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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pr 22. 2024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

영화 <더 골드핀치>  2019년

<더 골드핀치>(The Goldfinch)는 2019년 개봉한 미국의 드라마 영화이다. 존 크롤리가 감독을, 피터 스트라우험이 각본을 맡았다. 도나 타트의 퓰리처상 수상 동명 소설이 영화의 원작이다. 2019 토론토 영화제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다.   

  

황금방울새(The Goldfinch)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미술가 카렐 파브리티우스가 실물 크기의 황금방울새를 그린 그림이다. 1654년에 서명하고 날짜가 기입된 이 작품은 현재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업은 33.5 X 22.8 센티미터의 크기의 캔버스에 유화를 칠한 작품으로, trompe-l'œil기법을 이용해, 한 때 더 큰 물건의 일부였다. 어쩌면 보호 커버나, 창문틀의 일부였을 수 있다.     

황금방울새는 색감이 풍부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인기 있는 애완동물이었고, 작은 크기의 물통을 들어 올리는 등 간단한 묘기를 가르칠 수 있었다. 건강을 가져다는 심볼로도 알려져 있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에서 기독교의 구원과 예수의 열정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1]

항상 아파트의 사방 벽에 갇혀 사는 도시 아이였던 나에게 미술관이 흥미로웠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어마어마한 크기, 전시실이 끝없이 계속되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람이 더 적어지는 궁전 같은 건물 자체였다. 유럽 실내장식관 깊숙이 밧줄로 차단된 채 방치된 침실과 응접실 들은 깊은 마법에 빠져 잠든 것 같았고 수백 년 동안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것 같았다. 혼자서 전철을 탈 수 있게 된 뒤에 나는 혼자 미술관에 가서 미로 같은 전시실들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길을 잃을 때까지 깊이 더 깊이 들어가서 방황하다가, 가끔 한 번도 보지 못한 갑옷과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잊힌 전시실을 발견하곤 했다(그리고 가끔은 두 번 다시 찾지 못했다).

나는 엄마를 따라 입장을 기다리는 줄에 서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두 층위의 불룩한 천장 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열심히 보다 보면 가끔 깃털처럼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는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던 장난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하지 않게 되었다.          (P33)   

  

“난 이것도 좋아.” 엄마가 내 옆으로 와서 마음을 유독 사로잡는 작은 정물화를 보면서 속삭였다. 어두운 바탕과 대비되는 흰 나비가 빨간 과일 위를 날고 있는 그림이었다. 짙은 초콜릿 같은 검정색 배경에는 가득 찬 창고와 역사,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는 복잡한 온기가 느껴졌다. 

“네덜란드 화가들은 이런 부분을 예리하게 살리는 방법을 정말 잘 알았어. 부패하기 직전의 숙성을 말이야. 이 과일은 완벽하지만 오래가지 않을 거야, 썩기 직전이지. 그리고 특히 여길 봐.” 엄마가 내 어깨 위로 손을 뻗어 허공에서 손가락을 따라 그리며 말했다. “여기 이 나비 말이야.” 아래쪽 날개의 가루 느낌과 섬세함에 엄마가 건드리면 색이 배어나올 것만 같았다. “정말 아름답게 그렸지. 순간의 떨림이 담긴 정물이야.”

“이거 그리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요?”

그림에 약간 너무 가까이 서 있던 엄마가 뒤로 물러나 그림을 보았다. 껌을 씹고 있던 경비원이 엄마의 등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지만 엄마는 전혀 몰랐다. 

“음, 네덜란드는 현미경을 발명했어.” 엄마가 말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보석을 세공하고 렌즈를 연마하는 사람들이었지. 최대한 섬세하게 그리려고 했어. 아주 작은 것들도 의미가 있으니까. 정물화에 그려진 파리나 곤충, 시든 꽃잎, 사과의 검은 점을 볼 때마다 화가가 보내는 비밀 메시지를 보고 있는 거야.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게 되어 있고, 모든 것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메시지 말이야. 삶속의 죽음, 그래서 정물화를 죽은 자연이라고 부르는 거야. 처음에는 아름다운 것들에, 활짝 핀 꽃에 정신이 팔려서 부패가 시작되는 작은 반점이 보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더 자세히 보면 바로 거기 있지.”            (P37-38) 

    

우리는 할스가 그린 해골을 든 소년의 초상화 앞에 잠깐 서 있다가 (“화내지 마, 시오, 하지만 쟤 누구 닮은 거 같지 않니? 누굴까.” 엄마가 내 뒤통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머리 좀 자르면 좋을 애?”) 또 할스가 연회를 벌이는 장교들을 그린 커다란 초상화 두 점 앞에 잠시 섰는데, 엄마 말에 의하면 아주, 아주 유명하고 렘브란트에게 큰 영향을 미친 그림이었다. (“반 고흐도 할스를 굉장히 좋아했어. 어딘가에 할스에 대해서 프란스 할스의 검정색은 적어도 스물아홉 가지는 된다!라고 썼지. 아니, 스물일곱 가지였나?”) 나는 시간을 잊은 듯 몽롱한 기분으로 따라다니면서 엄마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에 정신이 팔린 것 같아서 기뻤다. 우리에게 주어진 30분이 거의 다 된 것 같았지만 나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서 학교 회의를 아예 놓치면 좋겠다는 유치한 생각에 여전히 게으름을 피우며 엄마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고 싶었다.                 (P38-39) 

    

해골을 든 젊은 남자-프란스 할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 가장 중대한 사실은 누워 있는 사람들 중에 엄마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 살펴보고 -- 도저히 얼굴을 못 보겠을 때에도 나는 엄마의 발, 엄마의 옷, 검정색과 흰색이 섞인 엄마의 신발을 알았으므로 괜찮았다 -- 엄마가 없다고 확신한 후에도 눈을 감은 병든 비둘기처럼 내 안 깊숙이 틀어박힌 채 시체들 사이에 억지로 서 있었다. 

뒤쪽 전시실에 시체가 더 있었다. 세 명이었다. 아가일 무늬 조끼를 입은 뚱뚱한 남자, 완전히 엉망이 된 노파, 관자놀이에 빨갛게 쓸린 상처 외에는 말끔한 우윳빛 새끼 오리 같은 어린 소녀. 더 이상은 없었다. 나는 장비가 여기저기 널린 여러 전시실을 돌아다녔지만 바닥의 핏자국뿐 시체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엄마가 있던 엄마가 갔던 멀리 떨어진 <해부학 강의> 전시실로 걸어가 보았지만 마찬가지로 들것과 장비들밖에 없었다. 내가 그 기이하게도 요란한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나를 보는 사람은 벽에 걸려 엄마와 나를 빤히 보던, 이상한 표정의 그 네덜란드인 두 명밖에 없었다. 당신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P66-67)   

  

모든 시선이 주택 지구로 쏠렸는데, 나는 그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았다. 84번가 (너무 멀어서 나에게는 안 보였다)에서 위험물 전담 대원들이 물대포를 쏘아서 불발된 폭탄을 ‘해체’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든 말을 하려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고 소방차 앞을 지나가려 했지만 경찰들이 몸으로 밀고 팔을 휘젓고 손뼉을 쳐서 사람들을 몰아냈다. 

내가 어떤 소방관의 겉옷을 붙들었다. 껌을 씹고 있는 젊고 친절해 보이는 남자였다. “아직 저 안에 누가 있어요!” 내가 외쳤다. 

“그래그래, 우리도 알아.” 소방관이 나를 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건물에서 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졌어. 5분 후에 다시 들어가래.”

누가 내 등을 급하게 밀었다. “움직여, 움직여!”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억양이 강하고 거친 목소리가 말했다. “나한테서 손 떼!”

“당장! 다들 움직여요!”              (P73)  

   

경찰이 몰아대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헤엄치듯 거슬러 올라가려 했지만 저곳으로 돌아가서 억수 같은 비와 수많은 군중 속에서 엄마를 찾으려 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생각했다. 집에 가서 만나면 돼.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한 곳은 집이었다. 위급 상황에 대비한 약속 장소는 집이었다. 엄마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찾으려 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옹졸하고 비이성적인 실망감을 느꼈다. 나는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고 사실상 모든 물체가 두 개로 보였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이름 모를 얼굴들을 살피면서 엄마를 계속 찾았다. 엄마는 밖으로 나왔다. 그게 제일 중요했다. 엄마는 폭발의 영향이 가장 큰 곳에서 한참 떨어진 전시실에 있었다. 시체 중에도 엄마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미리 정했다 해도, 그게 아무리 이성적인 행동이라 해도, 나는 엄마가 나 없이 혼자서 미술관을 나왔다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P75) 

    

사회복지사들 -- 나를 잡고 흔들거나 얼굴 바로 앞에서 손가락을 딱딱 울리지만 않았을 뿐 내 시선을 끌기 위해서 뭐든지 했다 -- 은 그들이 이제 하려는 말을 내가 얼마나 듣고 싶지 않은지 이해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차례로 식탁 위로 몸을 숙이고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반복했다. 엄마가 죽었다. 날아오는 파편에 머리를 맞았다. 즉사였다. 두 사람은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이것이 자기들 일에서 제일 힘든 부분이라고,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정말 정말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죽었고 엄마 시신은 뉴욕 병원에 안치되어 있다고 했다. 이해했니?                (P99)   

  

엔리케가 서류 판을 내려다보았다. “음, 테오 --” 그는, 아니 두 사람 모두 내 이름을 ‘테오’라고 틀리게 발음했다. “너는 즉각적인 보호가 필요한 미성년자야. 우리는 너를 일종의 비상 양육 관리 프로그램에 넣을 거야.”

“양육 관리라고요?” 그 말을 듣자 속이 뒤틀렸다. 그것은 법정, 문이 잠긴 기숙사, 가시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농구 코트를 암시했다. 

“음, 그렇다면 보호 서비스라고 하자.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실 때까지만이야--”

“잠깐만요.” 내가 말했다. 모든 일이 급속도로 내 손을 벗어났고, 엔리케가 따뜻하고 친숙한 관계라는 잘못된 가정 속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당황했다. 

“우리가 그분들과 연락이 될 때까지 임시 조정이 필요할 뿐이야.” 한국인 여자가 몸을 숙이며 말했다. 그녀의 숨결에서 민트 향이 났지만 마늘 냄새도 아주 약간 났다. “네가 얼마나 슬플지 우리도 알지만, 걱정할 건 하나도 없단다. 우리의 일은 널 사랑하고 너에게 마음을 쓰는 사람과 연락이 될 때까지 너를 안전하게 지키는 거야, 알겠지?”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끔찍했다.                  (P101-102)

“남북전쟁에 관심이 많구나?” 조심스러운 침묵 뒤에 호비가 말했다.

“으음-- 네.” 내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런 셈이에요.” 나는 선생님이 다시 쓰라고 할 정도로 기술적이고 사실로 가득한 과제물을 써서 냈기 때문에 북군의 야전 포병술에 대해서 잘 알았다. 나는 또 앤티텀의 사망자들을 찍은 브래디의 사진에 대해서도 알았다. 나는 그 사진들을, 코와 입이 피로 검게 물든 텅 빈 눈의 남자아이들을 인터넷으로 봤다. “링컨에 대해 6주 동안 수업을 했어요.”

“브래디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사진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었지. 거기 봤니?”

“아니요.” 무척 중요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이 갇혀 있다가 이제 막 떠오를 것 같았는데, 표정 없는 얼굴의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에 그만 놓치고 말았다. 이제 다 사라져버리고 이미지만이 남았다. 팔다리를 구부린 채 하늘을 보면서 누워 있는 죽은 소년들.

이어진 침묵은 무척 괴로웠다. 우리 두 사람 중 누구도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마침내 호비가 다리를 풀었다가 다시 꼬았다. “내가 하려던 말은 -- 미안하구나, 널 괴롭게 해서.”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P169)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뺨을 긁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조차 멍청하게 느껴졌다. 기억은 생각하려고 애쓸수록 점점 더 희미해지는 꿈처럼 비현실적으로 반짝거리며 희미해지고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느낌, 강렬하고 달콤한 저류였다. 그것은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교실에서, 통학 버스에서, 침대에 누워서 안전하거나 유쾌한 무언가를, 불안으로 가슴이 조여들지 않는 장소나 환경을 생각하려고 애쓸 때면, 나는 그가 미지근한 흐름 속으로 가라앉아 모든 것이 다 괜찮은 비밀의 장소로 휩쓸려 가기만 하면 되었다. 계피색 벽, 창유리에 맺힌 비, 광대한 정적, 19세기 그림 배경에 칠해진 광택제처럼 깊고 먼 느낌, 낡아서 올이 풀린 깔개, 그림이 그려진 일본 부채, 촛불 빛 속에서 깜빡이는 옛날 밸런타인 카드, 어릿광대와 비둘기와 하트 모양을 장식한 화한, 어둠 속 파리한 피파의 얼굴.            (P199-200)    

 

호비 아저씨가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가게 뒤의 가게로 가자.”

“네?”

아저씨가 웃었다. “가게 뒷방이라고. 손님들이 보는 건 무대 세트, 그러니까 대중에게 공개된 얼굴이지만 중요한 일은 여기에서 일어나지.”

“그렇군요.” 내가 계단 아래 펼쳐진 미로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꿀 같은 황금색 나무, 당밀을 부어놓은 듯한 검은 나무, 약한 빛을 받아 반짝이는 동과 은과 금박, 노아의 방주처럼 가구는 각각 비슷한 종류끼리 모여 있었다. 의자는 의자끼리, 소파는 소파끼리, 시계는 시계끼리 모여 있었고 책상과 장식장과 하이보이가 엄격하게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중앙의 식탁들은 이리저리 몸을 돌려 다녀야 하는 좁은 미로를 만들었다. 작업장 뒤쪽 벽에는 오래되고 흐릿한 거울들이 따닥따닥 붙어서 낡은 무도회장이나 촛불이 켜진 살롱 같은 은색을 발하고 있었다.            (P222)     


스완슨 선생님이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고는 숄이 걸쳐진 의자에 기대어 앉으며 말했다. “시오, 작고 일상적인 일들이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낼 수 있다는 걸 알면 넌 아마 놀랄 거야. 하지만 누구도 대신 해줄 수는 없어. 열린 문을 찾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너야.”       (P226)    

      

하지만 뜻밖에도 문이 정말로 열렸다. 그것도 정말 생각지 못했던 호비 아저씨의 작업장에서, 의자 수리를 ‘돕는 것(기본적으로 아저씨가 좌석을 뜯어서 벌레가 갉아 먹은 부분, 성급하게 수리한 부분, 덮개 아래 숨겨진 그밖의 여러 끔찍함을 보여주는 동안 옆에 서 있는 것이었다)’은 곧 일주일에 사나흘 정도 학교가 끝난 오후에 내가 이상할 만큼 몰입하는 두세 시간이 되었다. 나는 병에 라벨을 붙이고, 토끼 가죽 아교를 혼합하고, 서랍 부품들(‘성가신 조각들’)을 정리하고, 때로는 호비 아저씨가 선반기로 의자 다리 다듬는 모습을 구경만 했다. 철문을 닫아두어서 가게는 늘 어두웠지만 가게 뒤의 가게에서는 괘종시계가 똑딱거리고 마호가니가 빛나고 식탁 위로 빛이 들어와 금빛 연못을 만들었고, 진귀한 동물원 같은 아래층의 삶은 계속되었다. 

뉴욕의 모든 경매 회사가 호비 아저씨에게 일을 맡겼고 개인 고객들도 많았다. 아저씨는 소더비, 크리스티, 테퍼, 도일 같은 회사의 의뢰를 받아 가구를 수리했다. 학교가 끝난 후, 괘종시계가 졸린 듯이 똑딱이는 동안 호비 아저씨는 나에게 여러 가지 목재의 숨구멍과 광택, 색깔을 가르쳐주었다. 호피 무늬 단풍나무가 이루는 물결과 광택, 옹이가 있는 호두나무의 거품 같은 결. 또한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와 서로 다른 냄새까지 가르쳐주었다. “가끔 무슨 나무인지 잘 모르겠으면 냄새를 맡아보는 게 제일 쉬워.” 향료 냄새가 나는 마호가니, 먼지 냄새가 나는 떡갈나무, 특유의 톡 쏘는 향과 꽃향기가 나는 흑벚나무, 호박 수지 냄새가 나는 자단, 톱과 카운터싱크, 직선형 줄과 물결형 줄, 굽은 날과 숟가락형 날, 죔쇠와 연귀맞춤 블록....                    (P227) 

    

그림을 돌려주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마법처럼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돌려줄 수 있었다면 나는 순식간에 돌려줬을 것이다. 다만 나 자신이나 그 그림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돌려줄 방법을 몰랐다. 미술관 폭발 사건 이후 무슨 이유로든 주인 없이 방치된 가방은 폐기 처분한다는 공지가 뉴욕 전역에 나붙었다. 그래서 익명으로 그림을 돌려주는 여러 가지 좋은 방법들을 생각했지만 대부분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수상한 여행 가방이나 꾸러미는 이유를 불문하고 파괴될 터였다. 

내가 아는 어른들 중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두 명밖에 없었는데, 바로 호비 아저씨와 바버 부인이었다. 둘 중에서 호비 아저씨가 훨씬 더 이해심이 많고 덜 무서워 보였다. 애초에 미술관에서 그림을 가지고 나오게 된 사정을 호비 아저씨에게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일종의 실수였다고, 웰티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뇌진탕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몰랐다고, 그림을 우리 집에 그렇게 오래 둘 생각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갈 곳도 정해지지 않은 애매한 상황에서 내가 먼저 나서서 많은 사람들이 아주 심각한 잘못이라고 생각할 것이 뻔한 행동을 인정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 같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즈음에 -- <타임스> 경제면에 흑백으로 작게 실린 그림을 발견했다. 

플랫의 불명예스러운 사건 뒤 집안을 덮친 불안감 때문인지 가끔 신문이 서재에서 해체되어서 한두 장씩 밖으로 나왔다. 제대로 접히지 않은 신문 낱장들이 거실의 커피 테이블 위 냅킨으로 싼 소다수 컵(바버 씨의 흔적) 근처에 흩어져 있었다. 그것은 보험 산업에 관한 길고 지루한 기사로 경제면 뒤 페이지까지 이어졌고, 악화된 경제 상황에서 대두되는 대규모 미술전의 재정적 어려움, 특히 작품 운반 보험의 난점을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사진 밑의 설명이었다. <황금방울새>, 카렐 파브리티우스, 1654년의 걸작, 소실됨.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버 씨의 의자에 앉아서 내 그림에 대한 언급이 더 없나 싶어서 빽빽한 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나는 이미 그림을 내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는데, 마치 평생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P237-238)     

엄마는 자물쇠를 바꾸고 신지아와 경비원들에게 엄마가 출근한 사이에 혹시 아빠가 오더라도 집에 들여보내지 말라고 말해두었다. 물론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고, 아빠가 우리 집에 들어가서 엄마 물건을 뒤지고 자기 마음대로 해도 막을 길이 없었다. 가만히 서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열심히 궁리하는 동안 수십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그림이었다. 나는 몇 주 동안이나 아파트로 가서 그림을 처리하겠다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겠다고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계속 미루고 미루었는데 아빠가 와버렸다.           (P250-251)


나는 가끔 밤중에 울부짖으며 잠에서 깼다. 폭발 사건의 가장 나쁜 점은 내 몸에 그것이, 그 열기와 뼈가 떨리는 느낌과 굉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꿈속에서는 항상 밝은 출구와 어두운 출구가 있었다. 밝은 길은 뜨겁고 불이 넘실거렸기 때문에 나는 어두운 길로 가야 했다. 하지만 어두운 길에는 시체가 있었다.             (P380-381)     


아빠가 보리스를 좋아했지만 나는 보리스가 사실상 우리 집에 들어와 살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아빠의 관심을 돌리려고 끊임없이 애를 썼는데,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빠는 도박과 약에 정신이 팔려서 내가 스라소니를 데려다가 2층 내 방에서 키워도 몰랐을 것이다. 잰드라의 경우에는 조금 더 어려웠는데, 사실 보리스가 간식을 훔쳐다가 우리 집안에 기여하고 있었는데도 그녀는 돈이 더 든다고 불평하곤 했다. 잰드라가 집에 있으면 보리스는 2층에 얌전히 앉아서 얼굴을 찌푸리고 <백치>를 러시아어로 읽으면서 내 휴대용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다. 나는 아래층에서 맥주와 음식을 가져다가 보리스에게 주었고, 보리스의 취향대로 차 끓이는 법 --뜨겁게 끓인 다음 설탕 세 숟가락을 넣는다-- 을 배웠다.            (P386)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방문을 닫고 불을 전부 켠 다음 마리화나가 있으면 그것을 피우면서 휴대용 스피커로 음악 --쇼스타코비치와 에릭 사티처럼 엄마 때문에 아이팟에 넣어두었지만 어쩌다 보니 지우지 않은, 예전에는 듣지 않던 음악-- 을 듣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보았다. 대부분 미술 책이었는데, 엄마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 회화의 걸작들>, <델프트의 황금기>, <렘브란트와 무명 제자들의 그림>. 나는 학교 컴퓨터에서 찾아보고 카렐 파브리티우스에 대한 책(백쪽밖에 안 되는 작은 책이었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학교 도서관에는 없었고, 학교의 컴퓨터 시간은 감시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무서워서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가 없었다. 특히 아무 생각 없이 링크(헷 퓌테르트예(Het Puttertje), 황금방울새, 1654)를 클릭했다가 이름과 주소를 입력해야 하는 사라진 미술품 데이터베이스라는 무시무시한 공식 검색 사이트로 연결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터폴과 사라진이라는 단어를 보고 너무 겁이 나서 컴퓨터를 아예 꺼버렸는데, 사실 컴퓨터를 끄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방금 뭐 한 거니?” 내가 다시 컴퓨터를 켜기도 전에 도서관 사서 오스트로 선생님이 물었다. 선생님이 내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P411)     

1622~1654년. 교사의 아들. 그의 그림으로 확인된 작품은 12점도 안됨. 델프트 도시 역사가 판 블레이스베이크에 따르면 파브리티우스는 화약 공장이 폭발한 오전 열 시 반에 자기 작업실에서 <델프트의 구교회>를 그리고 있었다. 책에 따르면 이웃 사람들은 폐허가 된 작업실에서 ‘무척 슬퍼하면서’, 그리고 ‘무척 힘들게’ 화가 파브리티우스의 시선을 끌어냈다. 도서관 책에 나온 이 짧은 설명중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우연이라는 요소였다. 나와 파브리티우스에게 무작위로 닥친 재난은 우리 두 사람 모두가 보지 못했던 똑같은 지점에서, 즉 우연이라는 점에서 만났다. 아빠는 그것을 빅뱅이라고 불렀는데, 비꼬거나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운명의 힘을 존중하며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몇 년 동안 연구해도 인과관계를 절대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나로 합쳐지는 것들, 여러 개로 나뉘는 것들, 시간 왜곡, 엄마가 미술관 앞에 서 있는데 시간이 흔들리고 빛이 이상해지는 것, 광대한 빛의 가장자리를 맴도는 불확실성. 모든 것을 바꿀 수도, 바꾸지 못할 수도 있는 길 잃은 확률.           (P412-413)   

  

시간 왜곡, 어떤 일을 두 번, 혹은 그 이상 보는 방법. 아빠의 의식, 아빠가 돈을 거는 전략, 아빠의 신탁과 마술이 모두 자신이 보지 못한 패턴에 대한 전방위적인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듯이, 델프트의 폭발 사건 역시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복잡한 사건들의 일부였다. 그 복합적인 결과에 어지러워질 수도 있다.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돈은 중요한 게 아니야. 돈이 나타내는 건 에너지야. 알겠니? 돈은 그렇게 좇는 거야. 우연의 흐름을 따라서 말이야.” 황금방울새가 한결같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나무판은 무척 작아서 내가 빌린 미술 책에 적힌 것처럼 ‘A4 용지보다 아주 조금 클 뿐’이었다. 하지만 제작 연도와 실제 치수 같은 교과서적인 죽은 정보는 전혀 상관없었다. 패커스 팀이 4쿼터에서 2점 앞서고 있는데 얼음 같은 싸락눈이 경기장에 쌓이기 시작하면 신문 스포츠란의 통계가 상관없어지듯이 말이다. 그림은, 그림의 마법과 생생함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카메라에 눈송이와 푸르스름한 빛이 소용돌이치는 그 이상하고 비현실적인 순간과 같았다. 그렇게 말없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순간이면 경기는,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는 더 이상 아무 상관없고 그저 술만 마시고 싶어진다. 나는 그림을 보면 항상 똑같은 한 지점에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도 존재하고 언제까지나 존재할, 쏟아지는 찰나의 햇빛이었다. 방울새의 발목에 달린 사슬이 눈에 띄는 것은, 혹은 잠깐 파닥이다가 항상 늘 같은 절망의 자리에 내려앉아야만 하는 것이 살아 있는 작은 생물에게 얼마나 잔인한 삶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주 가끔뿐이었다.             (P413-414)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했어.” 잰드라가 말했다. 내가 아니라 보리스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요?”

“두 시간 전에 사고가 났대. 일하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

보리스와 내가 마주 보았다. “와.” 내가 말했다. “어떻게 된 거래요? 차가 완전 망가졌대요?”

“혈중알코올농도가 0.39였어.”

그 숫자는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아빠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와.” 내가 잔돈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그럼 집에는 언제 오시는데요?”

잰드라가 텅 빈 표정으로 내 눈을 보았다.“집?”

“병원에서요.”

잰드라가 재빨리 고개를 젓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자를 찾더니 자리에 앉았다. “너 못 알아들었구나.” 잰드라의 얼굴은 텅 비고 낯설었다. “죽었어, 죽었다고.”            (P460)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속이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결국 우리 자신에게까지 자신의 모습을 속이게 된다.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P505)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창피했지만 피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생각했다. 물어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알고 싶었다. 피파도 악몽을 꿀까? 사람이 많은 곳을 무서워할까? 땀을 흘리며 두려워할까? 내가 종종 그랬던 것처럼, 폭발로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2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스스로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까? 피파의 발작적인 웃음에서 무모함을 자처하는 태도가 느껴졌는데, 나는 보리스와 함께 보낸 광란의 밤들 때문에 그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것은 아찔함과 히스테리의 경계였고, (어쨌든 나 자신의 경우에는) 아슬아슬하게 빗겨난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막의 어느 밤이면 나는 몇 시간이나 계속 괴로울 정도로 웃으며 몸부림치다가 배가 아파서 몸을 구부리곤 했고, 그것을 멈출 수만 있다면 나는 달리는 차 앞에라도 기꺼이 뛰어들었을 것이다.               (P519)  

   

“음, 네 에세이를 보면 넌 형이상학적 영역에 끌리는 것 같아. 더 나은 용어가 없어서 내가 붙인 이름인데, 왜 선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가 같은 문제들 말이야.” 내가 멍하니 보고만 있자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운명은 무작위적인가라는 문제도 있고, 너의 에세이가 다루는 주제는 데시카 감독의 영화적 측면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근본적인 혼돈과 불확실성이야.”

“모르겠어요.” 불편한 침묵이 이어지자 내가 말했다. 내 에세이가 정말 그런 것들에 대한 것이었나? 나는 <자전거 도둑>을 (그리고 <케스>, <라 무에트>, <라콤 루시앙>등 레보위츠 선생님 수업에서 본 아주 우울한 외국 영화들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레보위츠 선생님은 불편할 정도로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밝은 빨강색 안경을 고쳐 쓰고 말했다. “음, 우리가 유럽 영화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은 대부분 꽤 무거워, 그래서 네가 영화 전공자를 위한 세미나에 들어왔으면 하는 거야. ‘3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나 ‘무성영화’ 같은 수업 말이야. <칼리가리 박사>도 다루지만 버스터 키튼의 영화랑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많이 다뤄. 혼돈을 위협적이지 않은 틀에서 보고, 삶을 긍정하는 내용이야.”         (P554-555)     


그날 밤 나는 부엌에서 전화번호부를 가지고 내 방으로 돌아와서 창고 : 미술품 항목을 찾아보았다. 맨해튼과 외곽 구에 수십 개의 업체가 있었는데, 서비스를 자세히 설명해놓은 으리으리한 지면 광고를 실은 업체가 많았다. 흰 장갑을 끼고 집에서부터 직접 옮겨 드립니다! 집사가 은쟁반에 명함을 얹어서 내미는 그림. 브링언 타크웰. 1928년 창립. 다양한 업체 및 개인 고객을 위하여 기밀을 보장하는 최첨단 보관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아트테크, 유서 깊은 작품. 기록 보관 솔루션. 온습도 자동 기록 모니터. 우리는 AAM(미국 미술관 협회) 기준인 기온 21도, 상대습도 50퍼센트에 맞춰 개별적으로 온도를 제어합니다.

하지만 전부 지나치게 정교했다. 나는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함과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P572)

[2]

“네, 그리니치빌리지예요. 제가 가게를 운영하고 판매를 관리하고 있어요. 파트너는--” 나는 파트너라는 말이 아직 너무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았다. “사업 파트너인 제임스 호바트 씨는 장인이에요. 복원 작업을 하시죠. 언제 한번 놀러 오세요.”

“아, 근사해. 골동품이라니!” 바버 부인이 탄성을 발했다. “음-- 내가 오래된 물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도 알지? 우리 애들도 흥미를 좀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난 항상 적어도 한 명은 그랬으면 했거든.”

“음, 킷시가 있잖아요.” 플랫이 말했다. 

“정말 의문이야.” 바버 부인이 플랫의 말을 못 들은 척 말을 이었다. “내 자식들 중 단 한 명도 예술가적 기질이 없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니? 네 명다 문외한이라니까.”  

“아, 왜 그러세요.” 내가 최대한 장난스럽게 말했다. “토디랑 킷시가 피아노 레슨 하던 거 기억나는데요. 앤디는 스즈키 바이올린 교실에 다녔고요.”

바버 부인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오, 너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잖니. 우리 애들은 시각적인 감각이 없어. 그림이든 인테리어든 그런 건 볼 줄을 몰라. 음--” 바버 부인이 다시 내 손을 잡고 악수했다. “네가 어렸을 때 복도에 걸린 그림들을 유심히 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지. 넌 항상 제일 좋은 그림으로 다가갔어, 프레더릭 처치의 풍경화, 피츠 헨리 레인, 라파엘 필, 아니면 존 싱글턴 코플리 -- 너도 알지, 보닛을 쓴 소녀의 작은 타원형 초상화?”

“그게 코플리였어요?”

“그럼, 조금 전에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더구나.”

“진짜 렘브란트예요?”                   (P28)     


나는 머리를 식히려고 택시를 타는 대신 걸었다. 깨끗하고 촉촉한 봄날이었다. 햇살이 비구름을 뚫고 나왔고 수많은 회사원들이 횡단보도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나에게 뉴욕의 봄은 항상 독을 품은 계절이어서, 수선화와 잎이 돋는 나무에 핏방울과 옅은 물보라 같은 공포와 환영이 뒤섞여서 엄마의 죽음을 상기시켰다(잰드라라면 굉장해! 재밌어!라고 했을 것이다). 앤디의 소식을 들으니 누군가가 엑스레이 스위치를 켜서 모든 것을 네거티브 필름으로 바꾼 것 같아서, 수선화와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과 모퉁이에서 호루라기를 부는 교통경찰들 사이에서도 내 눈에는 죽음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죽은 자들로 가득했고 시체들이 버스에서 쏟아져 내려 일을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백 년 후에는 치아 충전재와 심박 조절기와 아마도 천 몇 조각과 뼈밖에 남지 않으리라.                     (P32)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의자 다리를 쓸면서 이렇게 말했다. “의자 다리는 말이야, 보통 밑부분이 찌그러지고 닳지. 옛날 나무를 쓰더라도 잘 어우러지게 하려면 새로 자른 다리 바닥을 체인으로 마모시켜야 해...... 아주아주 가볍게, 너무 심하게 마모시키라는 말이 아니야...... 특유의 모양도 넣어야 돼. 보통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더 많이 찌그러지니까, 알겠어?”) 나는 아저씨가 산산조각 난 18세기 찬장에서 구해낸 나뭇조각들로 덩컨 파이프 본인이 만든 듯한 탁자를 만드는 것도 봤다. (“이 정도면 될까?” 호비 아저씨는 본인이 어떤 기적을 일으켰는지 모르는 것처럼 초조하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또는 아저씨가 평범한 가구에 동시대의 웅장하고 낡은 잔해에서 구해낸 장식을 더하면 --루셔스 리브의 ‘치펀데일’ 이층장처럼-- 걸작과 거의 구분할 수 없는 작품이 탄생했다.              (P37)     

물론 배운 것도 있었다. 그것은 아주 서서히 찾아왔지만 사실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으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비밀이었고 직접 배워야 했다. 바로 골동품 거래에서는 ‘적절한’ 가격이라는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객관적인 가치 --정가표-- 는 무의미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고객이 돈을 들고 오면 (대부분이 그랬다) 책에서 뭐라고 하든, 전문가가 뭐라고 하든, 최근에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비슷한 품목이 얼마에 팔렸든 상관없었다. 물건은, 어떤 물건이든, 우리가 누군가에게서 받아낼 수 있는 돈만큼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P43)     

하지만 우울증은 적절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개인적인 범위를 훌쩍 넘어선 슬픔과 불쾌함을 모두 아우르는 추락이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모든 인간과 인간의 모든 노력이 정말 구역질나고 혐오스러웠다. 생물학적 질서에 대한 몸서리쳐지는 혐오감. 노화, 병, 죽음,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것들. 아름다운 사람들도 곧 썩기 시작할 물렁물렁한 과일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여전히 섹스를 하고 번식을 하고 무덤의 새로운 먹이를 내질렀다. 그것이 일종의 구원이나 선(善), 또는 아무튼 도덕적으로 존경할 만한 일이라는 듯이 고통에 시달릴 새로운 존재를 점점 더 많이 생산했고 무고한 존재들을 승자 없는 게임에 끌어들였다.         (P71)     


이제는 내가 수년 전에 그림을 창고에 맡긴 이유, 애초에 그것을 내가 가지고 있던 이유, 미술관에서 가지고 나온 이유가 기억나지 않았다. 시간 때문에 흐릿해졌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일부였다. 아니, 내가 두 세계에 살고 있고 창고의 사물함은 실제 세계가 아니라 상상 속 세계의 일부인 것 같았다. 창고의 사물함을 잊는 것, 혹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척하는 것은 쉬웠다. 나는 사물함을 열어보면 그림이 사라지고 없는 것은 아닐까 반쯤 생각했지만 또 그렇지 않다는 사실도 알았다. 내가 그림을 그곳에 넣어둔 이상 그것은 내가 죽여서 지하실에 묻은 사람의 시체처럼 어둠 속에 갇혀서 영원히 나를 기다릴 것이다.              (P72-73)   

  

“내가 확실히 말하길 바라나? 바로 이 자리에서? 좋아. 그렇게 하지. 자네는 웰턴 블랙웰과 그의 조카와 함께 32호 전시실에 있었어. 그리고 자네는 -- ” 약을 올리듯 느릿느릿한 미소. “유일하게 거기서 걸어 나왔지. 32호 전시실에서 또 뭐가 사라졌는지 우리 둘 다 알잖아, 안 그런가?”

온몸의 피가 발로 쏠리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사방에서 은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웃음소리,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타일 벽을 맞고 튀어 올랐다. 

“알겠나?” 리브가 잘난 척하며 말했다. 그러더니 다시 먹기 시작했다. “아주 간단하잖아, 그러니까, 분명히 말이야.” 그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꾸짖듯이 말했다. “분명히 아무도 추측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자네가 그 그림을 가지고 나왔고, 블랙웰의 파트너에게 반지를 가져갔을 때 그림도 준 거야.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 그래, 맞아.” 그가 말했다. 내가 목소리를 높여 말을 막으려 하자 루셔스가 의자를 약간 옮기고 손을 들어 눈을 비추는 햇빛을 가렸다. “결국은 제임스 호바트가 자네의 보호자가 되었지. 자네는 피보호자가 됐고, 호바트는 자네가 가지고 온 작은 기념품을 여기저기 맡기면서 그걸 이용해서 돈을 벌었어.”

돈을 번다고? 호비 아저씨가? “맡긴다고요?” 내가 말했다. 그러고는 아차 싶어서 다시 말했다. “뭘 맡긴다는 겁니까?”

“음,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연기가 이제 슬슬 질리는군.”

“아니, 진심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리브는 무척 만족스러운 듯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 뛰어난 그림이야.” 그가 말했다. “아름답고 파격적인 작품이지 -- 아주 독특해.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서 그 그림을 처음 봤을 때를 잊을 수가 없어..... 미술관의 다른 작품들과는 정말 전혀 달랐지. 아니, 내 생각엔 그 시대의 어떤 그림과도 달라. 1600년대에 그려졌다고 믿기 힘들 정도지. 작은 그림 중에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이야. 안 그런가? 뭐라더라.”

그가 날 조롱하려는 듯 말을 잠시 멈췄다. “수집가가 뭐라고 했더라 -- 있잖아. 그 그림을 재발견한 미술 비평가, 프랑스인 말이야. 1890년대에 어느 귀족의 창고에 파묻혀 있던 그림을 발견하고서 ‘처절한 노력’을 했지.” 리브는 손가락으로 따옴표를 그렸다. “그걸 손에 넣기 위해서 말이야. ‘잊지 마, 난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작은 황금방울새를 가져야겠어.’ 물론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야. 유명한 말 있잖아. 분명 자네도 알겠지, 이렇게 오래됐으니까 자네도 그림에 대해서, 그림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알 거야.”

나는 냅킨을 내려놓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P82-83)  

   

루셔스 리브가 포크를 내려놓았다. “음, 내 제안은..... 자네가 내 말을 알아들을 생각이 있다면 말이지만-- 내가 그걸 사겠다는 거야.”

스트레스를 받으면 종종 그랬듯이 이명 --오래된 폭발의 메아리-- 이, 착륙하는 비행기처럼 높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액수를 말해야 하나? 음, 50만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신고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야.” 그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물잔 옆에 놓았다. “자네 사업은 끝나는 거지.”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여보세요, 몇 번이나 말씀해야 합니까? 무슨 생각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무슨 생각인지 정확히 말해주지. 시어도어. 내가 생각하는 건 보존하는 것, 잘 보관하는 거야. 자네나 자네 동업자들은 그런 걱정은 하지도 않는 것 같지만. 제일 현명한 행동이 뭔지 자네도 분명히 깨닫게 될 거야. 자네를 위해서도, 그림을 위해서도 말이야. 돈은 확실히 벌었겠지만 이렇게 위험한 상태로 그림을 계속 내돌리는 건 무책임한 짓이야. 안 그런가?”          (P84)     

나에 대한 공식적인 이야기 --여러 자료에 그렇게 실렸고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는 폭탄이 터졌을 때 <황금방울새> 전시실과 조금 떨어진 다른 전시실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작가가 나를 인터뷰하려고 했지만 나는 모두 거절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24호 전시실에서 엄마의 최후를, 새틴 트렌치코트를 입은 아름다운 검은 머리 여인의 최후를 목격했고, 그들 중 대부분이 내가 엄마 옆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24호 전시실에서는 어른 네 명과 어린이 세 명이 죽었다. 나 역시 기절해서 땅에 쓰러져 있었는데 혼란스러운 소동 속에서 사람들이 나를 못 봤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웰티의 반지는 내 위치가 어디였는지 알려주는 물질적인 증거였다. 호비 아저씨는 웰티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로서는 다행이었지만, 가끔 --자주는 아니고 보통 밤늦게 술을 몇 잔 마시면-- 과거를 회상했다. “내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 정말 기적이야, 그때 그 --” 언젠가 누군가는 연관성을 찾아낼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늘 알고 있었지만 몇 년 동안이나 약에 몽롱하게 취해서 그 위험을 무시한 채 둥둥 떠다니며 살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몰라. 어쩌면 아무도 모를 거야.          (P102-103)     


모든 것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레이스 커튼 사이로 들어온 가로등 불빛이 벽에 찌그러진 거미줄 문양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것이, 그림을 간직하는 것이 실수라는 사실을 늘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가지고 있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림이 나에게 좋은 일을 가져오거나 기쁨을 준 것도 아니었다. 라스베이거스에 있을 때는 원할 때면 언제나, 아프거나 졸리거나 슬플 때, 이른 아침과 한밤중에, 가을이나 여름에, 다른 날씨와 다른 햇빛 속에서 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빛과 분위기와 계절에 그림을 보는 것은 수천 가지의 방법으로 그림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빛으로 만들어졌으며 빛 속에서만 살던 그림을 어둠 속에 가두는 것은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면에서 잘못이었다. 아니,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미친 짓이었다.            (P104)    

 

결혼을 하자고 말한 사람은 킷시였다. 파티에 가는 길, 하늘색 드레스와 샤넬 No.19, 파크가로 나왔을 때 우리는 위층에서 마신 칵테일 때문에 약간 취한 상태였다.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가로등이 탁 켜져서 우린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마주 보았다. 우리 때문에 켜진 거야? 그 순간이 너무 재미있어서 우리는 정신없이 웃기 시작했다. 꼭 우리가 빛을 내는 것 같았다. 파크가 전체에 전력을 제공하는 것 같았다. 킷시가 내 손을 잡고 ‘우리가 뭘 해야 하는 줄 알아, 시오?’라고 말했을 때 나는 킷시가 뭐라고 말할지 정확히 알았다. 

“그럴까?”

“응, 그러자! 알지? 엄마가 정말 행복해하실 거야.”                (P114)     

“화났구나” 보리스가 체념한 듯 말했다. “날 죽이고 싶지.”

“나한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난--”

“바꿔치기했다니. 무슨 뜻이야?”

“있잖아--” 보리스가 초조하게 주변을 살폈다. “미안하다니까! 우리 둘이서 다시 약을 하면 안 좋을 줄 알았어. 아주 불쾌하게 끝날 줄 알았다니까! 하지만--” 그가 몸을 숙이고 탁자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것 때문에 진짜 마음이 안 좋았어, 진짜로. 아니면 내가 널 만나러 왔겠냐? 거리에서 네 이름을 소리쳐 불렀겠냐고. 너한테 갚고 싶다고도 했잖아? 진심이야. 너한테 보상할 거야. 왜냐면, 봐라. 그림이 나한테 한재산 벌어줬으니까. 그게 내--”

“그럼 내가 업타운에 맡긴 꾸러미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거야?”

“뭐?” 보리스가 말했다. 그런 다음 눈살을 찌푸리더니 의자에 기대어 앉으며 입을 떡 벌리고 나를 보았다. “농담이지?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보리스가 탁자를 쾅 쳤다. “이 바보야, 그럼 한 번도 안 뜯어봤단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P176)     


“도대체 네 말을 한마디라도 어떻게 믿으란 거야?”

보리스가 다시 눈을 굴렸다. 그가 외투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하나 띄웠다. 그러고는 맞은편에 앉은 나에게 건넸다. 

그것은 그림의 뒷면이었다. 앞면의 복제품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뒷면은 지문만큼이나 변별적이었다. 갈색과 붉은색의 두꺼운 봉인 밀랍. 불규칙하게 조각조각 붙은 유럽 라벨들(로마숫자와 깃털 펜으로 가늘고 길게 쓴 서명)은 증기선에 탈 때 쓰던 골동품 트렁크나 오래된 국제 협정서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뭉개진 노란색과 갈색 라벨들이 마치 낙엽처럼 풍성하게 켜켜이 쌓여 있었다. 

보리스가 전화기를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보리스가 담배에 손을 뻗었다. 

“이제 믿냐?” 그가 입술 끝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P182)   

  

어떤 면에서 보리스는 그림을 가져감으로써 나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었다. 적어도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풀려났다. 이제 누구도 나를 탓할 수 없다. 내 문제의 아주 많은 부분이 단번에 해결됐다. 나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림이 자기 손에서 떠났다는 사실에 안도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절망과 자기혐오, 수치심에 불타올랐다. 

따뜻하고 고단한 가게, 나는 가만있을 수가 없어서 일어났다 앉았다가, 창가로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모든 것이 공포로 흠뻑 젖었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도자기 어릿광대가 앙심을 품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가구들조차 구역질나고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업타운의 창고 회사에 숨겨둔 비밀 때문에 내가 더 나은 사람, 더 현명한 사람, 더 고귀하고 소중하고 살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림으로 인해 덜 유한하고 덜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림은 그 증거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림은 내가 살아가는 수단이자 전부였다. 그것은 대성당을 지탱하는 쐐기돌이었다. 나를 받쳐주던 그림이 내 인생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항상 그 거대하고 야만적이고 숨겨져 있는 기쁨에 의지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정말 끔찍했다. 그것은 내 인생 전체가 언제라도 자신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비밀 위에 균형을 잡으며 서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P185-186)  

   

“어떻게 됐는데?” 

“나도 잘 몰라. 약속한 물건의 반을 받았고 나머지 반은 일주일 안에 오기로 돼 있었거든. 드문 방식은 아니야. 그런데 그 사람들이 체포되는 바람에 나머지 반도 못 받고 그림도 못 받았어. 호르스트는-- 음, 호르스트도 그림을 찾으려고 했어, 완전 파랗게 질렸었지. 아무튼 지난번에 얘기했을 때보다 정보가 더 들어와 있으면 좋겠네.”              (P206)    

 

호르스트가 무릎을 휘청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황금방울새>에 대한 이론은 나도 잘 압니다. 아주 익숙하죠. 사람들은 그걸 눈속임 그림이라고 부르는데, 얼핏 보면 그런 식으로 보이기는 해요. 하지만 난 예술사가의 말에는 신경 안 씁니다. 진실은, 일부 눈속임 그림처럼 만든 부분도 있다는 거죠....... 벽과 홰, 황동에 비치는 빛의 번득임, 그리고...... 진짜 생명이 느껴지는 가슴 깃털이 그렇죠. 부푼 솜털 말입니다. 아주 부드러워요. 클라에스라면 죽은 것처럼 느껴질 만큼 정확하게 마무리를 추구했을 거고 -- 판 호흐스트라턴 같은 화가는 한발 더 나아가서 관에 마지막 못을 박듯이 정확하게 그렸을 거예요. 하지만 파브리티우스는 ..... 그는 눈속임 그림이라는 장르를 가지고 놀고 있어요...... 위대한 화가다운 방식으로 눈속임 그림이라는 개념에 반격한 거죠...... 작품의 다른 부분 --머리나 날개 부분-- 은 전혀 살아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도 아니에요. 파브리티우스는 이미지를 일부러 조각내서 자기가 어떻게 그렸는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감을 바른 부분, 덧이은 부분, 형태가 뚜렷하고 아주 열심히 그렸어요. 특히 목선은 물감이 확실히 느껴지고 아주 추상적이죠. 그렇기 때문에 파브리티우스가 그의 시대보다는 우리 시대의 천재인 겁니다. 그의 그림에는 이중성이 있어요. 흔적이 보이죠. 물감이 그대로 보여요. 그러면서도 살아 있는 새가 보이는 겁니다.”             (P214)   

  

나는 담배를 비벼 껐다. 형체도, 감각도, 의미도 없었다. 킷시는 내가 침대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했지만 서랍장의 리모주 도자기 상자에서 찌부러진 담배꽁초를 발견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가끔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가까이 있는 것들을 열심히 보면서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림이 사라져버린 후 나는 광대함에 빠져 소멸해버린 기분이었다. 예측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광대함만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품에 안고 있을 때에도 존재하는 그 줄어들지 않는 거리에서도. 나는 밀려오는 현기증을 느끼면서 내가 가봤던 곳과 가보지 못한 곳들, 광대하고 알 수 없는 잃어버린 세계, 음침한 미로 같은 도시와 골목들, 멀리 흘러가는 재와 냉담한 광할함, 사라진 연결 고리들, 잃어버려 결코 찾지 못하는 것들, 강력한 물결에 휩쓸려 저 바깥 어딘가를 떠다니는 내 그림을 생각했다. 영혼의 작은 부분을, 검은 바다에서 아래위로 흔들리는 희미한 불꽃을 생각했다.           (P249)   

  

“난 너랑 달라. 재능이 없었어.”

“취미는 뭐였어?”

“그렇게까지 흥미로운 건 없었어. 평범했지. 컴퓨터게임, 과학 소설 같은 거.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난 재수 없는 표정으로 블레이드러너가 되고 싶다거나 뭐 그렇게 대답했어.”

“아아, 나 그 영화 완전 좋아해. 타이렐의 조카가 자주 생각나.”

“무슨 뜻이야?”

“그 여자가 피아노에 놓인 사진을 보는 장면 말이야. 자신의 기억이 정말로 자기 건지 타이렐의 조차 건지 알아내려고 할 때, 나도 항상 과거를 생각하면서 신호만 찾거든. 내가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놓친 신호 말이야.”

“저기, 맞아. 나도 그런 생각 많이 해. 하지만, 전조, 신호, 부분적인 지식이 논리적으로는.....” 왜 피파가 곁에 있으면 한 문장도 정확하게 나오지 않을까? “...... 그냥 그런 말은 이상하게 들린다고 해도 되려나? 특히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할 때 말이야.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고 자신을 탓한다?”

“음--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카멘친트 선생님은 누구나 그런다고 하셨어. 사고, 참사-- 재난 피해자의 75퍼센트 정도는 경고 신호가 있었는데 자기가 무시하거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대. 그리고 18세 이하 아이의 경우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비율이 더 높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신호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잖아, 안 그래?”                (P267)  

   

프리츠가 총으로 나에게 손짓을 하는 1초도 안 되는 틈에 보리스가 사라졌고 담배가 불꽃을 뿌리며 날아갔다. 프리츠가 비명을 지르며 자기 뺨을 때리더니 담배꽁초가 들어간 목깃을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 순간 마틴 --내 바로 맞은편에서 그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 고개를 들었고 내가 차 지붕 너머로 그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오른쪽에서 그 소리, 세 발의 빠른 총소리가 들려서 우리 둘 다 재빨리 옆을 보았다. 네 발째 소리 (나는 움찔 눈을 감았다)와 함께 따뜻한 피가 자동차 지붕 너머에서 내 얼굴로 튀었고, 내가 다시 눈을 뜨자 겁에 질린 아시아계 소년이 푸주한의 앞치마처럼 피가 스민 자기 몸을 더듬으면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으며, 보리스의 머리가 있었던 곳에는 베탈라우토마트 옵(Beetaalautomaat op)이라는 불 켜진 간판만 보였다. 차 밑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보리스는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고 땅바닥에 엎드린 채 일어서려고 몸부림을 쳤다. 나는 보리스가 다쳤는지 무사한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도와주려고 아무 생각 없이 반대편으로 뛰어간 것이 분명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자동차 반대편에서 보리스를 일으키려 애쓰고 있었고, 사방이 피바다였으며, 프리츠는 머리 옆쪽에 야구공만 한 구멍이 난 채 자동차 위에 쓰러져 있었고, 내가 바닥에 놓인 프리츠의 총을 본 순간 보리스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고, 소매에 묻은 피를 보고 눈빛이 날카로워진 마틴은 자기 팔을 잡고 총을 집으려 하고 있었다.             (P352-353)   

  

하지만 나는 마틴의 죽음을 생각하는, 혹은 그 생각을 회피하는 괜찮은 방법을 찾았다. 그 행위로 인해서, 그 행위의 영구성으로 인해서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 내던져졌고 사실상 모든 의미에서 이미 죽었다. 모든 것을 지나쳐 바다로 둥둥 떠가는 유빙 위에서 육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 나는 끝났다. 

하지만 그건 괜찮았다. 나는 세상에 별로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고 마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쉽게 잊혔다. 그것이 최소한의 사회적, 도덕적 교훈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예상할 수 있는 기간 동안 --역사가 기록되는 한, 만년설이 녹고 암스테르담 거리가 물에 휩쓸릴 때까지-- 사람들은 그림을 기억하고 애도할 것이다. 파르테논의 지붕을 날린 터키인들의 이름을 누가 아는가, 누가 신경 쓰는가? 아프가니스탄 바미안의 불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한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하지만 그들이 죽었든 살았든 그들의 행위는 그대로다. 그것은 최악의 불멸이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나는 세상의 마음속 불을 하나 껐다.            (P381)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이상하니까.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생각는 걸 좋아하는지 나도 알아, 하지만 이거야말로 네가 항상 원하는 것처럼 순전한 ‘선’이나 순전한 ‘악’으로 결론지을 수 없는 하나의 예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네가 말한 두 개의 더미처럼 말이야, 나쁜 건 저쪽, 좋은 건 이쪽이라고?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수도 있어. 왜냐면-- 밤새 차를 타고 여기 오는 내내 크리스마스 조명이 비추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부끄러움 없이 너한테 말할 수 있어,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어. 왜냐면, 그 성경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거든. 있잖아. 청지기가 과부한테서 얼마 안되는 돈을 훔쳐서 멀리 도망쳤다가 그 돈을 현명하게 투자해서 몇천 배나 되는 돈을 과부한테 돌려주잖아? 그러니까 과부가 기뻐하며 청지기를 용서하고, 둘이서 통통한 송아지를 잡아서 축하하잖아?”        (P442)  

   

“음-- 난 개인적으로 너처럼 ‘선’과 ‘악’ 사이에 뚜렷한 선을 그은 적이 없다는 건 말해둬야겠지. 내 경험으로는 선이 틀린 적도 많아. 선과 악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야.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는 존재할 수 없어.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면서 내가 아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넌 -- 판단에 둘러싸여서 항상 과거를 후회하고, 자신을 저주하고, 자신을 탓하고, ‘만약에 이랬다면’, ‘만약에 저랬다면’, 묻지. ‘삶은 잔인해.’ ‘그냥 죽었으면 더 좋았을걸 그랬어.’ 음-- 이렇게 생각해봐. 신이 볼 때 너의 모든 행동과 선택이 선하든 악하든 아무 차이가 없다면? 패턴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아니, 아니야-- 기다려봐-- 이건 고민해볼 만한 문제야. 우리의 악함과 실수가 우리 운명을 결정하고 우리가 선에 다가가게 만든다면? 만약에 어떤 사람들은 그런 길을 통해서만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면?”

“어디에 도달해?”

“못 알아들을 만도 하지. 내가 말하는 ‘신’은 그냥 우리가 판독할 수 없는 장기적인 패턴이야. 거대하고 천천히 움직이는 기상 체계 같은 거지, 저 멀리서 우리를 향해 다가오면서 무작위로 바람을 일으키는--” 보리스가 웅변을 하듯이 유창하게 말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표현하려는 것처럼 공중에서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그렇게 무작위적이지는 않을지도 몰라.”

“미안하지만 네 말의 요점을 진짜 모르겠어.”

“요점은 필요 없어. 요점은, 네가 말하는 그 요점이라는 건 너무 거대해서 우리가 볼 수도, 파악할 수도 없을지 모른다는 거야. 왜냐면--” 박쥐 날개 같은 눈썹이 위로 치솟는다. “음, 네가 미술관에서 그림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면, 또 자샤가 그걸 훔치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가 보상금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러면 이번에 발견된 그 수많은 그림들을 아직 되찾지 못했을 거 아니야? 어쩌면 영원히 되찾지 못했을지도 몰라. 갈색 종이에 싸인 채 처박혀 있는 거지. 아직 그 아파트에 갇혀 있는 거 아닐까? 봐주는 사람도 없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외롭게 갇혀 있는 거야. 어쩌면 다른 그림들을 찾기 위해서 하나가 사라져야 했던 거 아닐까?”

“그건 ‘신의 섭리’보다 ‘무자비한 아이러니’에 더 가까운 거 같은데?”          (P443-444)   

  

“웰티는 자주 말했어. 정말 위대한 그림은 복제품을 통해서도 깊이 있게 알 수 있다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프루스트의 소설에도 나오잖아 -- 감기에 걸린 오데트가 문을 열었을 때 표정은 뿌루퉁하고 머리카락은 지저분하게 헝클어지고 피부는 얼룩덜룩했는데, 그 순간가지는 오데트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스완은 그 순간 그녀가 보티첼리의 약간 손상된 프레스코화의 소녀와 비슷해 보여서 사랑에 빠지지, 사실 프루스트는 보티첼리의 작품을 복제품으로밖에 보지 못했어.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원작은 한 번도 못 봤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어떤 면에서는 소설 전체가 그 순간에 대한 거야. 그리고 손상된 것이 매력의 일부지. 그림의 얼룩덜룩한 뺨 말이다. 프루스트는 복제품을 통해서 진짜 그림을 다시 꿈꾸고, 그걸로 현실을 다시 만들고, 거기서 자신만의 것을 끌어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어. 왜냐면 -- 원작이든 복제품이든 선의 미는 같으니까, 제록스 복사기에 백번을 넣어도 상관없어.”        (P456)   

  

“그리고--” 아저씨가 커피를 타려고 일어섰다. “평생 물건에 그렇게 신경을 쓰며 산다는 건 너무 천할지도 모르지만--”

“누가 그래요?”

“음--” 스토브에서 돌아선다. “저 밑에서 아픈 어린이를 위한 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잖니. 그렇게 생각해봐. 낡은 탁자와 의자 더미를 고치는 게 얼마나 고귀하겠니? 영혼이나 좀먹겠지. 난 유산을 정말 많이 봐왔기 때문에 잘 알아. 우상숭배! 물건에 너무 신경을 쓰면 망가질 수도 있어. 하지만 -- 어떤 물건을 좋아하면 그 물건은 생명을 갖게 돼. 안 그러니? 물건들 -- 아름다운 물건들 -- 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큰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는 거 아닐까? 처음으로 마음을 활짝 열고서 평생 쫓아다니게 만드는, 혹은 적어도 어떤 식으로든 되찾으려고 애쓰게 만드는 그런 이미지들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 낡은 물건을 고치고, 보존하고, 돌보는 건 -- 어떤 면에서는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일이야......”

“제가 좋아하는 그 어떤 것도 ‘합리적인 근거’는 없어요.”              (P460)    

 

하지만 의미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나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왜 나는 잘못된 것에만 관심이 가고 올바른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을까? 또는, 달리 표현하자면 나는 어째서 내가 사랑하거나 관심을 갖는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빤히 보면서도 어쨌든 나만은 그 매력 속에서 거짓을 위해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크나큰 슬픔, 내가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 슬픔은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좋은 것을, 또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을 억지로 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선택할수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알까? 우리는 반박의 여지없는 상투적인 문화를 어린 시절부터 계속 주입받는다. 윌리엄 블레이크부터 레이디 가가까지, 장 자크 루소부터 잘랄라딘 무함마드 루미까지, <토스카>부터 <로저스 씨의 동네>까지 -- 상류층부터 하류층까지 -- 이상하게도 똑같이 받아들여지는 메시지를 전한다. 정신과 의사와 진로 상담사, 디즈니 만화의 공주들은 모두 답을 안다. “너 자신을 잃지 마.” “네 마음을 따라가렴.”                (P465)   

  

나는 환영 뒤에 진실이 있다고 정말 믿고 싶지만, 결국 환영 너머에 진실은 없다고 믿게 되었다. 왜냐하면, 마음이 현실을 내모는 지점과 현실 사이에는 중간 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곳, 두 가지 다른 면이 뒤섞이고 흐릿해져서 삶이 주지 못하는 것을 제공하는 무지개의 가장자리 같은 곳이다. 바로 모든 예술이, 모든 마술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나는 모든 사랑이 존재하는 곳이라 주장하고 싶다. 혹은,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중간 지대는 사랑의 근본적인 어긋남을 설명한다. 가까이서 보면 검은 외투와 대비되는 주근깨 박힌 손, 옆으로 넘어지는 종이 개구리가 보이지만 한 발 물러서면 환상이 다시 끼어든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고 결코 죽지 않는 환상, 피파의 존재 자체가 그러한 것들 -- 사랑와 사랑이 아닌 것, 그곳과 그곳이 아닌 것 -- 의 놀이다. 벽에 걸린 사진들, 소파 아래에서 나온 동그랗게 말린 양말 한 짝, 내가 손을 뻗어 피파의 머리카락에 붙은 보풀을 떼어내자 그녀가 웃으면서 내 손길에 몸을 움츠리던 순간, 음악이 음과 음 사이의 공간이듯이,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 사이의 공간 때문이듯이, 태양이 특정한 각도로 빗방울에 닿아서 하늘에 색을 내뿜는 프리즘을 드리우듯이, 내가 존재하는 공간. 계속 존재하고 싶고 솔직히 말하면 그곳에서 죽고 싶은 공간은 바로 이 중간 지대, 절망과 순전한 ‘다름’이 만나서 숭고함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P479-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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