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구출작전

by 신이나

시골집에 발길을 끊은 지 10년 정도 되었다. 시골집은 아버지의 고향인 문경에 있는 작은 집이다. 주말에 가끔 내려가 앞마당에 꽃도 심고 고구마와 감자도 심으면서 주말농장처럼 지내다 오는 우리 가족들의 별장이었다.

10년 전 아버지가 가족여행으로 갔던 제주도에서 그곳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에 매료되어 거처를 서울에서 제주도로 옮긴 뒤 우리들의 시골집 방문은 종료되었다. 퇴직 후 할 일이 없어진 서울생활이 적적하셨던 모양이다. 물론 도시생활의 달인이 된 엄마는 집 근처 우뚝 솟은 대학병원과 동네 아주머니들의 탄탄한 점조직을 버릴 수 없어 1초의 고민도 없이 아버지와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제주도로 떠나신 후 방학마다 제주도를 들락거렸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골집을 잊었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나는 좋아하던 여행도 못 가고 등산도 못 가고 집 밖으로 마음 편히 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집콕 생활을 하던 중 아버지가 제주도 삶을 정리하고 가을쯤 시골집으로 오겠다고 하셨다. 10년 넘게 비워둔 집이라 아버지가 생활하시기엔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을 것 같았다. 시골집에 가야 했다. 다행히 그 집은 산 아래 덩그러니 혼자 자리 잡은 집이라 주변에 마주칠 사람이 없어 코로나를 피해 그리고 집콕 생활을 피해 안전하게 다녀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코로나와 폭염으로 하루에도 수없이 재난문자를 토해내던 8월, 엄마와 동생네 부부를 데리고 시골집에 갔다. 산으로 둘러싸인 하얀색의 시골집은 멀리서 봐도 몰골이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집 앞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와 앞마당은 어른 키만 한 잡풀과 나무들로 뒤덮여 정글을 방불케 했다. 거친 풀들로 발을 내딛을 공간이 없어 풀을 눕혀 겨우 한 발을 내딛으면 이름 모를 곤충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올랐고 시커먼 산 모기들이 나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마당 수돗가엔 10년 동안의 자연적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검은흙과 낙엽이 차곡차곡 쌓여 찐득해진 검은색의 개흙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온갖 꿈틀거리는 벌레들이 흐늘거리며 왕국을 건설해 통치하고 있었다.


“그래, 10년이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빨간색으로 코팅된 목장갑을 꼈다. 동생네 부부는 낫과 정원용 가위를 들고 마당의 정글 숲을 조금씩 정복해 나갔다. 엄마는 거미줄로 진을 친 현관부터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나는 마당 수돗가에서 영토 확장 중인 꿈틀이들과 개흙을 삽으로 조각내 밀어붙여 쓸었다.


그렇게 첫날은 3시간 동안 각자의 영역에서 아무 말 없이 노동자들처럼 일했다. 일하는 중간중간 바닥만 보이면 다들 기절 타임을 갖곤 했지만 누구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청소 1일 차, 우리는 모기떼에게 100방씩 물려 벌겋게 부어오른 팔다리를 피가 나게 긁으며 서울로 돌아왔다.


8월을 시작으로 주말마다 우리 가족들은 시골집을 찾아갔고 풀과의 전쟁을 치르며 예전의 아늑했던 시골집으로 되돌리기 위해 이곳저곳을 치우고 버리고 닦아냈다. 시골집을 다녀간 다음날부터 내리 3일은 온몸의 근육통으로 앓아누워야 했지만 그 고통도 깨끗해지는 집의 모습을 보며 참아낼 수 있었다.


방문 한 달째, 나는 마당 가장자리에 빨간 벽돌로 화덕을 설치했다. 물이 가득 담긴 가마솥을 올려놓고 장작을 넣어 불을 땠다. 타닥타닥 소리 내며 타고 있는 불을 멍하니 쳐다보다 집 앞으로 펼쳐진 초록빛 논밭이 시야에 들어왔다. 서늘한 바람에 탱글탱글 맺힌 벼이삭들이 일렁거렸다.


“벌써 가을인가?”


그러고 보니 벼이삭들이 어느덧 통통하게 살이 올라있었다. 건너편 사과밭에도 가지마다 사과들이 제법 달려 있었다. 청소일이 제법 마무리가 되어가는지 어느덧 마당 수돗가에는 작은 테이블과 커피 잔들도 나와 있었다. 지붕 위를 반 이상 덮고 있었던 아마존 같던 나무들도 모두 정리되어 파란색 지붕은 자신 있게 빛을 내고 있었다.


“좋다.”


귀향하는 아버지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골집을 치우고 정리하는 일은 결국 나를 위한 일이었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이곳이 좋았다. 오자마자 일을 시작해야 했고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해서 좋았다. 주변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있어서 좋았다. 폭염으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의 절정을 더운 줄 모르게 해 줘서 좋았다. 정리가 되어가는 집을 보며 뭔가를 이루어가고 있다는 성취감을 갖게 해 줘서 좋았다. 어느 순간 가을이 오고 있음을 서늘한 바람으로 느끼게 해 줘서 좋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 곳을 보고 좋아하실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져서 좋았다.


도시생활을 하며 받았던 스트레스와 답답한 집콕 생활 그리고 아들의 사춘기를 겪으며 분노했던 마음은 이곳에만 오면 기억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끓어오르는 화를 누를 수 없어 불면증에 시달렸을 텐데 이곳만 다녀가면 머리가 침대에 닿는 순간 렘수면으로 직행했다.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은 단순해지고 어려운 문제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거 같다는 성직자의 마인드가 되었다. 명의의 어떤 의술보다 너무 귀해 본 적도 없는 신비의 산삼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치유의 효력을 가진 시골집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그리고 다음 주에도 난 이곳에 있을 것이다.


아! 한 달 만에 2킬로그램이나 체중이 빠진 것은 최고의 보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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