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2021년
<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는 2021년 개봉한 일본의 드라마 영화이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감독과 공동각본을 맡았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원작으로 하였다. 제74회 칸 영화제(2021년) 각본상 수상작이자 황금종려상 경쟁후보작이다. 제94회 아카데미상(2022년) 국제영화상 수상작이며, 이외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드라이브 마이 카]
아내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가후쿠에게는 물론 괴로운 일이었다. 괴롭지 않을 리 없다. 눈을 감으면 이런저런 구체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상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상상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상상은 예리한 칼날처럼, 시간을 들여 사정없이 그를 저몄다. 끝까지 아무것도 몰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자 삶의 자세였다. 설령 아무리 극심한 고통이 닥친다 해도 나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을 통해서만 인간은 강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상상보다 더 괴로운 것은, 아내가 품고 있는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안다는 것을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겨 속으로는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면서도 얼굴에는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짓는 것.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크로 작은 일상의 일들을 하고, 별 내용 없는 대화를 나누고, 침대에서 아내를 품에 안는 것. 그것은 살아있는 몸뚱이를 지닌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후쿠는 프로 배우였다. 자신의 몸에서 벗어나 타인을 연기하는 것이 그의 생업이다. 그리고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연기했다. 관객이 없는 연기를. (P27-28)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특히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 거야. (P37)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속속들이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거예요. 상대가 어떤 여자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가후쿠 씨만의 고유한 맹점이 아닐 거예요. 만일 그게 맹점이라면 우리는 모두 비슷한 맹점을 안고서 살아가고 있는 거겠죠.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P50-51)
[여자 없는 남자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를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그건 여자 없는 남자들이 아니고는 이해하지 못한다. 근사한 서풍을 잃는 것, 열네 살을 영원히 –십억 년은 아마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리라- 빼앗겨버리는 것. 저멀리 선원들의 쓸쓸하고도 서글픈 노랫소리를 듣는 것. 암모나이트와 실러캔스와 함께 캄캄한 바다 밑에 가라앉는 것. 한밤중 한시가 넘어 누군가의 집에 전화를 거는 것. 한밤중 한시가 넘어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는 것. 지와 무지 사이 임의의 중간지점에서 낯선 상대와 만날 약속을 하는 것. 타이어 공기압을 측정하며 메마른 길바닥에 눈물을 떨구는 것.
어쨌든 그 일각수 상 앞에서 나는 그가 언젠가 다시 일어서기를 기도한다. 정말로 소중한 것만은 –우리는 그것을 이따금 ‘본질’이라고 부른다- 잊어버리지 않고, 그밖의 부수적인 사실들 대부분을 그가 깨끗이 잊기를 기도한다. 자신이 그것을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러길 바란다. 대단한 일 아닌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고독한 남자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그리고 만난 적도 없는) 남자를 염려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니까. (P327-328)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잘 알다시피) 그녀를 데려가는 것은 간교함에 도가 튼 선원들이다. 그들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여자들을 꼬여내, 마르세유인지 상아해안인지 하는 곳으로 잽싸게 데려간다. 그런 때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혹 그녀들은 선원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모른다. 그런 때도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선원들조차 손쓸 도리가 없다.
어쨌거나 당신은 그렇게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다.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깊숙이 배어든다. 연한 색 카펫에 홀린 레드 와인의 얼룩처럼. 당신이 아무리 전문적인 가정학 지식을 풍부하게 갖췄다 해도, 그 얼룩을 지우는 건 끔찍하게 어려운 작업이다. 시간과 함께 색은 다소 바랠지 모르지만 얼룩은 아마 당신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 어디까지나 얼룩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얼룩의 자격을 지녔고 때로는 얼룩으로서 공적인 발언권까지 지닐 것이다. 당신은 느리게 색이 바래가는 그 얼룩과 함께, 그 다의적인 윤곽과 함께 생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P330-331)
한 여자를 잃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때로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P335-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