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함께 일하던 선배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꽤나 유쾌한 사람이었다. 상사에게는 눈에 보일 정도로 정말 잘하는데, 후배에게는 조금 달랐다. 말로 괴롭히는 걸 좋아하고, 라인 만드는 걸 좋아해서 자기 손 안에서 컨트롤되지 않으면 괴롭히기 일쑤였다.
신입에게는 텃세를 부리기도 했다.
“나는 너를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라”는 둥,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열정으로 가득 찬 순수한 신입들의 마음을 까맣고 만들고 싶었는지, 기강을 잡으려 애썼다.
정서적인 괴롭힘이 계속 이어졌다.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회식 때 쓸 물품을 은근슬쩍 구매해 달라고 하면서 그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너무하다”며 핀잔을 줬다. 결국 본인이 직접 샀는데,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 회식자리에서 그걸로 술을 돌려마시며 파도타기를 했었다.
그 외에도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은근슬쩍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건 기본이었고, 때로는 질투까지 하는 것 같았다. 쌓이고 쌓여 감정이 폭발했던 시점에 그 선배는 나에게
”자의식 과잉“이라며 ”세상이 네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상황 속에서 나는 충분히 단단해지고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진짜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에 자연스레 속아버리게 되는 상황에도 나는 정신을 붙들고 ’이게 가스라이팅인가?‘ 생각했다. 상처와 분노로 가득한 마음을 품고 이렇게 버텨야만 하는 것인지 매일 고민했다.
이 문제로 회사를 그만두기에는 열심히 준비한 노력이 너무 아까웠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할까도 고민했다. 그런데 이 작은 조직에서, 아직 내 편보다 그 선배의 편이 더 많은 이곳에서, 오히려 내가 상처받고 피해를 입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인생에서 좌절감,
무력감을 온몸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판단하거나 조언하지 않고 마음속을 유심히 살펴볼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 덕에 나는 그때의 내 생각을 과장하거나 줄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트라우마로 남아 있던 그 상처를 당시에는 버티는 것으로 덮어두었었다. 그게 오랜 시간 후회로 남아있었는데 그 후회조차도 이제는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는 것 또한 그 당시 나에겐 최선의 선택이었다.
오랜 시간 덮여있던 문제와 내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결국은 나의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상담을 통해 얇은 천으로 덮여있던 트라우마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더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