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탐정 필립> 1946년
<명탐정 필립>(1975)
빅 슬립(The Big Sleep) - 레이몬드 챈들러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39년에 출간되었다. 필립 말로(Philip Marlowe)가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 작품은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의 걸작으로 꼽히며, 1946년 하워드 혹스가 영화화하였는데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을 했다. 윌리엄 포크너가 각본에 참여했다. 고전 느와르 영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당신 자신에 대해 말해 보시오, 말로 씨. 내가 물어볼 권리는 있다고 생각하오만?”
“물론입니다만 말씀 드릴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전 서른 세 살이고, 대학을 다녔었고 필요하다면 영국식 영어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제 일에 대해서는 딱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한때는 수사관으로 지방검사인 와일드 씨 밑에서 일했었습니다. 그의 수사반장인 버니 올즈라는 남자가 제게 전화를 해서 장군님이 저를 보자신다고 하더군요.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경찰 마누라를 싫어하거든요.”
“그리고 약간 냉소적이기도 하군,”
노인은 미소지었다.
“와일드 밑에서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소?”
“전 해고 되었습니다. 명령 불복종으로 말이죠. 전 불복종 항목을 평가하는 시험에서는 아주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장군님.” (P17)
나는 깊고 푹신한 소파의 가장자리에 앉아 리건 부인을 보았다. 그녀는 바라볼 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였다. 사람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타입이었다. 슬리퍼를 벗은 채로 현대식 긴 의자 위에 몸을 쭉 뻗고 있어 얇디얇은 실크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보였다. 그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그 자리에 놓인 것 같았다. 두 다리는 무릎까지 드러나 있었지만 한쪽 다리는 더 깊숙한 곳까지도 보였다. 무릎은 움푹 패어 있고 뼈가 튀어 나오거나 너무 뾰족하지도 않았다. 종아리가 아름답고, 발목이 길고 날씬하여 교향시의 멜로디 라인이라고 해도 좋을 선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키가 크고 손발이 가늘고 길며 강해 보였다. 머리를 아이보리 색 새틴 방석에 기대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검고 빳빳하며 가운데에서 양쪽으로 갈라 빗었다. 그리고 홀에 있던 초상화와 같은 뜨겁고 검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입도 멋지고 턱도 멋지다. 입술은 샐쭉하게 움푹 패였는데 아랫입술이 도톰했다. (P27-28)
일곱시 이십분에 여름날 번개가 번쩍이듯, 가이거의 집에서 한 줄기 강렬한 하얀 빛이 발사되었다. 어둠이 다시 내려앉아 빛을 완전히 삼켰을 때, 가늘고 새된 비명 소리가 메아리치더니 비에 젖은 나무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메아리가 사라지기 전에 차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명 소리에 공포심은 섞여 있지 않았다. 유쾌한 충격 같은 것을 받았거나, 술에 취했거나 아니면 순전히 바보 같은 사람이 과장스럽게 내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나에게 흰 옷을 입은 남자들, 창살을 친 창문, 손목과 발목을 묶는 가죽끈이 있는 딱딱하고 좁은 간이 침대를 연상시켰다. 내가 울타리의 틈새를 찾아, 앞문을 가리고 있는 모서리를 돌아서 돌진하고 있을 때에는 가이거의 은신처는 다시 완전히 침묵으로 돌아가 있었다. 노커로서 사자의 입 속에 쇠고리가 달려 있었다. 나는 그걸 움켜잡았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집 안에서 세 발의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길고 거센 한숨을 내쉬는 듯한 소리 같았다. 그리고 나서 부드러운 무언가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집 안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발소리,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은, 골짜기에 가로놓인 다리처럼 집의 벽과 제방의 가장자리 사이의 공간을 메우고 있는 좁은 도랑과 마주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포치(porch)도 없었고 단단한 땅도 없었으며 뒤로 돌아갈 길도 없었다. 뒷문은 그 아래 좁은 골목 비슷한 거리에서 올라오는 나무 계단의 맨 윗단에 있었다. 나는 계단참을 따박따박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이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갑작스레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재빨리 먼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다른 자동차 소리도 같이 울렸다고 생각했으나 확실치는 않았다. 내 앞의 집은 지하 납골당처럼 조용했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집 안에 있는 것은 안에 그대로 있을 테니까.
나는 도랑 옆 울타리를 넘어 커튼을 달기는 했지만 가려놓지 않은 프렌치 창문 쪽으로 몸을 내밀고 커튼 사이 틈으로 들여다보려고 했다. 벽의 전등 빛과 책장의 한쪽 끝이 보였다. 나는 도랑이 있는 쪽으로 돌아가 도랑과 울타리를 뛰어넘어 어깨로 현관에 세게 부딪쳤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집에서 억지로 들어갈 수 업슨 부분은 현관뿐이었다. 그런 짓을 해보았자 내 어깨만 아플 뿐이었고 화만 났다. 나는 다시 난간 위로 올라가 프렌치 창문을 발로 걷어찬 뒤 내 모자를 장갑 대신 사용하여 유리창 아래쪽 대부분을 뽑아냈다. 이제 손을 넣어서 창턱에 창문을 잠가놓은 걸쇠를 당길 수 있었다. 나머지는 쉬웠다. 위에는 걸쇠가 없었다. 잠겨 있던 창문이 열렸다. 나는 안으로 기어들어가 얼굴에 걸리적거리는 커튼을 밀어냈다. 방에 있는 두 사람 중 누구도 내가 들어온 방식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죽어 있는 사람은 그 중 하나 뿐이었지만. (P53-55)
그녀는 사진을 꺼내어 문 바로 안쪽에서 선 채 들여다보았다.
“작고 예쁜 몸을 가졌죠. 그렇지 않나요?”
“흐음.”
그녀는 내 쪽으로 약간 몸을 기울였다.
“내 몸도 봤어야 하는데.”
그녀는 진지하게 말했다.
“일을 준비해줄 수 있겠소.”
그녀는 갑자기 날카롭게 웃더니 문 쪽으로 반쯤 향하다가 머리를 돌리고 냉담하게 말했다.
“당신은 이제까지 내가 본 중에 가장 냉혈한이에요. 말로 씨. 아니면 필이라고 불러도 되겠어요?”
“물론이요.”
“나를 비비안이라고 불러도 돼요.”
“고맙소, 리건 부인.”
“지옥에나 가요, 말로 씨.”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P96-97)
여자와 나는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었다. 그녀는 얼굴에 귀여운 작은 미소를 짓고 있으려고 했지만, 얼굴이 너무 지쳐서 그럴 힘조차 없어 보였다. 여자의 얼굴은 계속 멍해졌다. 미소는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처럼 스러졌고, 어리벙벙한 듯 어리석어 보이는 멍한 눈 아래 창백한 피부는 까칠까칠했다. 백태가 낀 혀는 입꼬리를 계속 핥았다. 예쁘고 버릇이 없으며 별로 똑똑하지도 못한 아가씨였다. 아주, 아주 잘못된 길로 빠져버렸지만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았던 소녀. 부자들이란 지옥에나 떨어지라지. 부자들에게 구역질이 났다. 나는 손가락으로 담배를 말고는 책을 밀어내버리고 검은 책상 위에 앉았다. 나는 담뱃불을 붙이고,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손가락을 빨고 깨무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카멘은 교장실에 온 불량소녀처럼 내 앞에 서 있었다. (P101-102)
“시가 한 대 피울 텐가?”
그는 하나를 내게 던져주었다.
나는 시가를 잡았다. 브로디는 시가상자에서 총을 꺼내서 내 코를 겨누었다. 나는 총을 보았다. 검은색 38구경이었다. 나는 그 순간 그것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깔끔한 솜씨지? 잠깐 일어서주실까. 이 미터 정도만 앞으로 와. 그러면서 두 손을 들어.”
그의 목소리는 영화 속 갱이 공들여 내는 무심한 목소리였다. 영화가 그들을 몽땅 저렇게 만들어놓았다.
“쯧, 쯧.”
나는 전혀 꼼짝도 않고 말했다.
“이 동네는 총은 그렇게 많은데 똑똑한 머리를 가진 놈은 그렇게 없다니까. 몇 시간 전에도 손에 총만 들고 있으면 세상을 다 손에 거머쥘수 있다고 생각한 친구가 당신 말고도 한 명 더 있었다네. 총을 내려놓고 바보같은 짓 그만두지. 조.”
그는 눈썹을 모으더니 턱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P124)
“이 일 다하고 얼마나 받나?”
“그러면 이제까지 오십 달러하고 기름값 정도 되겠군.”
“대략 그 정도죠.”
그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여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그의 턱 아래쪽 뒷부분을 문질렀다.
“그래서 그 정도의 돈에 기꺼이 이 지역 공권력의 절반 이상의 기분을 거슬리겠다는 건가?”
“나도 마음에 안 듭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일이 뭐겠습니까? 나는 사건을 맡고 있어요. 난 먹고 살기 위해서 팔아야 하는 건 팝니다. 하느님이 내게 주신 약간의 용기와 지성, 그리고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꺼이 괴로움을 감수하는 열성이죠. 장군에게 보고하지 않고 오늘 밤에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만 해도 내 원칙에는 어긋납니다. 그 범죄 은닉에 대해서 말인데, 나도 경찰에 있었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대도시라면 어디나 흔해빠진 일이죠. 경찰들은 외부인이 뭔가 숨기려고 하면 거만해지고 강압적이 되지만, 친구나 연줄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호해주려고 자기들도 이틀에 한 번씩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끝내지 못했어요. 아직 사건을 맡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필요하면 같은 일을 또 할 겁니다.”
“크론재거가 자네 면허를 압수해가지 않는다면 말이지.” (P177-178)
다음날 아침에는 다시 비가 왔다. 흔들리는 크리스탈 주렴처럼 비스듬하게 내리는 회색비였다. 나는 나른하고 피곤한 기분을 느끼며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며 서 있었다. 스턴우드 가족의 무겁고 씁쓸한 맛이 아직도 내 입 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허수아비의 호주머니처럼 공허한 인생이었다. 간이 부엌으로 가서 블랙커피를 두 잔 마셨다. 때로는 알코올보다도 다른 것에 더 숙취를 느낄 수가 있다. 나는 여자들로부터 그런 기분을 느꼈다. 여자들은 구역질이 났다. (P247)
일단 죽으면 어디에 묻혀 있는지가 중요할까? 더러운 구정물 웅덩이든, 높은 언덕 꼭대기의 대리석 탑이든 그게 중요한 문제일까? 당신이 죽어 깊은 잠에 들게 되었을 때, 그러한 일에는 신경쓰지 않게 된다. 기름과 물은 당신에게 있어 바람이나 공기와 같다. 죽어버린 방식이나 쓰러진 곳의 비천함에는 신경 쓰지 않고 당신은 깊은 잠에 들게 되는 것뿐이다. 나도, 이제는 그러한 비천함의 일부가 되었다. 러스티 리건이 그랬던 것보다도 훨씬 깊숙이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노인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는 핏기 없는 손을 이불 위에 올려놓고 차일을 친 침대 위에서 조용히 누워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심장은 짧고 불확실한 중얼거림과 같았다. 그의 사고는 타버린 재처럼 회색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면 그 또한, 러스티 리건처럼 깊은 잠에 들 것이다. (P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