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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A의 일상] #4

토요일 오전, 카페.

by 이돌

자판을 두드렸다.


'ㅣ마어ㅣ마ㅣㅣㅁㄴㅣ마어미ㅏ이ㅏ머라어ㅏ'


백스페이스를 눌러 화면에 의미 없이 나열된 자음과 모음을 지웠다. 몇 번을 반복하다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집중해 보려 했지만 다른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리다 고개를 들었다. 포마드를 바른 듯 반지르르한 백발을 뒤로 넘긴 할아버지가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스쳐,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여자들과 그 옆에서 무심히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남자로 향하던 시선은 이내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돌아왔다. 이제 써볼까, 핸드폰이 가볍게 떨린다. 형이었다. 통화를 끊고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다들 잘 쓰네. 너무 오래 봤나, 목과 어깨가 묵직하다. 머리와 팔을 뒤로 한껏 젖히고 다리를 쭉 뻗었다. 한 순간 힘이 들어왔다 썰물 빠지듯 빠져나간다. 식은 커피를 물 마시듯 들이켰다.


이제 집에 가자.


늦은 밤. 거실 유리창은 실내의 환한 조명을 반사하며 집안 모습을 흐릿하게 비추었다. 경서는 흐릿한 유리창을 보며 그 너머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유리창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밖을 내다보며 아무도 없음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밖이 잘 보이도록 실내의 불을 모두 끄고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좁은 골목을 어슴푸레 비추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래층에서 현관문이 삐걱하고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조용하던 건물 내부에 울려 퍼졌다. 발소리가 점차 멀어져 갈 즈음 빌라의 출입구 전등이 켜지며 누군가 나왔다. 남자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빌라 앞 주택의 담벼락으로 걸어가 손바닥으로 벽을 짚었다. 남자의 머리가 서서히 뒤로 움직였다. 팔이 점점 쭉 펴지더니 마침내 활시위가 당겨지듯 팽팽해졌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경서의 머리칼이 곤두섰다. 찰나. 남자의 머리가 벽을 향해 쏜살같이 쏘아졌다. 쿵, 남자가 힘없이 허물어졌다. 경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창가에 서있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A의 단편소설: ckd(창), 여전히 쓰는 중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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