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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셈플의 <어디갔어 버나뎃>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 2019년

by 노용헌

<어디갔어, 버나뎃>(Where'd You Go, Bernadette)은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2019년작 코미디 드라마 영화로, 케이트 블란쳇, 빌리 크루덥, 에마 넬슨, 크리스틴 위그, 제임스 어배니액, 주디 그리어가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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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짜증나는 건 엄마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을 때마다 아빠가 매번 “네가 반드시 알아야 할 건 그게 결코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거야”라고 대답하는 거다. 보다시피 내 질문은 그게 아닌데. 내가 좀더 다그치면 아빠는 두 번째로 짜증나는 대답을 내놓는다. “진실은 복잡한 거란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엄마가 사라져버렸다? 물론 복잡한 일이다. 그러나 복잡하다고 해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해서 찾아볼 시도조차 하지 말란 법은 없다.

내가 찾아볼 시도조차 하지 말란 법은 없다. (P9)


“기억 안 나세요?” 내가 말했다. “게일러 스트리트 중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전과목 S를 받으면 졸업 선물로 원하는 건 뭐든 해주겠다고 하셨잖아요.”

“기억나.” 엄마가 말했다. “그땐 조랑말 얘기를 그만하게 하려고 그런 거지.”

“어릴 땐 조랑말이 갖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른 걸 원해요. 그게 뭔지 궁금하시죠?”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빠가 말했다. “우리가 궁금한가?”

“남극 가족 여행!” 나는 깔고 앉았던 브로슈어를 꺼내들었다. 이국적인 유람선 여행 상품들을 보유한 오지 탐험 전문 여행사의 브로슈어였다. 나는 남극 여행 페이지를 펼쳐 식탁 맞은편 부모님 쪽으로 밀었다. “갈 거면 크리스마스 직후에 가야 해요.”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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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학년 아이한테 별생각 없이 요즘 학교에서 뭐 배우니? 라고 물었을 때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죠.

예를 들면, 남극과 북극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요? 남극에는 땅이 있고 북극에는 그저 얼음뿐이라는 것? 남극이 대륙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난 북극에도 땅이 있는 줄 알았어요. 남극엔 흰곰이 살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난 몰랐어요! 흰곰들이 녹아내리는 얼음덩어리에서 멀쩡한 얼음덩어리로 건너뛰려 애쓰는 모습을 보트 타고 구경할 줄 알았다고요. 그런 슬픈 광경을 보려면 북극에 가야 하나봐요. 남극에 사는 건 펭귄이라네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흰곰이 펭귄하고 장난치는 목가적인 풍경을 상상한다면 당장 집어치우세요. 왜냐하면 흰곰과 펭귄은 각각 지구의 반대편 끝에 살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공부를 좀더 해야겠어요. (P53)


“너희들 따분할 거야. 내가 인생의 작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너희는 지금 이게 따분한 거라고 생각하지? 근데 있잖아. 앞으로는 점점 더 따분해질 거야. 그리고 인생을 재미있게 만드는 건 결국 너희 자신한테 달려 있다는 걸 빨리 깨달을수록 인생이 더 재미있어질 거고.” (P64)


난 아프지 않다! 좌심실형성부전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나긴 했다. 태어날 때 승모판, 좌심실, 대동맥 판막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아 세 번의 심장수술과 세 번의 합병증수술을 받아야 했다. 마지막 수술을 받은 게 내가 다섯 살 때였다. 사람들은 날 보고 똑똑하다고들 하는데, 혹시 그거 아는지? 난 그 모든 일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이건 아는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고 자그마치 구 년 반 동안이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니 잠깐 멈추고 생각해봐주기를. 내 인생의 3분의 2는 아주 멀쩡했다는 걸.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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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화내지 마.” 엄마가 말했다. “널 남극에 데리고 가는 엄마잖니.”

“엄마,” 내가 말했다. “우린 남극에 안 가요.”

“뭐? 우리 남극 안 가?”

“관광객들한테 허용된 곳은 남극반도까지예요. 말하자면 남극의 플로리다 군도 같은 곳이라고요.” 놀랍게도 엄마는 정말로 몰랐나보다. “거기도 영하 18도예요.” 나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남극대륙의 아주 작은 부분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콜로라도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왔는데, 그 사람한테 뉴욕은 어땠느냐고 묻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에요. 물론 다 같은 미국이지만 그건 완전 무식한 얘기잖아요. 엄마 제발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말해줘요. 너무 피곤해서 깜빡했다고.”

“엄만 피곤하고, 게다가 무식하단다.” 엄마가 말했다. (P96)


나는 비틀스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책을 읽은 직후였기 때문에 <애비 로드Abbey Road>에 푹 빠져 있었고, 그날 아침 내내 엄마에게 그 얘기를 했다. 예를 들면 B 사이드에 있는 곳들은 원래 개별적인 곡들로 만들어졌다. 그것들을 스튜디오에서 하나로 연결하자는 건 폴의 아이디어였다. 폴이 “넌 평생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할 거야” 라는 가사를 썼을 때 그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존은 비틀스의 해체를 원했지만 폴은 원하지 않았다. 폴이 쓴 ‘넌 평생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할 거야’는 바로 존에게 한 말이었다. 그의 말인즉, ‘지금 우린 한창 잘나가고 있는데, 만약 이 밴드가 해체되면 그건 다 네 탓이야. 평생 그 책임을 떠안고 살 수 있겠어?’였다. 기타로 리드하는 대신 링고 스타의 드럼 솔로가 끌고 가는 앨범의 마지막 연주곡은 어떤가. 알다시피 언제나 그 곡은 팬들에 대한 비극적이고 의도적인 작별 인사처럼 들리고, 그 곡을 들을 때마다 <애비 로드>의 마지막 곡을 연주하면서 서로를 쳐다보며 울고 있는 비틀스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세상에, 그렇게 심하게 울고 있었던 거야? 그러나 모든 연주곡은 그 일 이후 폴이 스튜디오에서 편집한 것이고, 따라서 일련의 가짜 감흥들일 뿐이다.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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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친구 한 명을 사귀었어요. 이름은 만줄라고, 멀리 인도에서 내 심부름을 해주고 있어요. 가상의 인물이지만 이렇게라도 시작해 보려고요.

이 도시의 모토는 아마도 세바스토폴 공방전 당시 프랑스 장군이 했다던 그 기념비적인 말 “지 쉬, 지 레스트(J'y suis, j'yreste)"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는 여기 있고, 여기 남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자라고 워싱턴 대학교를 다니고 여기서 일하고 여기서 죽어요.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 사람들한테 “왜 그렇게 시애틀을 좋아하세요?” 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죠. “여긴 전부 다 있으니까요. 산도 있고, 물도 있고.” 이게 그 사람들 설명이에요. 산도 있고, 물도 있고. (P184)


“게일러 스트리트의 토대는 학부모회거든요. 물론 학부모가 학교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법이 명문화되어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학교는 그러한 암묵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설립되었어요. 예를 들면, 저는 교실 자원봉사를 맡고 있어요. 버나뎃은 한 번도 그 일에 동참한 적이 없어요. 또하나, 버나뎃은 절대로 비를 교실까지 데려다주는 법이 없다는 거예요.”

“학교까지 차를 태워다주잖아요.” 엘지가 말했어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걸어서 아이들을 교실까지 데려다주는 편을 선호해요. 특히 전업주부라면 더더욱.”

“난 잘 이해가 안 가네요.” 그가 말하더군요.

“게일러 스트리트의 토대는 학부모의 참여라는 거죠.” 내가 지적했어요.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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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엄마는 교회 청소년부를 싫어하고, 케네디는 그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줌마.” 케네디가 말했다. 케네디는 우리 엄마를 그렇게 부른다. “혹시 스튜에 빠진 똥 얘기 들어보셨어요?”

“스튜에 빠진 똥?” 엄마가 물었다.

“교회 청소년부에서 배웠는데요.” 케네디가 말했다. “루크 선생님하고 메이 선생님이 마약에 관한 인형극을 했거든요. 그런데 거기 나오는 당나귀가 이러는 거예요. ‘마리화나 한번 피운다고 해로울 건 없지.’ 그랬더니 이번엔 양이 말하길 ‘인생은 스튜와 같은 거야. 마약은 똥이고. 만약 누군가가 눈곱만큼이라도 스튜에 똥을 넣었다면, 그거 먹을 수 있겠어?’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동물들은 궁금해해요. 도대체 사람들이 왜 교회를 싫어하는지, 십대들을 위한 인형극도 하고.....” 엄마가 완전히 폭발하기 전에 내가 케네디의 손을 잡았다.

“우리 또 화장실 가자.” 내가 말했다. (P208)


사무직원은 저에게 내용별로 정리되어 있는 FBI 파일을 넘겨주고 자리를 떴습니다. 버나뎃 폭스 씨의 정신 상태와 관련된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여기서 밝힐 수 없습니다.

⚫버나뎃 폭스 씨는 학교에서 어느 학부모를 차에 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부모를 약 올리기 위해 그녀의 집 앞에 팻말을 세웠습니다.

⚫현재 약물을 비축하고 있습니다.

⚫극도의 불안감, 과대망상,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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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기 예수였다. 엄마 아빠는 마리아와 요셉이었다. 말구유는 병원 침대였다. 나를 살리려 애쓰는 의사들, 레지던트들, 간호사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들이 새파랗게 질린 상태로 태어난 나를 살려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섞여 범죄 용의자 줄에 서 있다고 해도 나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평생에 걸쳐 쌓아온 지식으로 내 목숨을 살렸다. 내가 이렇게 사람들과 음악의 파도 속에 있을 수 있도록.

오 성스러운 밤, 성스러운 밤, 성스러운 밤!

누군가 옆구리를 치는 게 느껴졌다. 케네디가 나를 때리고 있었다.

“자.” 케네디가 내게 숙취 스카프를 내밀었다.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너 나한테 예수 믿으라고 하지 마.”

나는 케네디를 무시하고 뒤로 머리를 젖혔다. 어쩌면 종교란 이런 것일까.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면서도 어떤 커다란 힘이 날 보살펴주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줄 거라는 믿음. (P271)


커츠 박사: 부인, 부인이 이웃집의 주거를 침해하는 바람에 주택이 훼손되었고 서른 명의 아이가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의 가능성에 노출되었어요. 그리고 부인은 남극에 갈 의사가 없어요. 남극에 안 가려고 사랑니 네 개를 뽑을 계획이었죠. 그리고 집안의 재정을 파멸로 이끌 위험이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신상 정보를 범죄 조직에 넘겼어요.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인간 교류 행위조차 할 수 없어서 인터넷 비서에 의지해 식료품을 사고 식당을 예약하면서 집안일을 처리하고 있어요. 부인이 살고 있는 집은 건축부에서 경고 조치를 받아 마땅하고 제가 보기에 그건 극도의 우울증을 의미합니다.

폭스: 지금 현실을 설명해 주시는 거 맞나요? 아니면 저도 한마디 해도 될까요?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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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뎃이 집에서 진행된 중재 과정에서 사라졌다는 건 알고 있겠죠. 모두가 가장 우려했던 건 혹시라도 러시아 마피아가 끼어들어 그녀를 납치했으면 어쩌나 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얼마 후 러시아 마피아는 두브로브니크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것으로 확인되었어요. 그 바람에 FBI와 경찰들도 버나뎃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죠!

엘지와 비는 결국 남극에 가지 않았어요. 엘지는 각막손상 치료를 받았고 눈거풀을 몇 바늘 꿰맸어요. 칠십이 시간이 지난 뒤 실종자 신고를 했고요. 오늘까지 버나뎃한테서는 아무 소식이 없어요. (P295)


버나뎃이 모두를 걱정시키고 남극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그 사람은 버럭 화를 냈어요. 난 그게 좀 이상하더라고요.

“암에 걸렸다는 이유로 암환자한테 화를 낼 수는 없는 거예요.” 내가 말했어요. “버나뎃은 환자잖아요.”

“이건 암하곤 다르잖아요.” 그가 말하더군요. “이기적이고 나약해. 현실에 맞서지 않고 그냥 내빼버렸어. 로스앤젤레스에서 달아나서 트레일러로 들어갔지. 모든 책임으로부터 도망쳤어. 진실과 대면할 때마다 버나뎃이 한 일 뭐였죠? 말 그대로 그저 내뺀 것 말고? 덕분에 난 이제 장님이 됐어요!” (P30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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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었다. 배를 보면서 어떻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까. 그러나 초트를 나온 이후 나는 마지막이라는 말만 하면 아빠가 뭐든 허락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트레일러에서 잘 수도 있었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었고, 심지어 남극에도 올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마지막이라는 말이 정말 기분 나쁘다. 왜냐하면 그 말은 곧 내가 엄마를 잊으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실 난 엄마를 찾기 위해 남극에 온 건데.

선실에 가보니 벌써 짐이 도착해 있었다. 아빠와 나는 각각 가방이 두 개씩이었다. 가방 하나에는 평상시 입을 옷이 들어 있고 다른 하나에는 여행 장비들이 들어 있었다. 아빠는 바로 짐을 풀기 시작했다. (P354)

나는 그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로 꼽는다. 왜냐하면 그 순간, 엄마가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주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콘크리트로 만든 경사로를 내달렸다. 그 어느 때보다 빨리. 너무 빨리 달려서 넘어지는 게 당연했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엄마가 있었으니까.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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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꼭 비틀스 같아요, 아빠.”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 안다, 얘야.”

“정말이에요. 엄마는 존, 아빠는 폴, 나는 조지, 그리고 아이스크림은 링고.”

“아이스크림.”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스크림은,” 내가 말했다. “과거를 혐오하고 미래를 두려워하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니?” 아빠가 입술을 문지르며 물었다.

“언젠가 엄마가 링고 스타에 관한 글을 읽었어요. 사람들이 말하길, 링고 스타가 요즘 과거를 혐오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대요. 엄마가 그렇게 크게 웃는 건 처음 봤어요. 아이스크림이 입을 벌리고 앉아 있는 걸 볼 때마다 우린 말하곤 했어요. 가엾은 아이스크림, 과거를 혐오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구나.” (P389)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고 어느 순간 내가 입을 열었다.

“남극에서 제일 좋은 건 그냥 가만히 바라볼 수 있다는 거예요.”

“왜인지 아니?” 아빠가 물었다. “우리 눈이 한동안 가만히 먼 지평선을 바라보다보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거든. 리너스 하이하고 똑같은 거야. 요즘엔 다들 12인치 화면을 코앞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으니 이건 정말 멋진 기분 전환이지.” (P394)


고무보트 두 척이 모두 파머 기지를 떠나 우리가 탔던 배로 향하고 있었다. 아빠도 그 배에 타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요 앙큼한 것!”

엄마였다. 엄마가 거기 서 있었다. 엄마는 방한용 바지에 털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엄마!”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가 무릎을 꿇었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엄마를 끌어안고 내 몸을 파묻었다. “내가 엄마를 찾았어!”

엄마는 나의 온 체중을 양팔로 감당해야 했다. 나는 몸을 던졌다. 나는 엄마의 아름다운 얼굴을, 언제나처럼 나를 살피는 파란 눈을 바라보았다.

“여긴 어떻게 왔니? 어떻게 들어온 거야?” 엄마가 말했다. 엄마의 주름은 엄마의 웃는 눈에서 햇살처럼 퍼져나왔다. 엄마의 가르마를 따라 굵은 흰 줄이 그어져 있었다.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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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극한상황을 견디기에 적합한 후보자들의 성향이 적혀 있었어. ‘매사에 무덤덤하고 반사회적인 성향의 사람들’, ‘좁은 공간에서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 ‘샤워를 하지 않고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적혀 있었어.

엄마는 지난 이십 년 동안 남극에서 생활하려고 훈련한 거였어! 마침내 때가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지. (P434)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감정들이 그 하늘 속에 있었어. 반짝이는 기쁨의 햇살. 경쾌하게 키득거리는 구름 조각들. 눈부신 햇살 기둥들. 황금빛, 분홍빛 구슬들, 너무도 반짝여서 싸구려 같은 그 광채들, 거대하고 통통한 구름들, 반기고 용서하며, 두 장의 거울 사이를 오가듯 지평선 위를 끝없이 오가는 구름들, 한순간에 멀리서 두드려대는 축축한 비참함이다가 다음 순간 우리를 때리는 비의 조각들, 또 한 구석은 비가 없는 검은 얼룩만 있는 하늘.

하늘은 조각조각 다가오고, 겹겹이 다가오고, 함께 뒤엉켜 다가오고, 항상 움직이고, 휘젓고, 때론 쌩하고 지나갔지. 너무 낮아서 어떤 날은 손을 뻗으면 만질 수도 있을 것 같았어. 네가 처음 3D 입체영화를 보았을 때 그랬던 것처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리고 그곳의 구름이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았지.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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