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헌 Jan 13. 2020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76. 나와 사진기

내가 처음 접한 카메라는 하프 프레임 카메라인 올림푸스 펜(Olympus PEN EE3)카메라이다. 36매 촬영 필름이라면 72장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였다. 대학을 들어가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고 산 카메라는 캐논 T-90이었고, 현재는 캐논 5D Mark3와 아이폰 카메라로 일상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사진가에게 있어서 사진기는 나의 일상을 담기도 하며, 나의 생각을 담는 도구이자, 전달매체이다. 문필가들에게 연필이나 펜, 화가에겐 붓, 사진가에겐 사진기는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도구도 가끔씩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1920∼1991)가 보기에 사진은 그것을 찍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사진기라는 복잡한 메커니즘의 산물이다라고 말한다. 즉 사진기라는 장비에 의한(캐논이든 니콘이든) 사진기라는 메커니즘으로 구현된 것이 사진이며, 사람이 한 일은 (사진기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채) 그저 사용설명서대로 셔터를 누른 것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카메라 매뉴얼의 숙지로 나의 생각이 잘 전달할수 있다고 맹목적으로 믿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나와 사진기, 그리고 찍혀진 대상과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플루서는 나아가 사진과 피사체가 본질적으로 연관돼 있는지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를 밝힌다. 사진의 찍혀진 대상이 인물이든, 풍경이든 아름답게 포장된 사진은 실재와는 다르며, 사진은 대상의 본질과는 달리 카메라의 물성에 의해 표현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재와 가상의 세계속에서 사진이 얼마만큼 현실을 재현하고 있으며, 그것은 얼마만큼 대상의 본질과 동떨어져 있는 것인가? 그 물음은 현대의 고도화된 사회 속에서 더욱 심해졌다. VR과 AR의 시대에 가상과 현실은 더욱더 고도화되었기 때문이다. 가상과 현실의 차이는 진짜냐 가짜냐 같은 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밀도의 차이, 강도의 차이, 해상도의 차이가 되어버렸고, 과연 현실은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가라고 되묻고 있다.      


좋은 만년필로 써야지만 좋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좋은 필체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플루서는 장치에 순응해 잉여적 사진을 생산하는 '카메라맨'과 구별되는 존재로서 '사진가'를 제시한다. 우리는 기계의 매뉴얼에 얽매여서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맨인지, 나의 인간적 의도를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사진가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나는 무엇을 말하려고 사진을 선택하고 있을까. 나는 얼마만큼 기계 장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생각을 표출시키는 사진가였던가. 나는 찍사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진가였던가.     


플라톤이 예술과 기술에 제기한 근본적인 물음은 플루서에게 있어서도 다시 묻는다. 플라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술가와 기술자는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교활하게 보여주며, 이데아를 포장한 가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플루서는 자유로운 예술가인지, 기술자인지를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