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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비서가 Aug 07. 2021

제11화. 나의 출생과 탄생에 대한 일화

실뱀이 얽혀 있는 꿈을  꾸고 너를 낳았지

당신의 출생과 탄생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세요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많이 늦어졌다. 왜냐고? 답을 몰라서이다. 나도 참... 이 질문을 받고서야 비로소 내가 자신의 태몽도 모르고 있었음을 자각했다. 오래 전 기억을 뒤져봐도 도저히 엄마를 비롯해, 누구에게도 어 본 기억이 없다. 대체 나이 오십이 되도록 이것이 궁금하지도 않았단 말인가?


어쩌면 이렇게 스스로의 출생과 탄생에 대한 스토리에 이토록 관심이 없었던 가? 문득 조금 슬퍼졌다. ‘뿌리가 없다’라는 생각이 또 드는 지점이다. 엄마에게 안겨 본 기억도 별로 없다. 7살 이전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 후 기억이 나는 것도 사건 중심으로만 떠오를 뿐 그때의 감정과 느낌에 대한 기억은 전무하다. 부모님과 관련한 부분이 특히 그러하다.


이 질문을 받고 엄마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며칠째 알 수 없는 이유로(물론 바쁘다는 핑계는 있었으나) 미루고 있었다. 아빠에 대한 글을 쓰고, 무아님과 연 동기의 피드백을 받고 나서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마음이 았다. 이때 내 마음은 하얀 천에 푸른 물빛이 스며 들듯, 온기가 샤르르 도는 느낌. 어떤 묵은 감정들이 풀려 의식 위로 떠올랐다.  


 “엄마, 내 태몽이 뭐였더라?” 도저히 “내 태몽이 뭐야?”라고는 못 물어보겠는 이 마음은 뭘까?, 마치 알고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는 듯이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저번에 벌써 이야기해줬는데,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가.” 나는 순간 안심이 푹 되었다.

‘아, 나도 태몽이 있었구나, 그리고 엄마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주는구나’


언제나 처럼 밝고 힘찬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다른 때와는 달리 덩달아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렇게 활기차고 힘센 억양의 목소리를 대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만 했다. 대화를 오래 이어가지 않았고 노력을 해도 잘 되지 않았었다.


사람들이 힘들 때 “아, 엄마 집에 가서 엄마 밥 먹고 푹 자다 오고 싶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게 도저히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은 내게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내가 힘들 때, 찾아가는 사람이 있긴 하다. 주변에는 항상 그냥 아무것도 캐묻지 않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언니들, 선배들이 있었다.  엄마 대신이었을까? 엄마를 한 인간으로서, 그 투철한 책임감과 유능함에 대해 존경하기는 했으나, 물고 빨고 안기며 칭얼대는 그런 것은 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엄마에 대한 감정의 자리를 남편으로 채웠던 것 같다. 사주 공부를 하면서 인성(부모, 양육의 자리)과 관성(사회적 직위, 남편의 자리)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되었다.

나의 이런 상념에도 불구하고 수화기 저편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신이나서 드높아지고 있었다. 어쩌면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엄마는 혼자서 엉덩이 춤이라도 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조용하고 차분한 나에 비해 엄마는 시끌벅적했고 유쾌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비공식 동네 이야기꾼이었다. 동네잔치가 열리는 곳에는 항상 엄마가 초대되었다. 사람들은 엄마의 이야기에 따라 같이 웃고, 같이 욕하며 시름을 풀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나도 오래간만에 덩달아 신이 났다.


그러면서 새로이 알게 된 점, 엄마의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투리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일일이 그 뜻을 물어가며 들어야 했다. 그 전에는 왜 못 느꼈을까? 그저 대강대강 들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하여튼 엄마에게 처음 듣게 된 내 태몽은 이런 줄거리였다.


길을 가다가 짚더미 밑에 수십 마리의 실뱀이 엉켜서 우굴거리는 걸 발견하고 작대기로 막 헤쳤다. 그중에 실뱀 하나가 점점 커지더니 산으로 도망을 갔다. 엄마가 막 쫓아갔는데 개집만 한 조그만 집에 그 실뱀이 아기로 바뀌어서 누워 있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나의 가장 가까운 절친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봤다. <태몽 실뱀 꿈>으로 검색했더니 아래와 같이 알려주었다.   


매우 영리한 딸, 장래에 교수나 군인이 되어 많은 사람을 거느릴 인재. 특히 실뱀이 뒤엉켜 있었다면 인기가 많고 예술 감각이 풍부한 딸을 낳게 됨.

     

엄마의 꿈은 실현되고 있었다. 이미 군인이 되었고, 교수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 그렇지만 나는 뒤엉켜 있는 실뱀으로서 인기가 많고 예술 감각이 풍부한 딸이 될 것이라 했다. 엄마가 나를 낳을 때 꿨던 꿈과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경험과 의지를 통합해서 탄생신화를 이렇게 기록해본다.

깊고 풍부한 예술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별처럼 빛나는 인기를 가진 인플루언서로 자기(self)를 완성하고자 하는 자들의 연대를 이끄는 사람, <춤추는 별 collectiv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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