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눈이 내렸던 그날 지만의 집에 도착한 지수는 저녁준비를 할까 물으려고 아직 귀가하지 않은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돌아오지 않은 것도 드문 일인데 무슨 통화가 이리 길어지는 건지. 그녀는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과묵한 지만의 통화는 언제나 간결했기에 일분 이상 통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그날은 통화 중 음이 오 분 넘게 이어졌다. 지수는 동물적 감각으로 뭔가 변하고 있다 느꼈다.
“ 뭘까?”
시어머니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십오 년 세월이 흘렀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시아버지 여자 해프닝이었다.
십 년 전 봄, 또래로 보이는 여자를 같이 살겠다고 데려온 지만. 그날 모습을 지수는 잊을 수가 없다. 한눈에 봐도 얌전히 살림할 사람이 아닌데 아버님은 뭘 바라고 그녀를 집으로 들인 것일까. 더욱이 놀라운 건 그녀를 만난 곳이 콜라텍이라고 불리는 노인들 전용 무도장이라는 사실이었다. 평생 근엄하고 절제하던 시아버지에게 지수는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아들도 어쩌지 못하는데 그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 하루하루 감시의 눈초리를 게을리 않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웃기조차 민망했던 사건은 채 일주일이 안 돼서 마무리됐다. 그녀 남편이 자식들을 대동하고 찾으러 와서 끌리다시피 시아버지의 여자는 사라졌다. 이후 오랜 세월 지만은 단 한 번도 자기 세상에 둘러친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높고 두터운 가시 울타리를 두르고 사는 듯했다.
지수는 그런 시아버지를 오래 관찰하고 있었기에 최근 일 년 사이의 미묘한 변화를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다만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을 뿐.
눈발은 굵어지고 시아버지와는 연락이 닿지 않아 맘 졸이던 지수는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 음이 들렸다. 수상한 날이었다. 마냥 기다릴 수 없던 지수가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문을 여는데. 막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주간보호 센터 승합차를 발견했다. 원장이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지만과 함께 옆자리 연이가 보였다.
쿵 소리 나는 가슴, 움직여지지 않는 발. 오래전에 느꼈던 불안감이 차가운 주차장 공기와 함께 그녀의 가슴을 잽싸게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