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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Apr 16. 2024

봄, 당신과 이별한 계절

우리가 이별했던 때가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이별도 대비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햇볕이 따뜻한 사월의 봄날에 나는 꽃비를 맞으며 당신과 이별했다. 벚꽃이 만개하면 함께 한강을 산책하자던, 지키지 못할 약속만을 남기고서. 당신은 나를 떠나버렸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꽃잎을 느끼며 당신이 떠난 자리에 한참 서있었다.

우리는 왜 다시 헤어지는 걸까. 당신은 내게 벌써 두 번째 이별을 고했다. 그럼에도 이별은 참 익숙해지지 않는다. 


당신이 처음 내게 이별을 고했을 때, 나는 무엇을 먹지도 삼키지도 못할 정도로 망가졌다. 

잠을 자지도, 누굴 만나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저 침대 한편에 널브러져 이별의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다.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을까. 나는 당신을 보내줄 수가 없었다. 비가 무수히 쏟아지던 날, 나는 온몸으로 그 비를 뚫고 당신을 찾아갔다. 당신은 내 모습을 보고도 놀라거나 화내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운 얼굴로 수건을 건넸을 뿐. 동요하지 않던 당신의 모습이 더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미친 듯이 애원하고, 넘치던 내 미련을 그 자리에서 쏟아냈다. 


그 후 나는 모든 게 괜찮아진 줄로만 알았다. 재회한 그날부터 나는 당신이 싫어하는 일이라곤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막연하게 당신과 영원한 행복을 바랐다. 그리고 몇 번의, 아니 수 십 번의 봄을 함께할 것이라고 꿈꿨다. 


하지만 다시 당신이 또 내게 등을 지고 떠났다. 마침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담담하게. 당신은 내게 사치였을까. 아니면 빛바랜 연인이었던 우리에게 이 봄날이 사치였을까. 두 번째 이별 후에도 나는 꽤 오랫동안 당신을 놓지 못했다.


해가 바뀌고, 또 새로운 봄이 찾아왔다. 며칠 전 가까운 친구에게서 당신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축복도, 당신의 안녕을 빌어줄 수도 없었다. 그저 쓴웃음으로 술잔이나 기울일 뿐. 


돌이켜보건대 뭐 그렇게 대단한 이별이었냐고. 아프지 않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그냥 우리가 헤어진 계절이 봄이라서. 다른 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자니 괜히 더 슬펐던 것뿐이라고. 마지막까지 구질구질하게 굴어본다. 


술집에서 나와 동네 공원을 걸었다. 새벽바람에 흔들리는 꽃잎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가 이별 한 때가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이제 당신은 내가 다시 돌아갈 수도 없이 멀리 떠났다. 


봄이 싫다. 모두가 설레어하는 이 계절이 나는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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