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콘돔
"오늘, 친구 가방에서 포장이 찢어진 콘돔을 발견했잖아. 선생님한테 걸렸으면 작살날 뻔했어."
아이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아이 엄마는 중학생이 콘돔이라니, 말도 안 된다며 아이와 장단을 맞춘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아내와 나의 격렬한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히 큰일이지. 중학생이 콘돔이라니."
"할 수도 있지" 아내의 높아진 언성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하~" 아내의 입이 살짝 벌어지며 짧은 숨이 세게 나온다.
말실수 했음을 직감했다. 이후 내가 말한 의도는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까지, 때로는 서로의 언성이 높아지는 순간을 포함하여 꽤 긴 시간이 흘러야 했다. 아이는 자신이 뿌린 화제가 부모의 언쟁으로 발화하는 모습을 본체만체하고는 냉장고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래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에는 체벌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인 그때에도 여전히 가방에서 담배와 콘돔이 발견됐었다. 담배 피우는 것을 들킨 학생들이 교무실로 끌려가 몽둥이로 맞기도 했고 두발이나 복장 규정을 어겼다고 뺨을 맞기도 했다. 선생님께 잘못한 것을 들킨다는 생각은 곧 '우린 죽었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폭력적인 방법이라도 우리들의 행동을 개선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담배를 피웠고 여전히 머리를 길렀으며 여전히 복장 규정을 어겼다. 단지 안 들키기 위한 방법이 더욱 정교해졌을 뿐이다. 결국 '폭력'은 아이들을 음지로 숨어들게 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언제든 선생님이나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무섭고 엄한 벌칙만 있어서는 안 된다. 큰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 내가 군에 있을 때였다. 사소한 규칙을 못 지켜 얼차려도 받았고 심지어 선임들에게 맞기도 했다. 하지만 탈영을 시도하는 등의 정말 큰일이 벌어지면 병사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더 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아이의 가방에서 피임기구가 발견된다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이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