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중 시내 투어. 국립미술관, Day 10(2)
아이스크림만 두 번 먹었는데 이미 3시가 넘었다.
시간이 애매해서 미술관을 갈까 밥 먹으러 갈까 고민하며 가이드 북을 보다가 어린이 전시관이 ‘애니메이션 속으로 풍덩 들어온 느낌’이라는 글귀에 귀 얇은 둘이 홀린다. 애니메이션 속에 살짝 들어갔다가 저녁 먹으러 가지 뭐.
다시 이동. 버스를 타고 내려서 타이중 거리를 걷는다.
타이중에는 예쁘고 아기자기한 거리와 골목들이 참 많다. 진짜 작정을 하고 예쁘게 만들어 놓은 건물도 좋고, 그냥 일반인들이 사는 옛골목도 정겹다. 오래된 건물에 빨래를 널어놓은 자연스러운 풍경도 참 맘에 든다. 하지만 아들은 어느 동네의 어린아이들이 놀 법한 놀이터가 마음에 든다.
“엄마 저기도 예쁜 거 있다.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직진하는 나를 잡아 끈다. 놀이터는 안 예쁜데요. 한국에도 있는 철봉에서 시간을 보내고서야 미술관으로 향해 주신다.
열심히 걸어온 우리를 제일 먼저 맞아 주는 것은 미술관 옆의 춘수당. 버블티로 유명한 곳이니 버블티를 마시며 당을 보충한다. 나중에 버블티 만들기 체험을 할 예정이니 오늘은 가볍게 마시기 체험을 해보자. 걷는 건 힘들어하면서, 기다리는 동안은 계단을 뛰어다니며 시간까지 재달라고 한다. 힘 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엄마 마음도 모르고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질주하며 혼자서 이전 기록 깨기 레이싱을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속으로 풍덩 들어온 느낌’이라면서요...?
미술관 지하층에서 진행하는 어린이 미술 체험은 이미 마감되었다고 있다. 한국이나 대만이나 주말 어린이 프로그램은 일찍 예약을 해야 하는구나. 부지런한 부모님들. 일찍 와서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본 건물로 가서 둘 다 두근두근하며 어린이 박물관으로 향했다. 애…니메이션… 세계 어디 있어? 전시관 자체가 생각보다 크지 않고, 설명되어 있던 것과 다른 전시이다. 아마도 시즌에 따라 전시가 바뀌는 것이 아닌가 싶다. 둘 다 살짝 실망.
일반 전시관 쪽으로 가더니 미술관 도장 깨기를 시작한다.
“엄마 우리 저기 안 봤어.”
“2층 안 봤어.”
다 안 봐도 되는데 전 관을 다니며 열심히 미술작품을 누비고 다닌다(쳐다는 보지만 감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대체로 현대 미술이라 영상과 전시품이 어우러져서 더 흥미롭게 보게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미술에 관심이 많을 줄이야. 한국에서도 미술관 좀 다녀봐야겠다. 매일 보는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 이 또한 아이와 여행의 또 다른 재미이지.
입구 쪽 2층 계단을 올라가면 귀족들이 티 타임을 즐겨야 할 것 같은 로즈 하우스(구디엔메이구웨이위엔 古典玫瑰園)가 있다.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천정에도 장미 모양의 등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 여성 여성한 느낌. 차를 좋아한다면 자리 잡고 우아한 티타임을 가져보는 것도 미술관에서의 재미있는 체험이 될 것 같다. 방금 춘수당에서 버블티를 마시고 온 우리는 구경만 하고 패스.
2, 3층의 야외테라스에서는 미술관 앞 광장에 앉아 여유 있게 주말 오후를 즐기는 타이중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신나서 돌아다니더니 놀랍게도 밖으로 나오는 동시에 갑자기 힘들고 배고프다 한다. 버스 기다리는데 길바닥에 눕기까지. 야. 일어나! 어서 고기 먹으러 가자! 타로코몰 지하의 훠궈집에 가려고 어제 찜해뒀지.
바로 가려다가 타이중 기차역을 지나는 길이라 내일 구족문화촌 가는 버스정류장만 체크하고 가기로 한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구족문화촌 버스를 물어보자 너무나 익숙한 듯 영어와 한자로 적혀 있는 종이를 보여준다. 지도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리샨처럼 친절하지 않군.
위치를 물어보니 대답하는 사람들마다 금방 도착한다고 하여 조금씩 조금씩 가다 보니 한 10분 정도를 넘게 걸어가게 되었다. 윽! 그냥 갈까 했지만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 힘들다는 아이를 질질 끌고 결국 버스 회사들 중에서도 제~일 끝에 있는 난토우커윈(南投客运)을 발견하고야 만다.
예약을 하려…했는데 예약은 안 받아준다. 그러면서도 구족 문화촌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세 대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럼 아침에는 몇 시정도에 와야 할까요?”
아저씨는 저녁 타임에만 일하기 때문에 모른다고. 뭐야.
결국 위치만 알아 놓은 것에 만족하고 터덜터덜 다시 왔던 길을 걸어간다.
같이 걷기 힘들 때는… 뛰어서 가자! 손을 잡고 아무 생각 없이 끌려서 따라오던 아들이 한참 지나서야 물어본다.
“엄마 우리 왜 뛰는 거야?”
“빨리 가려고!”
대기가... 30팀?!
어제 찜해뒀던 타로코몰 지하에 위치한 훠궈집(스얼구어 石二鍋)에 갔는데 대기가 30팀이다. 그나마 줄이 좀 짧은 일본식 덮밥집(띵스 定食)에 가서 연어덮밥과 돈가스를 먹는다. 오늘은 일식과 아이스크림의 날이구나. 오늘도 지하의 까르프에 들러 내일의 간식거리와 과일을 쟁이고 나가려는데 아들의 눈이 미끄럼틀에 고정이 되어있다.
타로코몰에는 3층에서 1층까지, 그리고 2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미끄럼틀이 있다. 백화점에 이런 놀이기구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어제부터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타고 싶다고 해서(텐드럼에서 이런 미끄럼틀 몇 번이나 탔잖아!), 우선 밥 먹고 오자고 했었는데, 마트까지 갔다 왔는데도 마감하지 않았다. 8시에 마감한다는 문구를 얼핏 봤던 것 같은데, 에잇.
“엄마, 밥 먹고 나서 이거 태워준다고 했잖아요”
우리 아들 기억력도 좋지. 그...래. 타...자.
3층에서 타면 90위엔, 2층에서 타면 60위엔. 무슨 회원가입을 하면 더 깎아 주지만 우리는 관광객이니 그냥 타자. 기왕 타려면 3층에서 타야지. 돈을 냈더니 우리에게 동전 두 개를 준다.
“9층에 오락실이 있는데 거기서 쓸 수 있는 코인이에요.”
아… 미끼 상품. 알지만 이 코인을 쓰러 오락실에 가게 되겠지. 가서 돈을 더 많~이 쓰게 되겠지.
미끄럼틀 입구에서 직원이 커다란 자루에 아이 다리를 넣고 뒤에서 밀어준다. 순식간에 미끄러져 내려가는 아들. 나는 1층으로 후다닥 내려간다.
“어땠어?”
“재밌었는데 너무 짧더라.”
“그… 그래?”
더 타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밖으로 나간다.
아침부터 생각했지만 오늘은 정말 슬슬 돌아볼 예정이었다.
20,308보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