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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ug 05. 2024

쥘 베른의 <녹색광선>

영화 <녹색광선>  1986년

<녹색 광선>(Le Rayon Vert)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1986년 영화이다. 마리 리비에르가 주연을 맡았다. 녹색 광선이라는 제목은 쥘 베른의 동명의 소설에서 따왔다. 프랑스에서 16mm 필름로 촬영됐고, 대부분의 대사는 즉흥적으로 만들어졌다. 1986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였다.   

  

<여러분은 이따금 수평선에서 지는 태양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까? 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요. 여러분은 수면을 스치는 그 원의 윗부분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태양을 계속 지켜본 적이 있습니까? 이 또한 충분히 있을 법한 일입니다. 하지만 바다 안개가 사라진 하늘이 완벽하게 맑을 때 그 빛나는 천체가 마지막 광선을 던지는 바로 그 순간에 나타나는 현상을 여러분은 눈여겨 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처음으로 지켜볼 기회가 —그런 기회는 아주 드물게 있을 것입니다— 생긴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망막을 자극하는 붉은 광선이 아닌 ‘녹색’광선일 것이며 그야말로 경이로운 녹색, 어떤 화가도 팔레트에서 찾아낼 수 없는 녹색, 자연이 식물의 아주 다양한 색채는 물론, 가장 투명한 바다의 색에서도 결코 재현해내지 못한 색조의 녹색 광선일 것입니다! 만일 천국에 녹색이 있다면 그것은 소망을 상징하는 진짜 녹색인 바로 그 녹색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P34)     

하지만 캠벨 양이 삼촌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그 녹색 광선이 오래된 전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전설의 내밀한 의미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전설에 따르면, 녹색 광선은 그것을 본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의 감정 속에서 더 이상 속지 않게 해주는 효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광선이 나타나면 헛된 기대와 거짓말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일단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된다.             (P35)    

 

마침 거기엔 어느 젊은 화가가 이젤 앞에서 오번 항의 남쪽 지점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바다를 그리고 있었다. 공은 캔버스를 제대로 맞추고 스쳐지나가면서 팔레트의 여러 색들 중에서 녹색으로 화폭을 얼룩지게 만들고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젤을 넘어뜨렸다.

….(중략)….

그는 일어서서, 방금 자신에게 사과하고 당황스러워하는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코리브레칸의 소용돌이에 흽쓸렸던 바로 그 ‘난파자’였다!     (P127)    

 

“싱클레어 씨, 아무리 위대한 화가라 할지라도 캔버스에 바다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캠벨 양이 물었다.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캠벨 양.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정말로 바다엔 고유한 색채란 게 없답니다. 바다는 단지 하늘의 거대한 반사일 뿐입니다! 바다가 푸른색이라고요? 푸른색으로는 바다를 그릴 수 없어요! 녹색이라고요? 녹색으로도 바다를 그릴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바다가 어둡고 납빛으로 심술궂을 때의 맹렬함 속에서는 그 색채를 포착할 수 있을 겁니다.....”              (P159)     


“그렇게 열렬하게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참 좋아요. 싱클레어 씨.” 캠벨 양이 말했다. “저도 그런 열정을 함께하고 싶어요! 그래요! 싱클레어 씨가 바다를 좋아하는 것만큼 저 역시 바다를 좋아해요!”

“바다에서 위험과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올리비에 싱클레어가 그녀에게 부탁했다.

“두려워하다니요, 저는 정말 겁내지 않아요. 감탄하는 걸 두려워 할 까닭이 있을까요?”               (P160)

     

“해질 무렵에 이곳에 다시 오고 싶어요.” 캠벨 양이 말했다. “그 기억들을 되살리기에는 그 시간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불행한 던컨의 육신을 다시 일으키는 걸 볼 거예요. 조상들에게 바쳐진 땅에 그를 눕게 하면서 인부들이 하는 말을 들을 거예요. 정말로요, 싱클레어 씨, 왕의 묘지를 지키는 꼬마 악마들을 부르기에 적절한 때가 아닐까요?”

“그럼요, 캠벨 양, 저도 그 악마들이 당신 목소리를 듣고 꼭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뭐라고요, 캠벨 양, 꼬마 악마를 믿는다고요?” 아리스토불러스 어시클로스가 소리쳤다.

“믿고말고요. 진짜 스코틀랜드 여자로서 믿어요.” 캠벨 양이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 그건 당신이 지어낸 것이고, 그런 비현실적인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지 않습니까!”

“제가 그렇게 믿는 걸 좋아한다면 말이죠!” 부적절한 반박에 격앙된 캠벨 양이 대답했다. “저는 세간을 지키는 브라우니와 룬 문자로 기록된 시를 낭송하면서 주문을 외우는 마녀들, 전투에서 쓰러진 전사들을 데려가며 스칸디나비아 전설에 의하면 불행을 불러온다는 처녀들인 발키리를 믿는 걸 좋아한다고요. 진정한 아일랜드인이라면 잊을 수 없는 시인인 번스가 노래한, 집안의 요정들을 믿는 걸 좋아한단 말이에요.”

<그 밤 정령들은 카실리스 도넌스에서 경쾌하게 춤추고

혹은 휘황하게 번쩍이며 호수 위를 스치거나, 활기 넘치는 준마를 타고 깡충대거나,

혹은 창백한 달빛 아래 컬린으로 향한다.

거기 후미진 곳에서 이리저리 걷고 떠돌면서

돌과 시냇물을 벗 삶아 밤새 유희하려고.>

“아니 캠벨 양, 그럼 시인들이 자신의 상상에서 나온 꿈같은 이야기들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고집 센 멍청이가 다시 말했다.

“물론이지요.” 올리비에 싱클레어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시는 깊은 확신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작품처럼 거짓이라는 인상을 줄 겁니다.”

“당신도요?” 아리스토불러스 어시클로스가 대답했다. “저는 당신을 화가로 알고 있지, 시인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모두 같은 거예요.” 캠벨 양이 말했다. “예술은 형태만 다를 뿐 모두 하나라고요.”   (P187)  

   

첫 번째 동굴들에 있어서 원리에 충실했던 자연은 노력을 줄일 수 있었고, 두 번째 동굴들에 있어서 자연은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저 유명한-무미건조한 영어 표현인-핑갈의 동굴은 물질이 불 속에서 끓어올랐던 지질 시대의 동굴에 속했다.             (P226)   

  

현무암에 박힌 철제 기둥 난간이 벽과 좁은 기슭의 뾰족한 모서리 사이에서 손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 캠벨 양이 말했다. “이 난간이 핑갈의 궁전을 조금 망쳤어요!” “그렇습니다, 자연의 작품에 인간의 손길이 닿았어요.”              (P233)     


그는 석상 하나가 들어갈 만한 벽감 같았던, 두 사람이 긴 시간 동안 다정하게 가까이 있었고 동시에 사투를 벌였던 좁은 피난처를 다시 떠올렸다. 그곳에서 그들은 더 이상 싱클레어 씨와 캠벨 양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를 올리비에와 헬레나라고 불렀다. 죽음이 그들을 위협하던 순간 새로운 삶을 함께 시작하려는 듯이!              (P262)    

 

곧 태양은 수평선 뒤로 반쯤 사라졌다. 황금 화살처럼 날아가며 투사된 빛이 스태퍼 섬의 앞쪽 바위에서 부서졌다. 

뒤편 멀 섬의 절벽과 벤 모어 산의 꼭대기가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들었다. 마침내 둥근 원의 가장 위쪽의 얇은 부분만이 바다에 노출되었다.

"녹색 광선이다! 녹색 광선이야! 멜빌 형제와 베스 그리고 패트리지가 동시에 소리쳤다. 그들의 시선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이 투명한 비취색에 젖어들었다.

올리비에와 헬레나만이 수없이 관찰에 실패한 뒤에 마침내 나타난 이 현상을 보지 못했다!

태양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마지막 빛을 선사하던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를 향했고,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며 자신을 잊을 정도였다!

하지만 헬레나는 젊은이의 눈빛에서 검은 광채를 보았고, 올리비에는 아가씨의 눈에서 푸른 광채를 보았다!

태양은 완전히 사라졌고, 올리비에도 헬레나도 녹색 광선을 보지 못했다.        (P269-270)     

 

비록 자신이 그토록 찾던 현상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올리비에 싱클레어는 스태퍼 섬의 언덕에서 보낸 마지막 밤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 속에 새겨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그는 아주 특별한 효과가 돋보이는 '일몰' 그림을 세상에 공개했는데, 그림에 등장한 강렬한 녹색 광선은 흡사 투명한 에메랄드로 채색된 것처럼 보여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P273)      

그는 기하학자의 모습으로 뻣뻣하게 인사를 하고는 침착한 걸음걸이로 역을 향해 갔다.

“그래요. 어시클로스 씨는 녹색광선에 대해 설명했던 것처럼 감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싶어 해요!” 싱클레어 부인이 말했다.

“사랑하는 헬레나, 하지만 우리는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 광선을 끝내 보지 못했어요!” 올리비에 싱클레어가 말했다.

“우리가 더 잘 본 거에요!” 젊은 부인이 속삭였다. “우리는 행복 자체를 보았어요. 전설에 나오는, 그 현상을 관찰하면 얻게 된다는 행복 말이에요! 사랑하는 올리비에, 우리는 그걸 찾은 것으로 충분하니까 녹색 광선을 찾는 일은 그걸 모르는 사람들, 그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기로 해요!”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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