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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양 Dec 20. 2024

큐빵

서울이야기

 경북 영덕의 작은 마을에서 경상도의 거칠고 무뚝뚝한 사람들 틈에서 20년 넘게 자랐다. 그들의 말투는 처음 듣는 사람에게 싸우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 무뚝뚝한 표현 뒤에는 따뜻한 진심과 다정함이 담겨 있다. 자연스레 그들처럼 무뚝뚝하게 살아왔는데 서울에서는 이런 성격이 오해를 사게 만드는 것 같다. 모난 사람처럼 보이지 않도록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억양을 죽이고, 밝고 긍정적인 표현을 더하려 애쓰곤 한다. 그래서인지 퉁명스러워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괜히 반갑다.     

 

 작년 봄, 우연히 들른 작은 빵집에서 만난 사장님도 그런 분이었다. 겉으로는 무심하고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귀찮아하는 듯하면서도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 주시고, 무심하게 빵을 더 챙겨 주시는 모습에 다정함이 숨어 있다.      

 ‘큐빵’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겉보기에 무척 불편한 가게다. 네이버 지도에 나오지 않고, 영업일에도 자주 문을 닫는다. 한 사람씩 가게에 들어가 사장님과 직접 대화하며 주문해야 한다. 빵 이름이나 가격이 적혀있지 않아서 하나하나 물어봐야 하고, 사장님 혼자 빵을 꺼내 자르고 포장한다. 줄이 길지 않아도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불편함이 오히려 큐빵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사장님과 1:1로 대화하며 빵을 고르고 주문하는 과정이 특별했다. 이 빵은 무슨 이름인지,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물어보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원하는 식빵 두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단순히 구매를 넘어 작은 소통으로 느껴졌다. 네이버 지도에 뜨지 않는 이유는 사장님이 주목받기를 싫어해서다. 손님들은 오히려 ‘자기만 아는 숨은 맛집’이라며 좋아하는 눈치다.     

 가장 먼저 빵을 고르고 싶어 조금 일찍 갔던 날, 사장님은 더우니 가게 안에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날부터 자연스레 일찍 가서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주로 빵이 얼마나 맛있는지 칭찬하고 사장님은 툴툴거리며 가게와 손님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신다. 때로는 새로운 빵을 건네주시며 맛을 봐달라 하시기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며 빵을 건네주시기도 한다. 보답으로 간식이나 음료를 챙겨가기도 하고 많이 사서 친구들과 나눠 먹기도 한다. 또, 이사하고 자주 못 가게 되자, 내일 간다고 말씀드리면 몸이 안 좋아 쉬려다가도 문을 열어주시고, 샌드위치 종류를 두 배로 늘리기도 하신다.     


 서울엔 새롭고 신기한 곳들이 많아서 한 번 간 곳을 다시 가기보다는 새로운 곳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단골 가게가 거의 없다. 하지만 ‘큐빵’만은 예외다. 큐빵 사장님은 사근사근 말하며 친절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퉁명스러움 속에서 담긴 마음에는 거짓이 없다. 그 솔직함이 고향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고, 편안하게 만든다. 큐빵은 단순히 빵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소통과 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의 복잡하고 화려한 모습 속에서 어쩐지 낯선 나를, 이 작은 빵집은 늘 따뜻하게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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