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힘껏. 마음껏. OO스!!
1. 우리 큰딸의 태명입니다.
2. 무뚝뚝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퇴근 후 식탁 위에 병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어떤 설명도 없고 그 어떤 메모도 없다. 얼른 저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웬 드링크?' 하고 지나갔다. 그건 우리 집 첫째 딸 추석이의 어버이날 기념 선물이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드링크 하나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을 뿐 그 어떤 말도 없다. 알아차리는 건 우리 몫이었다. 그렇게 선물의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채, 드링크는 잊혔다.
언제나 늘 그랬듯, 추석이는 방청소가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공부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간식도 먹는다. 책상 위에 풀던 문제집, 그 위에 갈아입은 옷, 그 위에 실내화, 그 위에 다시 오늘의 숙제를 풀기 위한 문제집을 올려놓는다. 조만간 일어서서 공부를 할지도 모른다.
방청소도 숙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어린이날 선물 받은 아이돌 오빠야들의 앨범을 만지작만지작... 거린다. 포카를 신줏단지 모시듯 열과 성을 다해 곱게 다룬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평소에는 추석이 방문을 그냥 닫는 편이지만, 오늘은 문을 닫다가 샤우팅이 나간다.
"너! 너무하는 거 아니야? 방청소도 안 해, 숙제도 안 해, 몇 번을 말해도 대답만 하고 지금 몇 시간째 이러고 있는 거니" (생일이나 기념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나라고 생각했는데 말 한마디 없이 지나간 어버이날이 내심 서운했었나 보다. 잔소리가 길어진다...)
"그리고 어버이날 엄마가 아무 말 안 하고 싶었는데 너희는 어린이날은 일주일 전부터 받고 싶은 선물 말하면서 어버이날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어?"
(쿨하고 싶었지만, 세상 미지근하다 못해 뜨겁다 잔소리..)
기어코 한마디 했다. 식탁 위의 그 드링크 존재를 나 역시 관심두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놨으면서.. 아이의 표현을 알지도 못한 채 모진 말을 퍼부어버렸다.
우리 큰 아이는 선물을 했다고 해서 생색을 내거나, 알아주기를 바라는 성향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나름의 표현을 하고 있었다..
내가 샤우팅을 했을 때 억울하다 한마디 할 법도 한데.. 엄마의 잔소리를 BGM으로 깔고 책상을 치운다..
남편이 어느 날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다 묻는다.
"왠 박카스야?"
"아 맞다. 몰라 며칠 전에 식탁 위에 올려있던데?"
순간 쎄... 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박카스'가 아니고 '치얼쓰'다. 부모님을 위한 피로회복제라고 쓰여있고 뒤를 돌려보니.. 손글씨가 쓰여있다.. 설거지하다가 물 묻은 손으로 그 병을 냉장고에 넣었었다. 그래서인지 편지가 일부 흐릿하게 지워져 있다..
덧붙이기]
뭔가 빠르게 쓰고 붙인 느낌을 말해주 듯 필체가 굉장히 자유롭다.
병에 붙일 종이 길이가 글씨를 덮을 수도 있음을 계산하지 않는 저 쿨함. 역시나 앞글자들이 덮여있다.
느낌으로 유추하며 문장을 읽는다!
결혼기념일을 기대하라고 당당하게 쓰여있지만 엄빠의 결혼기념일은 추석이의 이벤트 없이 조용하게 지나갔고 심지어 방을 안 치워서 또 혼났다.
이 드링크는 평생 못 먹을 것 같다~^^
고마워 추석아!! 다음엔 너의 마음을 엄마가 더 빠르게 알아차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