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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r 15. 2024

로알드 달의 <내 친구 꼬마 거인>

영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The BFG>  2016년

애니메이션 <내 친구 꼬마 거인>(2016)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작가인 로알드 달의 아동 소설 <내 친구 꼬마 거인>을 원작으로 하는 판타지 영화이다. 원제 The BFG는 'Big Friendly Giant'의 약자로, 국내에선 원작의 한국어 제목이 아닌 '마이 리틀 자이언트'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 월트 디즈니 픽처스에서 제작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들 중 디즈니 브랜드를 달고 나온 첫번째 영화이다. 또한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필름이 아닌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영화이기도 하다.     

여기서든 누구든, 불을 끈 뒤에 침대에 누워 있지 않다가 들키면 벌을 받았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고 해도, 그런 건 핑계로 여겨져서 어김없이 벌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엔 아무도 없을 거야, 소피는 그렇게 확신했다.

소피는 침대 옆 탁자에 벗어 둔 안경을 집으려고 손을 뻗었다. 알이 두꺼운 그 쇠테 안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소피는 안경을 끼고, 침대에서 살짝 빠져나와 슬금슬금 창 쪽으로 다가갔다.

막상 창가에 서니, 마음이 흔들렸다. 커튼 뒤에 숨어서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마법의 시간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아 내고 싶었다.        (P10)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일 리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인간보다도 네 배는 더 컸다. 얼마나 큰지 그 머리통이 이층집 유리창보다도 더 높이 솟아 있었다. 소피는 비명을 지르려고 입을 벌렸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목구멍도 소피의 몸처럼 겁에 질려서 얼어붙어 버렸던 것이다.

이건 정말로 마법의 시간이었다. 

커다랗고 시커먼 형체는 소피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형체는 건물 쪽에 바짝 붙어서, 달빛이 비치지 않는 컴컴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 형체는 시시각각,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P13) 

     

저게 도대체 뭐지?

거인은 창문 밖으로 트럼펫을 꺼내고 가방을 집어 들려고 몸을 굽히다가 소피가 내다보고 있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달빛 사이로, 엄청나게 거대한 귀가 달린, 길쭉하고 희멀겋고 쭈글쭈글하고 거대한 얼굴이 힐끗 보였다. 코는 칼처럼 날카로웠고, 코 위에 번뜩이는 두 눈이 달려 있었는데, 그 눈이 거침없이 소피를 쏘아보았다. 사납고 악마 같은 눈길이었다.

소피는 ‘꺅!’하고 소리치며 창가에서 물러섰다. 그리고 날 듯이 도망쳐 휙 침대로 뛰어들어 담요 속으로 숨어들었다.         (P17)     

거인이 우레 같은 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선반에 놓여 있던 유리병들이 덜컥덜컥했다.

“내가 콩알 인간을 잡아먹는다고? 그건 아닌다! 다른 거인은 모두 밤마다 콩알 인간 잡아먹으러 다니지만, 난 아닌다! 난 좀 다른 거인인다! 난 헷갈리는 착한 거인인다! 거인 나라에서 헷갈리는 착한 거인은 나뿐인다! 난 선량한 꼬마 거인인다! 내 이름은 줄여서 선꼬거인다. 네 이름은 뭐인다?”

“소피요.”

소피는 방금 들은 이 반가운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P37)     

“난 옛날부터 점보 코길이가 한 마리 있어서 그걸 타고 푸른 숲으로 가서 하루 종일 나무들 사이를 누비며 복숭아 같은 과일이나 실컷 따먹고 싶었는다. 여긴 지글지글 끓게 덥고 똥투성이 땅인다. 그래서 킁킁오이밖에는 못 자라는다. 난 아침 일찍 코길이 등에 올라타 어디 다른 데로 가서 복숭아 같은 과일이나 따먹고 싶어 죽겠는다.”

소피는 이 이상한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언젠가는 코끼리를 가질 거예요. 복숭아 같은 과일도 먹을 거고. 이제 우리 마을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말해 주세요.”

“내가 너희 마을에서 뭘 했는지 알고 싶은다면. 난 아이들 방에 꿈을 불어넣고 있었는다.”

“꿈을 불어넣다니요? 그게 모슨 소리예요?”

“난 꿈을 불어넣는 거인인다. 다른 거인들이 콩알 인간 잡아 먹으러 사방으로 뛰어다닐 때에. 나는 다른 데로 허둥지둥 달려가서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방에 꿈을 불어넣는다. 멋진 꿈을, 사랑스러운 황금빛 꿈을. 아이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꿈을.”

“잠깐만. 그런 꿈들은 어디서 나요?”

선꼬거는 팔을 들어 선반에 죽 늘어선 유리병을 가리켰다.

“난 꿈을 모으는다. 몇 억 개도 더 있는다.”          (P51)

소피가 물었다.

“다른 거인들처럼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다면서, 그럼 무엇을 먹고 살아요?”

“여기선 그게 바로 지끈지끈 골치 아픈 문제인다. 이 넌덜머리나는 거인 나라에서는 파인애플이나 무화과 같은 과일들이 없는다. ‘우웩!’ 소리가 날 만큼 아주 맛없는 채소뿐인다. 난 그걸 킁킁오이라고 부른다.”

소피가 큰 소리로 말했다.

“킁킁오이라고요! 그런 게 어딨어요.”

선꼬거는 소피를 바라보다가 네모 반듯한 하얀 이 스무 개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P60)  

   

“그 거인이 하는 짓을 사람들은 못 보나요?”

“절대로 못 보는다. 그때쯤 되면 어두컴컴해진다는 것을 잊지 마. 게다가 홰액홰액이 얼마나 날쌘데. 마치 가윗날이 싹둑하듯이 빠르게 팔을 움직이는다.”

“그렇지만 밤마다 사람들이 사라지면, 틀림없이 무슨 소동이 벌어질 텐데요?”

“세상은 참 넓은다. 백 개도 넘는 여러 나라가 있는다. 거인들은 똑똑한다. 같은 나라에 너무 자주 가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다. 항상 여기저기 왔다갔다는다.”

“그렇다고 해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거인들이 잡아먹지 않아도 콩알 인간들은 이 세상 어디서나 항상 없어진다는 건다. 콩알 인간은 거인들보다도 훨씬 더 빨리 서로를 죽여 없애고 있는다.”

“하지만 서로 잡아먹지는 않아요.”

“거인들도 서로 잡아먹지는 않는다. 거인들은 서로 죽이지도 않는다. 거인들은 그다지 마음이 착하지는 않지만, 서로 죽이지는 않는다. 악어들도 서로 죽이지 않는다. 고양이들도 고양이는 죽이지 않는다.”

“고양이는 쥐를 죽이잖아요.”

“아, 하지만 동족끼리 죽이지는 않는다. 콩알 인간은 자기 종족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인다.”

“독사들은 서로 죽이는 거 아닌가요?”

소피는 사람만큼 형편없는 짓을 하는 생물이 또 있나 찾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독사들도 자기들끼리 죽이지는 않는다. 호랑이도 코뿔소 같은 사나운 맹수도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있는다?”

소피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난 콩알 인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다. 너도 콩알 인간이니까 거인들이 콩알 인간을 잡아먹는 것이 끔찍하고 소름끼친다고 말하는 건다. 바른쪽, 왼쪽?”

“바른쪽이요.”

“하지만 콩알 인간들은 항상 서로 죽이는다. 총을 쏘아대고 다른 콩알 인간의 머리에 폭탄을 떨어뜨리려고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다. 콩알 인간들은 언제나 다른 콩알 인간을 죽이고 있는다.”           (P102-103)     

소피는 선꼬거와 함께 유리병을 들여다보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도 보여요! 이 안에 뭔가가 있어요!”

“당연히 그 안에 있는다. 넌 지금 끔찍한 혹부리 방망이 꿈을 보고 있는 건다.”

“하지만 꿈은 보이지 않는 거라면서요.”

“잡기 전까지는 늘 보이지 않는 건다. 꿈은 잡히고 나면 보이지 않게 하는 힘을 조금 잃는다. 우린 이놈을 아주 똑똑하게 볼 수 있는다.”

유리병 안에는 걸쭉한 기름 방울과 젤리로 된 듯한 거품 방울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연붉은 형체가 있었다. 그 형체는 격렬하게 꿈틀대며 유리병 안쪽에 몸을 부딪쳐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고 있었다.

소피가 소리쳤다.

“이 안에서 막 발버둥치고 있어요! 밖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나 봐요! 자기 몸을 조각조각 부수고 있어요!”

“못된 꿈일수록, 잡히면 더 사나워지는다. 야수하고 같는다. 아주 사나운 동물이 있는데 네가 그놈을 우리에 넣는다면, 그놈은 굉장한 난리법석을 부릴 건다. 꼬꼬 닭이나 북실북실이라면 얌전히 있을 텐데. 꿈들도 똑같은다. 요놈은 못되고 사납고 심술궂은 악몽인다. 유리병에다 몸을 철썩철썩 부딪치는 걸 좀 봐!”

“정말 소름끼쳐요!”              (P113-114)     

“우리 거인들은 잭이라는 그 무시무시한 콩알 인간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는다. 우리는 잭이 유명한 거인 사냥꾼이고 콩줄기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것을 갖고 있다는 것밖에는 모른다. 우린 그 콩줄기가 무시무시한 것이고 잭이 거인을 죽일 때에 콩줄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다.”

소피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선꼬거는 좀 기분이 상한 투로 물었다.

“뭐가 우스운다?”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잭과 콩나무>라는 옛날 이야기에서, 잭은 하늘까지 닿는 콩나무 줄기를 타고 올라가 거인들의 나라에 숨어든다. 그리고 보물을 훔쳐 다시 콩줄기를 타고 내려오는데, 거인이 따라오자 잭은 콩줄기를 끊어 거인을 떨어뜨린다. 이 옛날 이야기를 거인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소피가 웃는 것이다.)

얼마나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지 그 거대한 짐승은 몸으로 매듭을 지을 정도로 몸을 비비 꼬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P124)     

선꼬거는 소피를 다시 자기 귀에 편안하게 앉히고는 영국으로 출발했다. 헬리콥터는 줄을 지어 선꼬거의 뒤를 따랐다.

헬리콥터 아홉 대가 팔 다리가 묶인 15미터도 넘는 거인들을 밑에 매달고 하늘을 날아가는 것은 굉장한 볼거리였다. 이건 거인들한테도 흥미로운 경험이 되었을 터였다. 거인들은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 댔지만 그 소리는 엔진 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헬리콥터는 뛰어가는 선꼬거를 놓치지 않으려고 강력한 서치라이트를 켜 비추었다. 그들이 밤새 날아서 영국에 도착할 무렵에는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P271)  

   

맬리사 메디슨의 훌륭한 각본, 조안나 존스톤의 의상, 릭 카터의 세트장 구성과 디자인, 루이 버르웰의 메이크업 디자인을 비롯해서 영국의 한 시골 마을 작은 침실에서 시작된 우리들의 이야기에 사랑과 정성으로 생명을 불어넣어 준 창의적이고 훌륭한 모든 이들의 노고에 만족하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의 선꼬거를 만났다. 선거감(선한 거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를 만난 것이다. 나는 그가 일하는 모습을 경이로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내가 만난 어른 중 마법과 거인을 믿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작별할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고아원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작은 철제 침대가 일렬로 놓여 있었다. 방은 어둡고 침대는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어린 날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느꼈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애정의 손길이 묻어 있었다. 살짝 마법의 힘을 빌린 손길이..........

루시 달(로알드 달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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