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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r 04. 2024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영화 <슬픔이여 안녕>  1958년

"문학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이었다최선의 것이며 최악의 것이자 치명적인 것으로서일단 그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나머지 것들은 그 정도의 가치가 없었다."

 프랑수아즈 사강 -     

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이 감정이 어지나 압도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내가 줄곧 슬픔을 괜찮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슬픔, 그것은 전에는 모르는 감정이다. 권태와 후회, 그보다 더 드물게 가책을 경험한 적은 있다. 하지만 오늘 무엇인가가 비단 망처럼 보드랍고 미묘하게 나를 덮어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킨다.     (P11)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중요한 것을 빠뜨린듯하다. 아니, 빠뜨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바다의 존재, 그 끊임없는 리듬 그리고 태양. 시골 기숙학교 뜰에 서 있던 보리수나무 네 그루와 그 냄새,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 기숙학교에서 나온 나를 데려가려고 기차역 플랫폼에 서 있던 아버지의 미소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잊은 듯하다. 아버지가 그렇게 어색한 미소를 지은 것은 내가 머리를 촌스럽게 땋아 늘이고 검은색에 가까운 보기 싫은 긴 원피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자동차에 타자 아버지는 갑자기 기쁨에 찬 듯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냐하면 그와 꼭 닮은 눈과 입을 가진 나는 이제 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 가장 멋진 놀이 친구가 될 터였으므로,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파리를, 사치를, 편안한 삶을 보여줄 터였다. 당시 내가 누린 즐거움의 대부분은 돈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자동차에 올라 속도를 즐기고 새 드레스를 갖고 레코드와 책과 꽃을 사는 즐거움 말이다. 나는 지금도 그런 안이한 즐거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그런 즐거움을 굳이 안이하다고 일컫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기 때문일 뿐이다. 슬픔이나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꼈다면, 나는 그 감정들을 훨씬 쉽사리 부인하고, 유감스럽게 여겼으리라. 쾌락과 행복을 쫓는 취향은 내 성격에서 유일하게 일관된 면이다. 혹시 내가 책을 읽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P30-31)    

 

아버지가 내게 연애 행각을 과시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는 다만 자신의 연애를 내게 숨기지 않았을 뿐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는 우리 집에 자주 여자 친구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하거나 자고 가게 했는데, 그런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적당한 구실을 둘러대지 않았다. 때로는 며칠간 계속 묵는 경우도 있었는데..... 다행히 오래가진 않았다! 어쨌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와 그의 ‘여자 손님들’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고통스럽게 변명을 꾸며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탁월한 계산이었다. 유일한 단점은 내가 사랑에 대해 과도하게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뿐이었다. 내 나이오 경험을 고려할 때 사랑은 충격적이기보다는 눈부신 것이어야 했다.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보석 같은 경구를 일부러 읊조리곤 했다. “과오란 현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생한 색깔이다.” 나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이 말을 금언으로 삼았다.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 이상으로 그 말을 확신했던 것 같다. 나는 내 삶이 이 구절로 대변되고 이 구절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그 구절로부터 도착적인 채색 판화처럼 솟아오를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삶에는 작동하지 않는 시간, 논리와 맥락이 닿지 않는 때, 일상적인 좋은 감정 같은 것들이 있음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저속하고 부도덕한 삶을 이상으로 여겼다.         (P32-33)     

“넌 사랑을 너무 단순한 걸로 생각해. 사랑이란 하나하나 동떨어진 감각의 연속이 아니란다....”

하지만 이제까지 내가 한 사랑은 모두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어떤 얼굴, 어떤 몸짓, 어떤 입맞춤 앞에서 문득 솟구친 감정...... 일관된 맥락 없는, 무르익은 순간들이 내가 사랑에 대해 가진 기억의 전부였다. 

“그건 다른 거야. 지속적인 애정, 다정함, 그리움이 있지...... 지금 너로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안이 말했다.              (P47)     


“요즘 유행하는 생각이구나. 하지만 그건 가치가 없어.” 안이 말했다.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내 생각을 말했지만, 사실 그건 내 견해라기보다는 어딘가에서 들은 말이었다. 어쨌든 나의 삶, 아버지의 삶은 그런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안은 그것을 경멸함으로써 내게 상처를 주었다. 사람은 뭔가 대단한 가치에 목표를 둘 수도 있지만 경박한 가치에 집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안은 나를 생각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게 잘못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갑자기 시급한 일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기회가 그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그리고 내가 그 기회를 포착하게 될 줄은 그 당시에는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그때에도 나는 내가 그 문제에 대해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다른 견해를 가지리라는 것, 지금은 신념처럼 보이는 그 생각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가. 이런 내가 어떻게 대단한 인물이 될 수 있었겠는가?         (P51-52)   

  

어떻게 해서든 분발해서 아버지와 나, 우리의 지난 삶을 되찾아야 했다. 내가 최근까지 영위해온 유쾌하고 불안정한 이 년, 지난 번 내가 그토록 빨리 부정해버린 그 이 년이 갑자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매력적으로 비치다니.......? 그 생활에는 생각할 자유, 잘못 생각할 자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을 자유, 스스로 내 삶을 선택하고 나를 나 자신으로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나는 점토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점토는 틀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P80)   

  

“너 안색이 안 좋구나. 너한테 공부를 하라고 한 게 후회된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유의 연극을 꾸며내고 있는 나 자신, 더 이상 그 연극을 멈출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 저녁 식사가 끝났다. 테라스에서 나는 식당 창문이 반사하여 생긴 환한 빛의 사각형 속에서 안의 길고 생기 있는 손이 망설이다가 아버지의 손을 찾아 쥐는 것을 보았다. 나는 시릴을 생각했다. 매미들과 달빛으로 가득 찬 이 테라스에서 그가 나를 안아주었으면 싶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고 나 자신과 화해하고 싶었다. 아버지와 안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려고, 나 자신을 측은히 여기려고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이미 나는 안을 측은히 여기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패배시키리라는 것을 확신한 사람처럼.             (P81-82)   

  

이 시기 이후 벌어진 일은 놀랍도록 또렷하게 기억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보다 주의 깊게 의식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언제나 마음 내키는 대로, 속 편하게 나를 중심으로 사는 사치를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당시 며칠을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보낸 후 차분히 생각을 하고 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와 화해하지 못한 채 자기 성찰의 온갖 고통을 겪어내야 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 감정, 그러니까 안에 대한 이 감정은 어리석고 한심해. 마찬가지로 그녀오 아버지 사이를 떼어놓고 싶다는 이 욕망은 잔인해.’ 하지만 어쨌든 왜 나 자신을 그렇게 비판해야 하지? 나는 그냥 나야. 그러니 사태를 내 마음대로 느낄 자유가 있는 게 아닐까? 평생 처음으로 ‘자아’가 분열되는 듯했다. 나는 이런 이중적인 면을 발견하고 몹시 놀랐다. 나는 그럴싸한 변명거리를 찾아 내 자신에게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그런 내가 진실한 나라고 설득했다. 다음 순간 갑자기 다른 ‘나’가 솟아올랐다. 그 다른 ‘나’는 조금 전 나 자신의 논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겉으로는 모두 타당해 보이지만 사실은 착각이라고 외쳐댔다. 그런데 사실 나를 속인 것은 이 다른 나가 아닐까? 그런 통찰이야말로 가장 지독한 잘못이 아닐까? 나는 몇 시간이고 방에 틀어박힌 채 안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적대감과 공포가 타당한지, 아니면 내가 입으로만 독립성을 주장하는, 버릇없고 이기적인 여자애일 뿐인지 알아내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P85-86) 

    

아버지는 이미 저만큼 멀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이런 종류의 대화를 몹시 싫어했다. 별장까지 가는 동안 아버지는 내 손을 찾아 쥐고 놓지 않았다. 믿음직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손이었다. 그 손은 내가 처음으로 실연을 당해 슬퍼할 때 눈물을 닦아주었고, 완벽한 행복과 고요의 순간 내 손을 잡아주었으며, 우리가 함께 일을 꾸미며 정신없이 웃을 때 살그머니 내 손을 쥐어주었다. 자동차 운전대에 놓여 있던, 저녁이면 열쇠를 쥐고 엉뚱한 구멍에 넣던, 어떤 여자의 어깨에 놓여 있거나 담배를 쥐고 있던 그 손, 그 손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버지가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웃어 보였다.        (P91-92)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볼 한순간의 여유도 없이 재빨리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나는 줄곧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창문 가까이로 가서 모래 위에 부서져 고요하게 찾아드는 파도에 시선을 던졌다가 방문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돌아섰다. 나는 있을 수 있는 모든 반박을 계산하고 예측하고 대책을 세웠다. 그때까지는 한 번도 사람의 정신이 얼마나 민첩하고 순발력 있는지 실감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내가 위험할 정도로 능란하다고 느꼈다. 엘자에게 설명을 시작하는 순간 치밀어 오르던 자기혐오의 물결에, 이제 자부심과 내밀한 공모의 느낌, 고독감이 덧붙여졌다.          (P100)     

나는 탁자에서 담배 한 개비를 집어 들고 성냥을 그었다. 성냥불은 켜지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두 번째 성냥을 그었다. 바람이 없었으므로 성냥이 켜지지 않는 건 내 손이 떨리고 있어서였다. 이번에 성냥불은 담배에 닿자마자 바로 꺼지고 말았다. 나는 끙 소리를 내며 세 번째로 성냥개비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이유는 모르지만 그 성냥불이 내게 아주 중요한 것처럼 여겨졌다. 안이 갑자기 무관심에서 벗어나 웃음기 없는 얼굴로 나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 배경도 시간도 사라지고 오직 그 성냥개비와 그것을 쥔 내 손가락, 회색 성냥갑과 안의 시선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나는 성냥개비를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성냥에 불이 붙었다. 내가 불붙은 성냥을 향해 허겁지겁 얼굴을 내밀자, 물고 있던 담배가 성냥개비를 덮쳐 불을 꺼뜨리고 말았다. 성냥갑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묻는 듯한 안의 엄격한 눈길이 내게 머물렀다. 나는 누군가 자비를 베풀어 이 기다림을 멈추게 할 뭔가를 해주기를 빌었다. 안의 두 손이 내 얼굴을 들어 올렸다. 나는 그녀가 내 눈에 담긴 진실을 읽게 될까 봐 두려워 눈을 꼭 감았다. 눈에서 피로와 당혹감과 쾌락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안은 모든 질문을 포기하겠다는 듯 무심하고 다독여주는 듯한 태도로 내 얼굴에서 두 손을 떼고 나를 놓아주었다. 그런 다음 내 입에 불붙은 담배 한 대를 물려주고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행동을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했다. 아니, 그 행동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애썼다. 지금도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다 실패할 때면 나는 그 기묘한 순간을 다시 떠올린다. 내 행동과 나 자신 사이에 놓인 그 간격을, 안의 눈길에 담긴 무게, 그 주위의 공허, 그 공허의 강렬함을........             (P124-125)  

   

나는 지루함이 죽도록 싫었다. 시릴을 진심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사랑하게 된 후 권태의 영향을 훨씬 덜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시릴과의 사랑은 많은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무엇보다도 권태가, 고요가 두려웠다. 우리, 그러니까 아버지와 나는 내적으로 고요해지기 위해 외적인 소란이 필요했다. 그리고 안은 결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으리라.             (P159)    

 

나는 안을 우리 생활에서 몰아낼 계획을 세우면서 아버지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혼자 추스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에게는 질서 있는 생활보다는 결별이 견디기 쉬울 터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진정으로 타격을 주고 쇠약하게 만드는 건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뿐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다. 나는 어떤 때는 우리가 아름답고 순수한 방랑자라고 믿었고, 어떤 때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딱하고 가망 없는 쾌락주의자라고 생각했다.          (P163)     

다만 파리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만이 들려오는 새벽녘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때때로 내 기억이 나를 배신한다. 그해 여름과 그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안, 안! 나는 어둠 속에서 아주 나직하게 아주 오랫동안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이름을 불러 그것을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슬픔이여 안녕.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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