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축음기]
삶은 대부분이 익숙한 장소에 있다. 익숙한 음악은 아마도 여러 번 귀에 듣게 된 노래들일 것이다. 집과 학교, 그의 행동반경은 대부분 익숙한 장소이다. 익숙한 장소는 늘 똑같이 되풀이되는 단조로움을 가진다. 매일 지나가는 곳에서 낯섦을 느낀다는 것은 무언가 내 생활에서 새로움을 원했던 것일 것이다. 엄마에게 조르다 시피 해서 처음 샀던 삼성 마이마이 카세트 테입으로 음악을 들었고, 자취방 한켠에 고물덩어리 전축(電蓄)에서 탁탁 튀는 LP판으로 음악을 들었고, 지금은 유튜브로, 멜론 앱으로 음악을 듣는다. 시절이 변했다. 강산도 변했다. 어릴적 흙길은 산에 가야만 볼 수 있고, 골목마다 아이들 놀이로 시끌벅적한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같은 장소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어져 있다. 자주 갔던 카페도, 모임도, 비슷비슷하고 케케묵은 농담들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지지부진함과 불안, 그리고 초라하다고 느끼는 것들. 그러한 것들을 벗어나고 싶은 도피 욕구들. 역동적이고 흥분되는 것들에 대해 지리멸렬한 느낌들. 그런 느낌들이 멜랑콜리한 음악이 어디선가 들려오고, 그 음악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기분이 좋아지면 흥얼거리기도 하고. 무기력한 삶을 벗어나게 해주는 진통제로서도 음악은 존재한다. 더 넓게 말하자면, 소리가 존재한다. 코고는 소리,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치는 소리, 키보드의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발걸음 소리,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소리가 없는 침묵은 오히려 불안하다.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습니다!” 1988년 MBC 뉴스 방송 도중에 난입한 괴한의 외침도. 만약 우리가 듣지 못한다면, 사진에는 소리가 담겨져 있지 않다.
“..... 모든 음악은 고요함으로부터 멀어지거나 다시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길이 있어요. 음악으로부터 고요함이 생기고 가끔은 고요함 스스로 음악이 되죠. 각각의 음악적인 형태는 시간으로부터의 변화이고 우리는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음악에 정확히 귀를 기울이죠...”
-Der Tagesspiegel (October 10, 2009): Der blaue Klang-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종로에 있는 서울 YMCA에서였다. 제대 후 복학하기 전 YMCA사진반에서 전임 알바를 하고 있던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알바 후임으로 소개를 시켜주었다. 사진 강의와 사진 암실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암실에서 직접 찍어온 흑백필름으로 사진 프린트를 하는 과정을 지도하게 되었다. 암실에는 간간이 노래를 틀어놓고 작업을 했는데, 그날은 라디오에서 산울림의 ‘기타가 있는 수필’집에 들어있는 ‘초야’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바닷바람 차갑지 않아
달처럼 어여쁜 얼굴
남폿불 하늘거리고
따스한 정이 흐르네
오늘같이 흐뭇한 날엔
술 한 잔 권하고 싶어
하얀 볼이 붉어지면은 그댄 어떨지 몰라
산울림 팬이었던 나는 거의 산울림 LP판을 모았고, 가사도 거의 외우다시피 했었다. 산울림의 음악들은 비틀즈의 음악과 견줄만했다. 실험적인 그들의 음악은 락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해비메탈까지 다양한 음악들을 선보였다. 산울림의 4집 ‘특급열차’나, 9집 ‘소낙비’는 헤비메탈이다.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White Album)의 ‘Helter Skelter’도 해비메탈 곡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들이다. 기억들은 뇌에 새겨진 “새김(Inscription)"이었다. 에디슨이 축음기(Phonograph)를 발명하기 전 남프랑스 출신의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크로(Charles Cros)도 축음기에 대한 발명품을 만들고 있었고, 그는 그 기계에 대한 기념비로 “새김(Inscription)"이란 제목의 시를 지었다.
카메오에 새겨진 얼굴처럼
사랑스런 목소리가
영원히 간직될 수 있는 행복으로 새겨지기를,
너무 짧게 끝나고 마는
음악의 꿈이 반복될 수 있기를,
시간은 흘러 달아나고, 나는 그것을 정복할 것이니.
크로는 검댕 대신에 금속판을 씌운 원통을 바늘로 긁어 기록하면 단단하게 새겨지기 때문에 재생을 하는 것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당시에 사진을 인화할 때 쓰던 에칭(etching) 방식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금속 원통의 표면에 산성 물질에도 부식되지 않도록 내산 코팅을 한다. 원통을 손으로 돌려 천천히 회전시키는 동안 외부의 음파에 의해 소리통 끝부분의 바늘이 떨리면 자국을 남기고 그 부위는 코팅이 벗겨진다. 원통을 꺼내 산성 용액에 담그면 바늘이 지나간 자리는 부식이 되면서 사진을 찍은 것처럼 굳어진다. 그 원통을 다시 소리통과 연결하면 굳어진 홈을 따라 바늘이 움직이면서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다.
소리를 기록하고, 소리를 재생한다. 그 소리가 홈에 켜켜이 기록되는 것이다. 사진 또한 상을 고정시키는데, 필름이라는 레이어(layer)층에 켜켜이 상(image)이 기록되어진다. 발자크는 사진에 대한 새로운 두려움에 대해, “사진은 무한하게 겹쳐진 영혼의 층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진의 층에 기계적으로 이미지가 각인되는 것이나, 소리의 주파수 곡선이 축음기의 녹음판에 기입되는 것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사진은 빛의 기록이다. 빛은 입자설과 파동설이 서로 얽혀있다. 은입자에 반응된 빛의 기록이고, 빛은 파동으로 이루어진다. 소리 또한 파동, 파장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 초당 진동수로 소리를 파악할 수 있다.
파동의 측정 단위는 미터이며 시간 단위는 초이다. 1초당 1미터 내에서 측정되는 진동을 주파수라고 칭한다. 빛, 전기, 자기의 주파수는 동일한데, 초당 약 7백 조 진동하며, 전파 속도는 초당 약 3억미터이다. 소리의 진동은 다른 현상들보다 현저하게 주파수가 낮다. 소리의 전파속도는 초당 약 332미터이다. 인간의 귀가 들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음은 초당 8회, 가장 높은 음은 약 4만 회 진동한다.
-축음기, 영화, 타자기, 프리드리히 키틀러-
고 충실도(High Fidelity)라는 의미를 지니는 HiFi는 레코드판에 음악을 기록한다. 레코드판에 기록된 것들은 플레이어를 통해서 재생된다. 재생된 소리들, 우리가 들었던 소리들은 우리들에게 시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 준다. 그것이 사람의 목소리이든, 악기가 주는 소리이든, 핑크 플로이드는 그런 마법을 부리는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릴 때, 이렇게 노래한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은빛 소음.
살진 늙은 해가 기울 때
여름 저녁 새들이 지저귀고
여름의 일요일 그리고 일 년
내 귓속의 음악 소리
먼 종소리
갓 벤 풀 냄새
달콤한 노래들
강가에서 손을 붙잡고
보아도, 소리는 내지 마오
발소리도 내지 마오
따스한 밤이 질 때 귀 기울이면
입에서 흘러나오는 기묘한 은빛 소리
내게 노래해주오 내게 노래해주오.
청기사 블루 라이더(Der Blaue Reiter)는 20세기 초반 미술운동이다. 1903년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그 중심에 있는 독일 표현주의 그룹인 ‘다리파(Die Brucke))’라는 아방가르드 운동이다. ‘파란색’이 ‘노란색’ 으로 가는 여정에 바실리 칸딘스키의 “노란 소리, 옐로우 사운드”가 있다. 칸딘스키는 음악을 들을 때 색을 보았고, 그림을 그릴 때 음악을 들었고, 그의 그림에는 소리를 담고 있다. 시각적인 그림에 소리가 나지는 않겠지만, 소리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칸딘스키의 작업은 실험적인 것이다. 그는 그림을 소리와 같은 색상을 가진 “시각적 음악”으로 설명했다. 칸딘스키가 쇤베르크의 무조구성주의(無調構成主義) 음악회에서 받은 감동을 받아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색상은 피아노에서 연주되는 코드와 유사한 진동 주파수를 생성한다. 칸딘스키는 미술이 곧 음악이고, 그것이 색상은 소리와 같다. 그는 음악이 그에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색과 선을 사용하여 음악적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노란색은 따뜻하며, 보는 사람에게 향하며, 바깥쪽으로 움직인다. 파란색은 차갑고, 보는 사람으로부터 향하며, 내부로 움직인다는 것이 칸딘스키의 생각이다. 노란색. 칸딘스키의 ‘옐로우 사운드’라는 그림과 마찬가지로 노란색을 노래한 이가 있다. 비틀즈의 ‘노란 잠수함’. <Yellow Submarine>은 비틀즈의 일곱 번째 앨범 <Revolver>의 수록곡이다. 이 곡은 1968년 ‘조지 더닝’ 감독이 애니메이션 <노란 잠수함>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노란 잠수함을 타고 상상의 나라 페퍼랜드(Pepperland)로 떠나는 상상을 해본다.
비틀즈의 사운드를 제작했던 애비로드 스튜디오가 1954년 처음으로 믹싱할 때 스테레오 테이프를 도입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70년에는 8트랙 녹음이 국제 표준이었다면, 오늘날 디스코 사운드는 각 트랙별로 혹은 믹싱 상태에서도 조작 가능한 32트랙 혹은 64트랙으로 녹음된다. 핑크 플로이드가 “웰컴 투 더 머신(Welcome To The Machine)”에서 “기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노래했을 때, 그것이 의미한 바는 바로 “테이프 기술 그 자체를 위한 테이프 기술 — 일종의 사운드 콜라주”였다.
-축음기, 영화, 타자기, 프리드리히 키틀러-
기술의 진보는 축음기, 카메라, 타자기를 만들었고, 스티브 잡스는 매켄토시 컴퓨터를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테블릿PC)로 발전시켰다. 포울센의 아크 컨버터가 리벤이나 디 포리스트의 진공관 기술로 바뀌고, 페센든의 시험적 배선이 양산되기 위해서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가능해졌다. 전쟁을 수행하는 기술은 최첨단 기술의 발전이 뒤따른다. 새로운 무기의 출현, 탱크, 비행기, 잠수함 등, 또한 정보부대들의 전투장비들에는 새로운 음성통신의 기술발전을 예고했다. 무선통신으로 확대. 1924년 벨 연구소가 녹음 부문에서는 전자파에 의거한 증폭기를, 재생 부문에서는 전자파에 의거한 픽업기를 개발, 소리의 녹음을 에디슨의 기계적인 바늘 스크래치에서 해방시켰다. 괴링이 시도한 “바다사자 작전” 영국본토의 항공전은 무선에 의한 무기 시스템의 발전이다. 조종사는 오른쪽 헤드폰에 “다다”라는 모스 신호를 보내고, 왼쪽 헤드폰에 “딧딧”이라는 모스 신호를 보낸다. 그 스테레오 음은, 헬리콥터의 선회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일렉트릭 레이디랜드(Electric ladyland)"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위시 유 어 히어(Wish You Were Here)"의 공간 음향 한가운데서 폭탄 투하 목표 지점의 음향학을 또 한 번 재생시키는 뇌생리학적으로 시뮬레이션된 유사-모노 음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 모두를 조정하고 있다.
“가슴 한복판에 변치 않는 그 무엇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 똬리에서 울리는 소리를 따라 방황해 온 궤적의 흔적이 바로 내 그림들이다.”
-강요배, 바람소리 물소리 展-
그녀의 33번째 생일날, 홍대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고, 장미 서른 세 송이 꽃다발과 LP판을 들고 약속장소로 달려갔다. 한 시간이 늦었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