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행복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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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4화까지는 일주일 전 미리 예약을 걸어두었고, 5화는 2주 조금 안 되는 여유로운 시간을 두고 조금씩 작성을 하고 있었다. 1-2화는 오랜 기간 쓰고 지우고 또 정리하며 이야기를 매만지는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 정돈된 글을 올릴 수 있었는데 이제 일주일에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게 조금씩 부담으로 다가왔다.
브런치에 어느 작가님이 “글은 충분히 자기 안에서 품어서 정돈되는 시간을 거친 다음에야 내놓아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5화를 쓰는 동안 그 말이 온전히 와닿았다.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연재일을 하루 정도 앞두고, 정제하지 말고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표현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감추고 싶었던 부분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 지우는 걸 반복하며 이상하게 잘 써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우물이 있고, 그 바닥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아팠던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이제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솔직하게 전해보려 한다.
서른이 넘기 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한때 화목했던 우리 가족은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깨어졌고, 엄마는 나와 동생을 홀로 키우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가장의 무게를 견뎌야만 했던 엄마는 아이들의 정서적인 부분까지 신경 쓰고 채워주기에는 체력도, 여유도 부족했다.
엄마는 더 이상 이 가정을 지키기 어려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와중에도 자식들을 책임지기 위해 우리를 데리고 나왔다. 그렇게 준비 없이 아빠를 떠나게 된 나는 그런 아빠에게 미안했고, 또 불쌍하다는 생각과 그리움에 사무치는 시간을 보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혼이라는 건 사회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시절이었고, 이혼 가정의 자녀들은 엇나가기 쉽다 여겨지는, 일종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런 시선으로 아무렇지 않게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며 ‘이혼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결혼 상대로는 거르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식의 말을 내뱉기도 한다.)
주위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에 시달리며 시간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여유가 부족했던 엄마는 점점 엄해져만 갔다. 나는 그런 엄마가 무섭고 미웠다. 이상하게도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을 엄마 탓이라 여기며 원망하고 있었다.
엄마는 우리를 남에게 욕먹지 않을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로 키우려 애썼다. 그런 엄마는 다행히도 엇나가지 않고 모범적으로 자라온 나에게서 자신의 삶을 보상받으려 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정서적인 지배(?) 하에서는 자유를 느끼기가 참 어려웠다.
안정적인 가정 안에서 충분한 애정을 누리지 못했던 나는 쉽게 깨어지지 않을 견고한 나의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이유에서 가능하면 빨리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인생이 생각대로 흘러간다면 이렇게 고통스러울 일도 없겠지만 결혼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평생을 함께할 나에게 꼭 맞는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도, 결혼을 할 때 필요한 자원들도, 가족들의 지원도
그 무엇도 나에게는 쉬운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 고민들이 회사에서의 과도한 업무량, 극심한 승진 적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연봉 등 현실적인 문제와 결합되며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무게로 다가왔다.
상담센터를 찾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진 힘으로는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드러내놓고 보니, 현실적인 부분을 바라보느라 나의 내면을 살피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담을 지속하며,
돈, 명예, 다른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나 자신” 보다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관계가 건강하게 정립되어야 내 삶의 중심을 되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연인, 친구, 때로는 동료들과의 관계.
상담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의 정서적, 재정적, 물리적 독립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나에게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 삶의 주도권을
부모의 기대, 과거의 상처,
사회가 정한 시간의 흐름에
힘없이 내어주지 않아야지.
나의 단단한 기둥을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마지막 상담날에 선생님은,
“OO씨는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어요. 적당한 시기에 알고, 경험해야 할 것들을 잘 소화하고 있고,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거예요 “라고 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철이 빨리 들었지만, 결코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없었던 내가 아직 성장하고 있고, 또 계속 성장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이 시기는 아주 아픈 성장통을 겪어야만 했던, 지금까지의 내 생애에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알맞은 때에 좋은 상담선생님을 만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지금은 일상에서의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상담을 받아보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그때의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거나, 불안정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꼭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삶의 위기를 극복해 내는 회복탄력성이 있지만, 좋은 상담자를 만나면 조금 더 빠르고, 올바른 방법으로 회복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조그마한 존재들이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빨리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