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라는 공간 거울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340

by 노용헌

헤테로토피아는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가 고안한 개념으로, 특히 1966년의 저작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 같은 해의 논문 「헤테로토피아」, 「유토피아적 몸」, 1967년의 논문 「다른 공간들」에 등장한다. 한편 1982년의 대담 「공간, 지식, 권력」에도 이에 대한 간략한 논의가 등장한다. 유토피아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 반면,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현실적인 동시에 신화적인’ 공간들, ‘위치를 가지는 유토피아들’,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들에 맞서서, 어떤 의미로는 그것들을 지우고 중화시키고 혹은 정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장소들’은 ‘일종의 반(反)공간’(contre-espace)이다. 헤테로토피아는 서로 다른, 낯선이란 의미의 헤테로(Hetero)와 장소, 공간 뜻의 토피아(Topia)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공간과 시간은 씨줄과 날줄처럼 우리에게는 얽혀져 있다. 낯설다는 것은 시간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사진은 시간을 담아내기도 하며 공간을 담아내기도 한다. 낯선 공간은 유토피아적인 공간이기도, 헤테로토피아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그 공간을 사진의 프레임은 창문틀이 되기도 하고, 거울틀이 되기도 한다. 창문을 통해서 바라본 공간과 거울을 통해서 바라본 공간은 사뭇 다를 수 있다. 존 자르코스키(John Szarkowski)가 분류한 [Mirrors & Windows]는 사진의 성질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아마도 모든 문화와 문명에서는 사회 제도 그 자체 안에 디자인되어 있는, 현실적인 장소, 실질적인 장소이면서 일종의 반(반) 배치이자 실제로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장소들이 있다. 그 안에서 실제 배치들, 우리 문화 내부에 있는 온갖 다른 실제 배치들은 재현되는 동시에 이의 제기 당하고 또 전도된다. 그것은 실제로 위치를 한정할 수 있지만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들이다. 이 장소는 그것이 말하고 또 반영하는 온갖 배치들과는 절대적으로 다르기에, 나는 그것을 유토피아에 맞서 헤테로토피아라고 부르고자 한다.”

<헤테로토피아, 미셸 푸코, P51>


거울에 비쳐진 허상은 실상을 복제한다. 복제된 실상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재한다. 그것은 아마도 가상공간속의 존재하는 이미지일 수 있다. 이미지(image)는 닮음, 유사성에 기초한다. 유사한 복제물을 만들면서, 그 존재를 대리하려고 한다. 그 대체의 신빙성은 닮았다는 것에 있다. 그 무언가를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칫 나르키소스(Narkissos)가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위로를 하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거울의] 표면 뒤에 가상적으로 열리는 비실제적 공간에서, 나는 저편 내가 없는 곳에 있다. ... 그것은 내가 부재하는 곳에서 나 자신이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거울의 유토피아. 하지만 거울이 실제로 존재하는 한, 그리고 내가 차지하는 자리에 대해 그것이 일종의 재귀 효과를 지니는 한 그것은 헤테로토피아다.

바로 거울에서부터 나는 내가 있는 자리에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나를 거기서 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내게로 드리워진 이 시선에서부터 거울의 반대편에 속하는 이 가상공간의 안쪽에서부터 나는 나에게로 돌아오고, 눈을 나 자신에게 다시 옮기기 시작하며, 내가 있는 곳에서 자신을 다시 구성하기 시작한다.”

<헤테로토피아, 미셸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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