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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Jun 11. 2024

삶을 함께하던 연인들은
이별도 쉽지 않다.

함께 살던 집에서 그가 떠났습니다.

누군가 제대로 이별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라도 하면 좋겠다. 이대로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함께 살던 집에서 그가 떠났다. 옷가지, 책, 컴퓨터, 책상 등. 그리고 그의 온기까지 모두 들고서. 먼저 이별을 고한 것은 나였다. 그와 함께한 모든 시간을 후회하면서 미친 사람처럼 울고, 악을 질렀다. 그는 반쯤 영혼이 빠진 표정으로 이런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리곤 잠시 후 “알겠어”라는 고작 그 한마디만 남기고 집을 나가 한참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 까. 낯선 소리에 나가보니 그는 어디선가 큰 차량을 끌고 집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말없이 방 안에 있던 네 짐을 꺼내 하나씩 실었다. 마치 나는 투명인간처럼 네 방 문 옆에 서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모든 짐을 다 실은 네가 “갈게”란 짧은 인사를 마치고 떠난다. 네 향기가 희미해진다. 


네가 떠난 후 나는 며칠을 잠도 자지 못한 채로 뒤척였다. 가장 못난 꼴로 이별을 뱉어낸 나를 증오하면서. 사흘쯤 지났을까. 간신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네가 무엇이라도 두고 갔을까 괜히 작은 방 문을 열어 보았다. 우리 사진으로 가득했던 벽이 텅 비었고, 매일 잔소리하게 만들던 널브러진 네 옷가지들이 모두 사라졌다. 몇 년을 함께 살던 집인데 처음부터 주인이 없던 방처럼 비어버린 방을 보곤 나는 문고리를 잡고 그대로 주저앉아 오열했다. 


삶을 함께하던 연인들은 이별도 쉽지 않다. 같이 타던 차, 같이 살던 집. 사는데 필요했던 모든 것들을 공유했기에 마음이 끝난 이후에도 정리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전화할 수 있는 것도, 이런 핑계들밖에 없었다.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같이 타던 차를 어떻게 할 건지 따져 물었다. 그리고 그 말을 시작으로 나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함께한 모든 시간이 힘들었으니 당장 나에게 돌아와 사과를 하고 떠나라는. 


그는 오랫동안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듣다가, 떠나던 그날 밤처럼 “알겠어”라고 짧게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몇 시간쯤 흘렀을까. 늦은 새벽 그가 왔다. 우리가 함께 살던 집으로. 그리곤 나에게 그동안 자신이 했던 모든 일들을 모두 사과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 순간까지도. 


얼마 동안의 오랜 사과가 끝났다. 나는 그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덤덤하게 사과만을 전했다. 나는 다시 참지 못하고 세상에서 가장 찌질한 말들을 퍼부으며, 마지막까지도 그의 안녕을 빌어주지 못했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이나 내가 엉망진창으로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을 지켜봐 주었다. 


내가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울기 시작하자 그는 “갈게”라는 인사를 남기고 다시 떠났다. 나는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가 함께 했던 곳에 홀로 남겨졌다. 이별은 수없이 겪어봤지만 늘 익숙해지지 않는다. 끝까지 나를 배려하며 우리의 사랑을 끝내던 그가 그리워 나는 그 자리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아, 나는 대체 언제 자랄까. 

이전 11화 성민은 한 대 맞았다. 지독한 첫사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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