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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국어인쌤 Sep 18. 2023

타이베이 숙소 3차 멘붕 사건

타이베이, day 12(2)


 타이베이 숙소에서 3차 맨붕이 온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다.


 타이베이에서는 이틀 숙박 예정이다. 타이중에서 와서 늦게 체크인하고, 둘째 날은 펑리수 만들러 일찍 나가야 하고, 마지막 날은 아침 일찍 체크 아웃을 할 예정이라, 교통이 좋은 타이베이역 근처 저렴이 호텔로 정했다. 한없이 복잡한 타이베이 역에서 Z2 출구로 나가면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NYS 로프트 호텔이다. 

 이 호텔에는 이층 침대가 있는 공용 욕실을 쓰는 호스텔 형태의 룸, 개인 화장실이 있는 룸, 창문이 있는 룸, 창문이 없는 룸의 다양한 형태의 룸이 있다. 한국에서 폭풍 검색으로 나는 창문이 있으면서 화장실이 있는 비교적 넓은 방을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었다. 이제 체크인하고 타이베이 시내 투어를 해보려고 했는데. 늘 그렇듯 모든 일이 내 계획과 같지 않다. 


 체크인하는데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공용 화장실은 복도 끝에 있고요. 어쩌고 저쩌고…” 

 “네? 저는 욕실이 있는 방을 예약했는데요?” 

 “그 방은 욕실이 없어요.” 

 “네?” 

 1차 멘붕. 

 

 “제가 숙박 바우처를 가져왔는데 이것 좀 보시겠어요?” 

 창문 있음, 욕실 있음이 쓰여 있는 바우처를 보여주려 하는데 한글이다. 에잇, 영어로 뽑아왔어야지. 직원이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다. 2차 멘붕. 


 “그럼, 지금 욕실이 있는 방으로 바꿀 수 있나요?” 

 바꿀 수는 있는데 그 방은 창문이 없단다. 

 “아니 저는 둘 다 되는 방을 예약했는데요?” 

 직원님 말씀하시길. 

 “저희 숙소에는 그런 룸 자체가 없어요. 창문이 있던지, 아니면 욕실이 있던지 둘 중에 하나예요.” 

 뭐… 뭐라고요? 3차. KO.


 나만 빤히 보고 있는 직원과 아들.  

 그래도 화장실은 있어야지. 어쩔 수 없이 욕실이 있는 방을 선택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창문만 있다면 시설 자체는 깔끔하고 나쁘지 않다. 매우 좁은 공간에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다. 냉장고, 드라이기, 텔레비전… 욕실 위가 뚫려 있어서 환기가 안되면 습하다는 후기를 봐서 ‘우리는 창문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하지? 나를 갑자기 잡아 끄는 아들. 

 “엄마 나 도시락 먹고 싶어.” 

 응? 아… 아까 그 도시락. 

 “다 식었을 텐데. 맛이 없을 것 같아. 식당 가서 제대로 먹자.” 

 “엄마가 아까 숙소 가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된다며? 지금 그거 먹을래.” 


 정신을 차리고 넓은 테이블과 소파, 전자레인지, 냉장고가 있는 공용 공간으로 간다.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데워주고, 여행을 이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지만 참을 수가 없어 트립닷컴 고객 센터에 폭풍 항의 톡을 보낸다. 다행히도 답변이 바로 온다. 

 “그런 방이 없다는데요?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시스템 상에는 그런 방이 있는 걸로 나옵니다.” 

 “(욱!) 호텔에서 없다고 했다고요!” 

 확인해 보겠다고 하더니 한참 있다가 답이 왔다. 죄송하다고. 

 다른 호텔로 바꿔줄 수는 없으니 창문이 있는 방을 원하면 거기로 바꿔주고, 그리고 일부 금액 반환을 해주겠다고 한다. 이런.

 

 이런 폭풍 속에서 아들이 웃으면서 헛소리를 막 한다. 

 여기 호텔에 막 들어왔을 때의 일이다. 어떤 한국인 여행객이 다가오며 대만 달러가 부족해서 그러는데 내 은행계좌로 한국 돈 4500원을 바로 넣어줄 테니 대만 달러 100위엔을 현금으로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이 호텔은 카드가 안 된다고 한다. 호텔이 카드가 안되기도 하나보다. 그렇게 바꿔 줬는데 갑자기 그 이야기를 다 시 꺼낸다. 

 “엄마 사기당한 거 같아. 쯧쯧. 그렇게 은행 계좌를 알려주면 안 돼. 

 그 사람이 엄마를 해킹할 수도 있어. 그리고 그 사람 인상이 별로 안 좋더라.”(혹시라도 보신다면 죄송) 

 도시락을 먹으면서 끊임없이 조잘조잘 거린다. 


 머리가 복잡하고 속상한 와중에도, 엄마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으니 웃게 해 주려고,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게 보여서 대견하면서도 고맙고 미안했다. 그냥 돈 좀 더 주고 좋은 호텔 예약할걸. 아들의 헛소리에 대꾸하다가 어느 순간 나도 아이를 따라서 웃고 있었다. 

 도시락에 이어 과일 푸딩까지 싹싹 비우더니 너무 맛있었다고 한다. 공감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은 아들놈인 줄 알았는데, 너 제법 괜찮은 여행 친구였구나. 좀 감동의 순간이다. 

 

 그래, 이런 일이 우리의 여행을 망치게 둘 수는 없지.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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