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족문화촌(九族文化村 지우주원화춘). Day 11(1)
나는 원래 사람 많은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한국에서도 휴일에는 잘 안 다니는 편이다. 그런데 일요일에, 그것도 연휴에, 대만에 와서 구족문화촌을 갈 예정이다. 구족문화촌은 민속촌 플러스 놀이공원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2001년 혼자 여행할 때도 구족문화촌을 갔었다. 대만의 소수민족 문화체험을 할 수 있고, 놀이 공원 시설까지 있어서 하루를 꽉 채워 즐겁게 놀고 왔던 좋은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여행에서 사람들이 많이 가는 일월담은 안 가도 구족문화촌은 꼭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가려고 보니 타이중에서 2시간 거리이다. 왕복 네 시간.
"두 시간'이'나 가야 하는데 구족문화촌 가지 말고 타이중 시내에서 하루 더 재미있게 놀까?"
안 갈 생각으로 물어봤더니, 아들이 완강하게 대답한다.
“구죽분화존 가고 싶어(구족문화촌 발음을 매우 어려워했다). 두 시간? 가면 되지”
아리샨에서 버스 타고 많이 힘드셨던 분 아닌가요? 내가 여기를 너무 좋게 말했나? 이렇게 단호하게 가고 싶어 할 줄은. 그래… 그럼 가볼…까. 엄마도 사실… 가고 싶었어.
구족문화촌까지 가는 버스는 어제 알아 둔 바에 따르면 7:45, 8:45, 9:20 이렇게 세 대뿐이다. 다시 타이중으로 돌아오는 차는 오후 3시 25분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3대. 아침에 몇 시 차를 타고 가야 할까? 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 무조건 첫 차지. 이동시간이 기니 첫 차를 타야 9시 25분에는 도착한다. 돌아오는 차가 막힐 것 같으니 첫 번째 3시 25분 차를 타자. 여섯 시간은 놀 수 있겠다. 오늘은 일찍 치고 빠지기 전략이다!
*http://www.ntbus.com.tw/hsr6.html
배차 시간표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어제는 힘들었지만 정류장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으니 다소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어제의 나. 수고했어.
7시에 숙소에서 출발. 가고 싶어 했던 곳이어서 그런지 이른 시간이어도 금방 일어난다.
타이중은 오늘도 날이 흐리다.
둘이서 좀비처럼 멍하니 걸어 어제의 그 정류장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오늘은 탑승을 도와주는 직원이 둘이나 있다. 버스는 요요우카드를 찍고 타면 돼서, 아들의 버스표만 구입한다.
버스를 타면 저렴하게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는데 살 거냐고 물어본다. 오! 좋죠! 미리 구매를 하려다가 어린이 표는 따로 팔지 않길래 사지 않았는데, 버스 할인으로 1600위엔(어른 900, 어린이 700)의 입장료를 1360위엔에 구입할 수 있었다. 아싸!
구족문화촌을 가려는 사람들이 이미 줄을 길게 서있다. 예상대로 사람이 많다. 버스를 오르는 사람들을 따라서 우리도 올라타고 시우가 너무 자연스럽게 요요우 카드를 찍는다.
“앗! 찍지 마!”
내가 버스표를 샀다고만 말하고 찍지 말라는 말을 안 했었구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엄마 때문에 시우는 시우대로 당황한다. 잠시 고민하다 앞으로 가서 살짝 징징거린다.
“아니.. 내가 표를 샀는데 아이가 모르고… 찍어서 찍힌 것 같은데…”
탑승을 도와주시는 직원이 대뜸 상황을 파악하시고 카드를 들고 사무실로 뛰어가고 그 사이에 승객들은 이미 탑승을 끝냈다. 만차 버스가 우리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아… 이 민망함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기사님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사죄를 하고, 감동스럽게도 버스기사님은 괜찮다고 웃으며 말해준다. 직원 분이 다시 헐레벌떡 뛰어와 카드를 돌려주고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가 출발한다. 괜히 뒤에서 마음을 졸이고 있던 시우도 안도한다. 내가 버럭 했었던가? 또 미안하네.
(시우도 신경이 많이 쓰였었는지 나중에 일기를 보니 엄마가 말풍선으로 “시우야, 찍지 마!” 하는 그림을 그려 놓았다).
이미 만차라서 인지, 이후에는 다른 정류장에 정차하지 않고 바로 간다. 타이중역에서 기다렸으면 또 차 뒤에 대고 소리 지를 뻔했네. 잠이 모자랐을 승객들을 위해 불도 꺼주고 잔잔한 음악도 틀어주는 끝까지 친절한 버스다. 막히지도 않아서 원래 예정시간 보다 일찍 도착을 했다. 시간 벌었다. 신난다! 더 많이 놀 수 있겠다!
해도 안 나는 데다 구족문화촌 고도가 높아서 버스에서 내리니 썰렁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우리도 아무 생각 없이 따라서 간다. 이미 매표소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아까 버스회사에서 구입한 티켓을 보여 줬더니 통과시켜 준다! 아. 버스 타고 오길 잘했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우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위에서부터 벚꽃과 소수민족마을을 즐기고, 내려오면서 아래쪽에 있는 놀이기구를 타라고 알려준다. 내린 곳에서 일월담에 가는 케이블카도 무료로 탈 수 있다고 하니, 사람만 많지 않고 시간이 충분하다면 일월담도 갔다 오면 좋겠다. 지도를 챙겨서 알려준 대로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데 나만 아는 정보가 아니었나 보다. 거의 모든 사람이 또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멀리서 봐도 긴 줄이 보이는 데 혹시 케이블카 줄은 아니겠지? 아닌 게 아니라 맞다.
현 시각 9시 20분. 케이블카 운행은 10시부터 시작된단다. 아니, 사람을 들여보냈으면 기구도 같이 시작을 해야지. 이해가 안 가는 성질 급한 한국 아줌마다. 케이블카 옆에는 자이로드롭 류의 놀이기구가 시범 운행을 하고 있고, 아들은 입을 벌리고 쳐다보며 눈으로 말한다. '타고싶어타고싶어타고싶어'
다행히 10시가 되기 전에 운행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빨리 줄이 줄어들고, 앞쪽에서 “리앙웨이!两位(두 명!)” 할 때 손을 번쩍 들었더니 더 빨리 탈 수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구족문화촌 전체를 조망해 본다. 빨간색, 분홍색, 하얀색이 알록달록한 등도 달아 놓고, 벚꽃 거리도 만들어 놔서 더 신나는 축제 분위기다. 날씨가 좋았으면 정말 예뻤을 텐데. 흐린 날씨가 다시 한번 아쉽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위쪽은 소수민족 전시관이다. 사라져 가는 대만의 다양한 소수 민족의 주거지와 생활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소수 민족 박물관에서는 소수 민족의 의상, 소품 등을 자세히 볼 수 있다. 구족문화촌의 시그니쳐인 해골과 돌을 가지런히 진열해 놓은 곳을 보니 예전에 여기에 왔던 것이 기억난다. 여기를 아들과 다시 오다니 - 만감이 교차하는구나.
나체의 남자 조각상이 귀엽게 새겨져 있는 나무집 앞에서 아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엄마 다행히 사람이 없어. 빨리 사진 찍어”
그러더니 자기도 바지를 벗는 시늉을 한다. 야! 소리를 버럭 지르자 혼자 빵 터지며 도망가는 장난꾸러기 녀석. 몬 산다, 정말.
즐겁게 구경하던 아들이 어느 순간부터 발걸음이 빨라지며 앞으로 손을 잡아 끈다. 왜냐하면… 놀이기구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에 왔을 때 소수민족 거주지에서 구경도 하고, 공예 만드는 언니랑 수다도 떨고, 전통 공연도 보고 같이 손잡고 춤도 추며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완전 즐기고 다녔었...네) 아들도 그런 추억을 좀 만들었으면 했는데, 이제 소수민족은 많이 봤단다. 관심이 놀이공원에 쏠려 있다.
“아들아! 저거 한정판매야! 다 팔리면 못 사. 지금 사 놔야 한다고!”
거리의 음식 부스에서는 입장할 때부터 나의 눈길을 끌었던 아이템인 ‘벚꽃 축제 한정 도시락’을 팔고 있다. 맛은 모르겠지만 구성이 너무 예쁘다. 나를 잡아 끌고 내려가는 아들에게 소리 친다. 명품백을 산다는 것도 아니고, 도시락 하나 사기 힘들다. 어쨌든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