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수당(春水堂) 버블티 만들기 체험, 다시 타이베이. day 12(1)
드디어 창문으로 햇빛이 비춘다.
바람 불고 추웠던 타이중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가 보다.
오늘은 기대했던 일정 중 하나인 '춘수당 버블티 만들기' 체험을 하는 날이다.
춘수당은 대만의 유명한 버블티 전문점 브랜드로, 타이중이 원조라고 한다. 버블티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는 따뚠점(大墩店)이 본점은 아니지만 대만의 타이중, 춘수당에서 직접 만들어보는 버블티. 이건 놓칠 수 없지.
가격은 인당 2만 4천 원으로 저렴하지 않다. 이 체험은 2인부터 구매가 가능해서 고민을 조금 했더랬다. 4만 원을 넘게 주고 둘이서 1시간 동안 차 만드는 체험을 해야 할까? 함께 체험할 한 사람을 찾아볼까? 고민만 하다 게을러서 결국 우리 둘이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짐을 싸서 숙소에 맡겨 놓고 9시쯤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정다운 주차장 뷰를 뒤로 하고 그동안 가지 않았던 번화한 뒷골목으로 나간다.
‘강원도’라는 이름의 한국 식당도 있다. 시우는 한국 식당만 보면 가서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한다. 아들아 우리나라 중국집도 모두 중국 사람이 하지는 않는단다.
타이중 국립미술관에서 가보고 두 번째로 가보는 춘수당이다.
내가 한국에서 생각한 것과 다르게 춘수당은 버블티만 파는 카페가 아니라 다양한 음료수를 팔고 식사도 가능한, 고급 음식점의 느낌이다. 춘수당 다뚠점에는 내부에 연못도 있고, 다양한 다기와 고풍스러운 소품들을 멋지게 진열해 놓았다. 화장실 세면대에는 물고기를 그린 수묵화가?
10분 전쯤 도착하니 아무도 없는 3층으로 안내해 준다. 오늘 체험을 신청한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다고 한다. 신청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두 명 이상은 신청해야 하나보다. 체험 재료들이 테이블 위에 이미 세팅이 되어있는 것을 보니 두근두근 설했다.
오늘의 선생님 등장. 시종일관 웃으며 친절했던 우리 버블티 선생님. 만들기 체험은 밀크티와 버블티 두 가지고 중국어로 진행된다. 중국어 괜찮냐고 물어보시기에 영어로 진행도 가능하냐고 했더니 중국어가 더 좋다고 하신다. 그렇죠, 모국어가 편하지요. 내가 시우에게 해석해 주면서 천천히 진행하기로 했다. 둘만 하는 체험이라서 시우의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사진도 찍어가며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선 춘수당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히 알려주신다. 차가 점점 인기가 없어지자 춘수당 창업자 리우한지에(劉漢介)는 1983년 그 당시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생각을 한다. 바로 얼음을 넣은 차가운 차를 만드는 것이었고 의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조경규 작가님은 차가운 차를 이렇게 표현했다.
“수천 년간 차를 뜨겁게 마셔온 중국인들에게 차가운 차를 마신다는 것은 뜨거운 콜라, 차가운 설렁탕만큼이나 생상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오무라이스잼잼 8권, 버블티편)
재료를 하나하나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밀크티를 만든다.
셰이커에 먼저 얼음을 가득 채우고 설탕을 넣고, 뜨거운 홍차를 섞는다. 그리고 플라스틱 셰이커를 단단히 막고 흔든다. 셰이커는 쇠로 되어있어서 딸각딸각 소리가 나야 제 맛인데. 그냥 흔들면 안 되고 돌고래가 날아가는 것처럼 흔들라는데… 돌고래가 어떻게 날아다니더라. 셰이커 잡는 법, 손가락 위치를 진지하게 알려주고 어떤 방향으로 어떤 포즈로 섞으라고까지 알려준다. 그리고 거품이 생길 때까지 팔이 빠져라 쉐이킹! 마지막으로 음료를 따르고 나중에 얼음을 섞는 것이 포인트. 그리고 자기가 만든 것을 시음해본다.
서로 자기 것이 맛있다고 투닥거리는 동안 선생님은 버블티를 위한 재료 세팅을 했다.
버블티 만드는 방법은 밀크티와 비슷한데 타피오카가 추가된다. 선생님이 춘수당 타피오카와 일반 타피오의 원재료, 알갱이를 보여주며 질문한다.
"어느 게 춘수당 타피오카일까요?"
"단단한 게 춘수당 타피오카 일 것 같은데요?"
손으로 직접 만져보며 비교해 본다. 단단한 게 좋다고 할 줄 알았지만 의외로 누르면 힘없이 퍽! 부서지는 것이 춘수당 타피오카였다. 끓이면 훨씬 더 쫄깃하고 맛있다는 내부자의 말씀.
셰이커에 얼음을 채우고 재료를 넣고 또 열심히 쉐이킹을 하면 시음의 시간이다. 같은 재료로 만들었지만 시우와 내가 만든 게 맛이 다르다. 하긴 시우는 백 선생님처럼 설탕을 아낌없이 넣었지. 또 서로 자기 것이 맛있다는 유치한 다툼에 선생님은 엄마 미소를 지으며 쳐다본다.
“밀크티 만드는 재료 세 가지가 뭐였지요?”
선생님이 퀴즈를 맞히면 선물을 준다고 한다. 선물이라는 말에 집중 모드로 돌변하는 아들.
아이가 앞에 있는 재료들을 보며 신중하게 대답한다. 딩동댕! 선물은 바로… 플라스틱 셰이커! 두 개나... 주시네?! 마냥 신나 하는 어린이와 '저걸 과연 한국에 가서 쓸 일이 있을까, 짐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먼저 드는 어른. 선물과 체험 수료증까지 받으니(사인펜으로 이름을 써넣은 수료증지만) 뭔가 대단한 것을 끝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집에 가서 이걸로 아빠 밀크티 만들어 줘야지.”
아들의 야무진 결심으로 한 시간 정도 되는 체험활동이 끝난다. 어른들끼리 왔으면 좀 더 빨리 끝났을 수도 있겠다. 자유롭게 놀다 가라며 선생님은 먼저 내려갔다. 그리고 3층에도 손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정리하고 가려는데 남아 있는 재료들을 보면서 아들의 장난꾸러기 표정을 짓는다. 이런 표정… 불안한데?
“엄마. 내가 맛있는 음료수 만들어 줄게.”
이것저것 남은 재료에, 삶지 않은 타피오카 재료까지 넣고 섞고, 흔들며 내가 ‘지옥의 음료수’라 명명한 뭔가를 만든다. 깔깔거리면서 나중에는 머리에 가루가 범벅이 될 정도다. 실제 버블티 만드는 시간보다 이 시간을 더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음료수 두 잔을 배부리게 마신 우아한 아침이었다.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춘수당 앞은 야외 테이블도 있고 예쁜 카페들이 들어서 있는 여유 있는, 분위기 있는 거리였다.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서 공을 차는 아빠와 아들을, 아이는 넋을 놓고 바라본다. 이제 그만 가자고 했더니 나를 바라보는 눈이 울망울망하다.
“엄마 나, 너~무 같이 놀고 싶어”
“그 정도로 같이 놀고 싶어? 그럼 네가 가서 같이 놀아도 되냐고 물어봐.”
그랬더니 쌩 달려가서 아이의 아빠에게 뭔가를 말하고 함께 공을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국어 해보라고 해도 안 하더니 이 정도의 강력한 동기가 있어야 하는 건가!
나중에 뭐라고 했냐고 물어봤더니
“워 커이 이치 완마?(같이 놀아도 돼요? 我可以一起玩吗?)”
라고 물어봤다고 했다. 오! 정확한 질문. 대답은 뭐라고 했는지 못 알아들었지만(!) 된다고 한 것 같아서 같이 놀았다고 한다. 아이 아빠 덕분에 나는 예쁜 광장의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며 기대도 안 했던 자유 시간을 갖는다. 아이는 긴 팔 옷까지 벗어던지고 한참을 놀더니 머리가 땀에 흠뻑 젖어서, 기분이 좋아져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온다.
우연히 큰 해바라기 그림을 보고 끌려서 들어간 건물은 ‘타이양빙(太阳饼 태양과자) 박물관’이었다. 펑리수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타이중에는 ‘타이양빙’이라는 과자가 있다. 2층은 옛 타이중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1층에는 과거에 썼음직한 태양빙 만드는 기계와 커다란 해바라기 그림이 있고, 몇몇 포토존과 태양빙을 파는 기념품 샵이 있다. 일부러 찾아갈 정도로 대단하진 않지만 지나가는 길이라면 한번 들려봄직한 아담한 박물관이었다.
이제 숙소에 가서 짐을 가지고 기차를 타고 가면 되는데… 쿠궁! 타이베이행 기차 좌석이 또 매진이다.
한번 겪었으면 미리 예약해 놓을 법도 하건만. 가는 시간을 서두르기가 싫어서 미적거리며 '낮 시간이라 괜찮겠지' 혼자 생각했는데 일찌감치 매진되었다고 한다. 여유 있게 오전시간을 즐기다가 날벼락이다. 타이중에 올 때 이미 입석을 한번 타봤던 시우는 절망 모드가 된다.
“시우야. 표 미리 예약해 뒀으면 오늘 축구도 못했을 거야. 그렇지?”
이런 말로 아이를 달랬지만 나도 속상하다. 이번에는 정말 느긋하게 기차 도시락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아.. 내 도시락.
역사에서 도시락을 먹고 기차를 타려고 했는데, 시우가 힐끔 도시락을 보더니 먹고 싶지 않다고 한다. 서서 갈 생각에 기분이… 많이 안 좋은 거니? 그… 그래. 눈치 보면서 조금 먹다가 기차를 탄다. 기차 칸의 번호를 확인 또 확인. 이제는 익숙하게 바닥에 털썩 앉는 아들이다.
“시우 앉아서 가네?”
나름 농담을 날렸건만
“… 진짜 자리에 앉고 싶다고. 자리가 이렇게 중요한 건지 몰랐어.”
새침한 녀석.
나는 일기를 쓰고 시우는 그림을 그리며 둘이 또 말없이 이동한다. 이번에도 1시간 정도만 서서 가면 40분은 앉아서 갈 수 있었다. 큰 사고 없이 자리에 앉았다가 무사히 타이베이 역에 도착했다.
다시 타이베이 역. 한번 와봤다고 괜히 친숙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