로부터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어린아이가 훌쩍훌쩍 우는 소리처럼 낮고 단속적이다가, 이내 길고 요란하며 지속적이면서도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소리 같지 않은 큰 고함 소리로 변했다. 그것은 공포와 의기양양함이 반반 섞인 듯한 통곡 소리. 울부짖는 듯한 비명 소리로, 고통에 사로잡힌 저주받은 자들과 그들에게 의기양양하게 고통을 가하는 악마들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가 합쳐진 듯한, 오로지 지옥에서나 들릴 것 같은 소리였다.      

내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리라. 나는 정신을 잃고 비틀비틀 반대편 벽으로 쓰러졌다. 계단에 서 있던 경찰관들은 극단적인 공포와 경악에 사로잡혀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열두 개의 건장한 팔이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벽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이미 엄청나게 썩어 들어간, 굳은 피가 여기저기 얼룩진 시체가 똑바로 선 채 목격자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의 머리 위에는 붉은 입을 활짝 벌리고 이글거리는 외눈을 한 그 가증스러운 짐승이 앉아 있었다. 바로 그 교활한 짐승 때문에 내가 살인을 저질렀고, 또한 바로 그 짐승의 고자질 소리 때문에 내가 교수형 집행인의 손아귀로 떨어진 것이다. 내가 그 괴물을 무덤 속에 넣고 벽을 발라 버렸던 것이다!           (P236-237)   


이전 06화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