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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pr 21. 2024

줄리언 반스의 <메트로랜드>

영화 <메트로랜드>  1998년

<메트로랜드>(Metroland)는 줄리언 반스의 1980년 장편소설로, 그의 데뷔작이다. 사춘기 시절 런던 교외 중산층의 부르주아적 삶을 조롱하고 순수와 예술을 옹호했던 소년 크리스의 성장기를 그렸다.      

쥐똥나무를 꺾으면, 내가 열여섯 살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시큼한 사과 냄새가 난다. 그러나 이것은 예외적으로 예전의 냄새가 아직껏 남아 있는 희귀한 예외이다. 그 나이에는, 지금의 나이보다 모든 것을 더욱 유추적으로 생각하고 더욱 은유적으로 해석했다. 더 많은 의미, 더 많은 해석, 더욱 쓸모 있는 다양한 진리들이 있었다. 더 많은 상징이 있었다. 사물에는 더 많은 의미가 감겨 있었다.                (P15)     


우리의 빛나는 이상주의는 당연히 요란하고 공공연한 냉소적 태도로 표출되었다. 토니와 내가 아주 열심히 그리고 아주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오줌을 깔긴 것은 강력한 정화의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대의에 적절하다고 생각했던 모토는 <파렴치를 뭉개버려라>와 <부르주아를 골려 주어라> 이었다.            (P18)     

어버이가 된다는 것은, 토니와 내가 보기에는 무한 책임의 도덕적 범죄였다. 출산은 <물리적인 요건>이 있었을 뿐, <정신적인 요건>이 필요 없는 행위의 결과였다. 사건의 모든 정황과 범법자들의 사회적 배경을 합당하게 참작한 결과, 우리가 내린 선고는 영구 집행 유예였다. 그리고 <사랑의 실수>이며 희생자인 우리 자신에 있어서, 우리의 독립적인 실존은 엄격한 해체에 의해서만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뮈는, <어머니가 오늘 죽었다. 아니 어제 죽었는지도 모른다>라는 말로 다른 모든 사람을 고압 송전선망에 팽개쳐 버렸다. 이런 말장난의 맛을 음미하는, 소위 해체의 행위는 자존심 있는 모든 사춘기 청년의 의무이다.

그러나 해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우리는 분명한 두 간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땅 초토화> 단계로, 조직적 거부, 계획적 반박, 무정부적이고 무차별적이며 광범한 조소이다. 결국 우리는 <분노> 세대의 일부였다.          (P58)    

 

물론 <땅 초토화>는 가는 데까지 가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 나이의 통찰력을 넘어서, 단지 부모의 외양과 도덕성을 거부하거나 뒤집는 것은 조악한 반사적 반응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신선 모둑이 곧 종교를 뜻하듯이, 어린 시절의 의무를 송두리째 파기하는 것은 의무를 부분적으로 승인함을 시사한다. 우리는 그렇게 모순된 행위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원칙을 전혀 양보하지 않고, 집에서 계속 살기로 합의했다. 

<땅 초토화>는 1단계였다. 2단계는 <재건>이었다. 어쨌든, 이것이 계획상에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재건 부분을 너무 꼼꼼히 살피기를 망설이게 하는 합당한 이유와 합당한 비유는 많이 있었다. 

“<재건>은 어때?”

“그게 어쨌다는 건데?”

“그에 대한 계획을 좀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지금 바로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 거야. 시스템 엔지니어링이 바로 그거라고.”

“으음.”

“내 말은, 이 단계에서 어느 특정 노선에 우리 자신을 너무 강하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어쨌거나 우리는 겨우 열여섯 살이잖아.”

그것은 정말 사실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야 인생의 진정한 항해가 시작된다. 우리는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 성숙했다. 세상에 나가면 그때, 당신은 시작하는 것이다.

“....... 도덕적 결정 내리기......”

“....... 인간관계 갖기......”

“....... 유명해지기.........”

“....... 자신의 옷을 직접 고르기.........”

그러나 당분간 이런 영역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당신의 부모를 평가하고, 불평을 털어놓는 단짝 친구와 교제하고, 실제로 말을 걸지 않아도 조무래기들이 잘 알아 주는 형이 되고, 그리고 넥타이 매듭을 한 번 지을지, 두 번 지을지를 결정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P59-60)     

내 머릿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은 것과 신의 죽음 사이에 틀림없이 어떤 인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형식을 갖춘 논증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 불명확한 주고받기였다. 신은 나의 인생에서 10년 전에 증거나 논증없이 나타났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해고되었다. 그러나 그 이유 가운데 내 생각에 완전히 충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일요일의 지루함, 광적으로 신을 믿는 닭살 돋는 학교 친구들, 보들레르롸 랭보, 신성 모독의 즐거움(이것은 위험하다), 찬송가 부르기와 오르간 음악, 그리고 기도의 언어, 수음을 더 이상 죄로 생각할 능력이 없음, 그리고 하나의 확실한 증거로서 사망한 친척들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지켜보고 있다고 믿고 싶지 않은 마음, 이런 것들이 내가 신을 해고한 이유였다. 

그렇게 신을 몽땅 해고해야 했다. 그러나 신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의 지루함이나 수음에 대한 죄책감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몇 주가 안 돼서 마치 나를 벌주듯이, 자주는 아니지만 죽음의 공포가 침범해 나의 삶을 마비시켰다. 여러 번 겪은 공포의 특정 시간과 장소(침대에 누워서, 잠 못 이룰 때)에 어떤 신기한 점이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죽음의 공포는 내가 오른쪽으로 누워서 창문과 멀리 보이는 철도를 향하고 있을 때 왔다. 내가 왼쪽으로 누워서 책꽂이나 그 외의 집 안을 향하고 있을 때는 한 번도 공포가 오지 않았다. 일단 시작되면, 공포는 단순히 돌아눕는 것만으로는 줄어들지 않았다. 갈 데까지 끝까지 가야 했다. 오늘날까지 나는 왼쪽으로 누워 자기를 선호한다. 

그 공포는 어떠했는가? 다른 사람의 경우는 좀 다른가? 나는 모른다. 갑작스레 일어나 어느새 당신을 사로잡는 공포였다. 솟구치는 비명의 욕구는 가정의 규칙이 금지하고 있어서(그들은 항상 금지한다), 당신은 공포 속에 떨면서 입을 딱 벌린채 누워 있다. 완전히 잠이 달아나고, 한두 시간은 지나야 진정된다. 이 모든 현상이 배경과 징후가 되어, 일부는 시각적이고, 일부는 지성적인, 존재하지 않음(죽음)의 지배적 이미지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 이미지는 터무니없는 무의식의 점강법을 써서, <유니버설 픽처스>의 어느 영화의 지각 장면에서 취해 온, 끝없이 뒤로 물러나는 별들의 이미지 같은 것이다. 파자마를 입고 떨고 있는 당신의 육체 안에서 완전히 혼자라는 감각, 시간 (항상 의인화된 시간)이 영원히, 영원히 당신을 배제하고 지나간다는 인식, 미지의 사람 또는 사람들의 올가미에 걸려, 현재의 상황에서 박해당하고 있다는 감각에 갇혀 버린다. 

물론 죽음의 공포는 죽어 가고 있음의 공포가 아니라 죽어 있음에 대한 공포이다. <나는 죽어 있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잠들어 있는 것과 같다. 내가 맞설 수 없는 것은 죽어 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궤변의 하나였다. 밤에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에서 무엇보다 뚜렷한 것은 죽음이 잠과 닮은 점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죽음의 끝에서 내가 <죽어 있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나는 <죽어가고 있음>을 전혀 꺼리지 않을 것이다.         (P76-77)    

 

열여섯 살 때의 삶은 신기하게도 울타리가 쳐져 있지만 안정적이었다. 한편으로 억압이 있긴 했지만, 우리는 이를 증오하면서도 즐겼다. 다른 쪽으로는 집의 억압이 있었지만, 이 역시 증오하면서 즐겼다. 울타리 밖에는, 높은 하늘 같이 막연하고 멋진, 대문자로 시작되는 인생(Life)이 있었다. 때때로 인생의 맛보기를 제공하는 듯 보이는 것들(예컨대 휴일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결국 항상 집의 억압에 속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P84)     

토니와 나는 따분해하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물론 서로에게 지겨웠던 것은 아니었다. 친구가 미울 수도 있고, 짜증스러울 수도 있고, 신의를 버릴 수도 있고, 멍청하거나 비열할 수도 있지만, 결코 친구를 지겨워할 수는 없는 그런 못 말리는 나이였다. 합리성과 타인에 대한 경의를 앞세우며, 우리가 벌 받아 마땅한데도 호되게 응분의 벌을 주지 않는 어른들은 지겨웠다. 어른들은 지겨웠기 때문에 유용했다. 그들은 원자재였다. 그들의 반응은 예측 가능했다. 그들은 감상적이고 관대하기도 하지만, 꽤 까다롭고 심술궂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예측 가능했다. 그들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들의 성실한 인간성을 미리 믿게 했다.

“우리 오늘은 뭐가 될까?” 토니와 나는 때로 서로 묻곤 했다. 그것은 어른이란 지위를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항상 그들 자신이었다. 우리는 대중적 주장대로 아직 성장하지 않았고,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우리는 적어도 우리 책임하에 시험적 행동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넌 결국 어떻게 될까?”

“젤리같이 될까?”

“육군 사관학교 생도같이 될까?”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안 됐다. 변화무쌍한 것이 변함없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가능했다.                  (P96)    

 

내가 느끼고 희망했던 모든 것이 배어 있는 물건들이다. 그러나 나 자신이 겨우 반만 원하고, 겨우 반만 계획했던 물건들이다. 어떤 것은 내가 선택했고, 어떤 것은 나를 위해 선택되었고, 어떤 것은 내가 동의했다. 그것이 뭐 이상한가? 그 나이에 당신은 일부는 원하고, 일부는 동의하고, 일부는 선택당하는 사람이 아니고 무엇인가?              (P105)   

  

이 모든 것이 냉소적이고 계산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정말 나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아니다. 그보다는 상대방을 기쁘게 하려는 섬세한 욕망의 결과였다고 나는 생각하고 싶었다(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의 문제 못지않게 내가 상상하기에 그녀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어떨 것인지의 문제였다.          (P133)     

애닉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취급하는 냉소주의와 불신, 모든 상상적 작가의 말에 대한 겸손한 신뢰가 주변의 위선과 허위의 석영 광산에서 쓰라린 고통의 진리를 추출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고, 나는 항상 믿었었다. 진리 추구는 항상 전투적인 무언가로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진리가 더 높은 것, 즉 상상의 갈등 위에 있는 어떤 것이면서, 노력이 아니라 단순히 내면적 섬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더 단순한 것이 아닌지. 딱히 한 순간이 아니라 몇 주에 걸쳐 나는 생각해 보았다. 

애닉은 나에게 순정(적어도 그 원리)을 가르쳤다. 그녀는 내가 섹스를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반면 나는 그녀에게 뭐랄까, 추상적인 명사로 망라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분명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얼마 후에 이것이 우리 사이의 농담, 민족성 확인이 되었다. 프랑스인은 추상적인 것, 이론적인 것, 일반 원리를 취급하고, 영국인은 세부, 해설, 추가 조항, 예외, 특이성을 취급한다. 우리는 그것이 보다 넓은 차원에서는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자신의 경우에는 딱 들어 맞는 것 같았다.            (P150-151)     

파리 근교의 비양쿠르와 증권 거래소. 이제 이런 것들이 나에게 무슨 상관인가? 1968년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라. 그러면 말해 줄 것이다. 나는 논문에 착수했다(시극의 특성에 대해 위고와 콜리지 사이에 오간, 잘 알려지지 않은 편지를 발견했고, 이를 [모던 랭귀지 쿼터라]에 발표했다). 사랑에 빠졌고,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나의 프랑스어 실력을 향상시켰다. 장중한 시집을 한 권짜리 필사본으로 썼다. 그림을 조금 그렸다. 친구를 몇 명 사귀었다. 나의 아내를 만났다.

내가 영국을 떠나기 전 이럴 줄 알았다면, 나는 기겁했을 것이다. 놀라고 감동하고 그러나 또한, 약간은 실망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의 능력과 성취가 모두 그렇고 그런 법이지만, 나는 이보다는 훨씬 더 큰 기대를 가지고 떠났었다. 나는 무엇을 추구했나? 우선 발랄하고 폭발적이고 풍요로운 자각을 추구했다. 그리고 예술과 인생을 결정적으로 통합해 줄 열쇠를 찾을 꿈을 꾸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굉장히 순진무구한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문제가 크면 클수록 더욱 순진무구하게 들리는 법이다. 토니와 함께 국립 미술관에서 했던 초기 실험에서부터 내가 진지하게 관심을 가졌던 유일한 과제가 바로 예술과 인생의 통합이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실제지만, 해석을 더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그 당시의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며 그 말을 지지했을 것이다. 죄책감을 느낀 것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열정이 우리 <인생>의 공허함의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이 어떻게 서로 작용하는가? 균형점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상정했던 것처럼 둘이 구분될 수 있는 것인가? 인생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거나, 아니면 예술 작품이 보다 고매한 인생의 한 형태가 될 수는 없을까? 예술이라는 것은 우아한 오락에 지나지 않고, 비종교적인 사람들이 거기에 덧붙여 야바위 같은 어떤 정신적 가치를 슬그머니 써넣은 것에 불과한 것인가> 인생은 끝났지만, 예술 또한 끝난 것은 아닌가?

나는 삐걱거리는 등나무 의자에 앉아서 떠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와 <노드>역 어느 한 곳에서 한 시간 내내 기다리며, 고독과 나태가 두뇌 속에 자리 잡을 기회를 주기 보다는, 여기에서 잔 시간, 역에서 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으리라. 계속 움직여라, 아니면 차선책으로 움직이는 것을 중단하지 말라.

중량이 똑같이 분배된, 나의 여행 가방 두 개가 출입문 근처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방을 마지막으로 한번 둘러보았다. 슬펐다. 그러나 내가 슬프다는 것이 막연히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경험이었다. 안 그런가? 이 모든 것이 삶이었다. 안 그런가? 그렇지 않았는가?                      (P194-195)    

 

이론은 언제 정지하는가? 그리고 왜?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지 간에, 우리 대부분에게 이론은 정지한다. 하나의 결정적 사건에 의해 이론이 살해되는가? 어떤 이론의 경우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론은 대개 마모되어 죽는다. 머뭇거리며 상황에 따라 죽는다. 그리고 나중에 당신은 <어쨌든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그 이론을 섬겼던가?>하고 의아해한다.         (P204)    

 

메트로랜드에 돌아온 것은 분명 이율배반적이다. 소년 시절이었다면, 나는 이 귀환을 <영혼의 매독> 또는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이라고 불렀을 것이라고, 감히 말한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인 인생의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성장의 일부가 아닌가. 그런 이유 말고도, 메트로랜드는 살기에 경제적인 곳이다. 레코드 가게 옆에 똥과 짚이 그대로 묻어 있는 달걀을 파는 식품점이 있다. 메리언이 머리를 손질하는 곳에서 도보로 2분만 가면, 진짜 돼지들이 들판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차를 타고 5분을 달리면, 고압선 철탑만이 도시 생활을 상기시키는 확 트인 시골이 나타난다. 어린 소년이었던 시절에 차를 타고 이런 철탑을 지날 때면, 나는 공상 과학 소설에 열중하고 있는 나이절 형을 팔꿈치로 툭 치며 <보라, 누드의 자이언트 여자들>이라고 속삭이곤 했다. 요즘도 그 철탑을 지날 때면 아직도 그 시를 생각하지만, 그것이 들뜨고 부정확한 것이었음을 발견한다.         (P205)      

    

“아냐 난 그저 사정은 바뀐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인생이 대문자 삶(Life)이었고, 그것이 모두 어찌된 일인지 피안에 있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사는 길은 개인적인 결정을 내리게 하는 원칙을 발견하거나 연역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지? 그 당시는 자위행위자들 말고는 누구에게나 그것이 확실해 보였잖아. 안 그래? [우리가 가야 할 인생 길]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고(故) 톨스토이의 팸플릿들을 빼놓지 않고 읽었던 거 기억하지? 만약 네가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그럴 마음이 내키지 않는 육감에 근거해서 너 자신이 결정을 내리고 말 것임을 알았더라면, 아마 당시의 너는 너 자신을 경멸하지 않았을까, 난 정말 궁금할 뿐이다. 나는 원칙이 아닌 육감에 근거해서 결정하는 것이 특별히 놀라운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다만 좀 우울할 뿐이야.”

긴 침묵이 흘렀고 그동안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토니의 <임기응변의 재능> 발휘에 평상시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토니가 마침내 말을 계속했다. 

“내 말은 아마 나도 똑같이 나쁠지도 모른다는 거야. 나는 실용주의라고 하는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많은 결정을 했다고 생각해. 어느 면에서 그것이 너 못지않게 나쁘다고 생각해.”

마치 나를 살균 욕탕에 빠뜨려 놓고, 그 근처에 서서 깨끗이 살균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다음에 내키지 않는 인공호흡을 약간 해주는 것 같았다.             (P228-229)     

당신은 미덕(美德)을 고백할 수 있는가? 난 모른다. 그러나 한번 시도해 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요사이 미덕은 뒤가 구린 개념이다. 어쩌면 미덕은 너무 강력한 단어로 들릴지 모르지만, 매우 긍정적인 어떤 것을 함축한다. 또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찬사를 뿌리칠 수 있는가? 만약 당신이 물에 빠진 사람을 연못에서 끌어내지 못해 죄를 지을 수 있다면, 그다음에 유혹을 물리친 대가로 덕이 높다는 평가를 받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P230)     


그날 저녁 매리언은 바느질하고 나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채소밭에서 토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나는 나의 죽음이 얼마나 남았을까 궁금했다. 30, 40, 50년? 내가 죽을 때까지 나는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와 잠을 잘 것인가?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자지 않도록, 나도 다른 여자와 잠을 자지 말라고, 토니가 빈정댔다. 그러나 그것을 50년 보장한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아직은 나의 아내와의 사랑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충실했던 것 아닌가? (왜 <아직도> 야?) 정절을 지키는 것은 성적 쾌락을 높이는 기능에 불과한 것인가? 만약 성욕이 낮아지면, 또는 죽음의 공포가 높아지면, 그때는 어찌되나? 그리고 장래에 만약 당신이 같은 무리의 친구들에 갑자기 싫증이 나면, 어찌되나? 섹스는 결국, 여행이다.          (P242-243)     

나는 나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설교 같지만, 자만이 아니고, 겸손한 흥분감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요사이 왜 행복이 멸시당하는지 의아하다. 안락 또는 자기만족과 경멸적으로 혼동되고, 사회적 심지어는 기술적 진보의 적으로 심판을 받기 때문인가? 사람들은 행복을 보아도 믿기를 거부하거나, 그것을 단순히 요행으로 얻는 것, 단순히 유전적인 어떤 것, 몇 방울의 이것, 소량의 저것, 두셋의 염색체의 원활한 접합으로 무시한다. 성취로 보지 않는다.                (P263)     


나는 이상하게도 편안한 기분으로 다시 빙 돌아서, 창문을 향한다. 주황 불빛에 내 파자마의 줄무늬가 갈색으로 바뀌었다. 본래 무슨 색깔이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다. 몇 벌의 파자마가 있지만, 모두 똑같은 너비의 줄무늬가 있고, 서로 다른 색깔이다. 그런데 이 빛을 받으면 모두가 우중충한 갈색이 나온다. 나는 잠시 동안 특별한 목적 없이, 이 현상을 생각해본다. 나는 빛의 특성에 대해 절반은 의도적인 생각의 노선을 추구한다. 나트륨 불빛은 그 힘과 근접성으로 만월의 위력까지도 지워 버린다. 그러나 달은 상관하지 않고 계속 간다. 이것은, 틀림없이.... 글쎄, 어떤 중요한 상징성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너무 진지하게 하지는 않는다. 사물에 있지도 않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해 봤자 소용이 없다. 

나는 몇 분 동안 부엌 창밖으로, 촘촘한 전나무를 통과해서 비치는 가로등 불빛을 똑바로 응시한다. 새벽 두시가 된다. 등불이 찰깍 나가고, 나에게는 마름모꼴 알약 모양의 청록색 잔상(殘像)이 남는다. 나는 계속 응시한다. 잔상이 작아지더니, 다음에 그것의 차례가 되니, 그것답게 더욱 조용히 찰깍 꺼진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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