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12월도 어느새 중반이다. 원장은 크리스마브 이브에 있을 오픈하우스 행사에 온 신경이 가 있다. 개원 이래 처음 이 행사를 계획할 때는 할까? 말까? 여러 번 오락가락했다. 결정적으로 마음을 굳인 데는 근처에 새로 생긴 주간보호센터 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싶다는 욕심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그러나 준비과정에서 아이처럼 좋아하는 어르신 원생들의 순수한 열정을 마주하며 하길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했다.
매주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원생 어르신들의 작품들이 늘어갔고 완성도 또한 높아져서 내심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던 차였다. 원생 대표인 지만과의 회의에서 찬성을 얻고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작품 전시와 노래자랑, 동영상 전시, 경품 추첨 등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효자 효녀가 얼마나 많은지 경품으로 들어온 협찬 품이 흡족하게 쌓였다. 전시회는 거의 준비됐고 노래자랑에 듀엣으로 결성된 지만과 연이의 연습만 점검해 보면 된다. 기대 이상으로 열성을 보이는 두 어른 모습이 아름답다. 지만과 연이 가운데 호식은 심사위원이라도 된 듯 심각하게 듀엣 곡을 듣고 있다.
청실홍실 엮어서 정성을 들여
청실홍실 엮어서 무늬도 곱게
티 없는 마음속에 나만이 아는
음~ 음~ 수를 놓았어
노래 중간 지만은 연이의 붉어진 볼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그 광경을 보는 호식은 감출 수 없는 질투심을 꾹꾹 밀어 넣느라 애쓰고 있었다. 연이도 애매한 분위기에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지만과의 듀엣이 흡족했다. 귀여운 노인들 모습에 원장은 슬그머니 미소를 흘렸다.
벽면 가득 어르신들의 그림이 걸렸다. 눈에 띄는 아크릴 화 두 점이 있었다. 연이 꽃그림과 두 마리 강아지 그림이었다. 지만은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힘 있는 서예작품을 멋지게 표구해서 내어 놓았다. 모두가 여느 전시회 못지않은 훌륭한 행사가 될 거라 기대하며 하루하루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오픈하우스 아침, 아끼던 한복을 차려입고 공들여 화장까지 마친 연이는 설렜다. 처음 느껴보는 행복한 떨림이었다. 등원해서 보니 모두 잘 차려입고 있어서 내심 혼자만 튀게 될까 봐 염려했던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항상 일등으로 등원하는 지만 역시 오늘은 진회색 양복에 넥타이 대신 스카프로 멋 낸 모습이 십 년은 젊어 보였다. 듬성듬성한 머리에 포마드를 발랐는지 올백으로 빗어 넘긴 호식도 오늘은 근사했다. 축제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모두 차려입으니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노인 원생들이 근사해 보였다.
한편에 다과상이 차려지고 꽃바구니도 가운데 놓였다. 노래방 기계를 중심으로 소파를 배치하고 포토죤으로 사용할 현수막도 설치되었다. 빈 공간에는 간이의자도 여유롭게 놓였다. 준비는 완벽했다.
오후 두 시 초대받은 가족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 지만의 둘째 아들 내외와 호식의 여동생 내외 그리고 연이의 딸도 도착해서 전시된 작품 앞에서 사진 찍고 꽃다발도 주는 모습을 원장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들에게 매일이 축제이길 바라는 그녀 마음에 돌연 눈물방울이 반짝했다.
노래자랑 시간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즐겁게 손뼉 치고 웃어가며 행복한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 순서는 지만과 연이의 듀엣이었다. 반주가 나올 때만 해도 떨리는 마음을 가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연습한 이상으로 훌륭하게 노래를 마쳤다. 청중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선창을 했다.
“ 사겨라, 사겨라.”
이게 무슨 일인지 두 사람은 당황해서 어쩔지 모르는데 노인원생들은 두 사람 놀려주는 재미가 있었는지 ‘사귀라’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 속에서 웃지 않는 두 사람이 있었다. 지만의 며느리와 연이의 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