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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라의 어른이 Aug 29. 2021

상수의 안락함, 변수가 주는 긴장감

기술개발은'변수 대비상수의 비율을 점차 높여나가는 것'아닐까?




 1959년 추석 연휴 중에 발생된 초대형 태풍 '사라'는 통계적으로도 가장 대규모의 태풍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있다.   이후 한반도에 여러 차례 초대형 태풍이 찾아왔고 많은 피해를 남겼지만 이보다 많은 인명피해를 경험한 기록은 없다. 2002년과 2003년 각각 발생되어 큰 피해를 준 '루사'나 '매미'도 크기 측면에서는 유사하거나 약간 작은 규모이지만 인명피해는 사라 때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태풍 사라 때는 현재와 같은 태풍예보 및 경보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시기였으며, 태풍을 대비한 시설물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본에서도 '미야코 섬 태풍'으로 불리는 이 태풍은 인명피해가 한국의 1/4 수준이었지만, 이틀 뒤에 발생한 태풍 '베라'가 역대 최대 태풍으로 기록된 후 적극적으로 태풍에 대한 대응체계를 마련 하계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일본은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하여 해마다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주는 태풍에 대한 대응능력을 키워오면서 이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반면에 한국은 2000년대에 경험한 루사와 매미 이후에 본격적인 대응체계를 확립하여, 이후의 대형 태풍에 대한 피해를 줄여나가고 있다.  자연재해로 여긴 태풍에 대해 불확실한 ‘변수’로 보고 그때그때 대응했던 방식에서, 경험적으로 확립된 현상을 '상수'로 정의하여 준비하게 된 결과이다. 


 청소년 시절 기본 수학을 막 접할 시기에 상수와 변수라는 새로운  단어가 주는 막막했던 기억이 새롭다.  대부분의 학문 용어가 뜻을 가지고 있기에 한자(漢字)어로 표기된 지라 음역(譯)으로만 표현된 이해가 쉽지 않아 그다지 영특? 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로서는 이 학문에 대한 편견이 오래 지속되었다.   고정된 숫자와 변화하는 숫자는 이제 교실에서 사용되는 제한된 영역에서의 용어에서 확장되어 우리 일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기술을 개발하고 그 결과물을 통해 목적하는 공정을 구성할 때 엔지니어들은 대부분의 공정 인자들을 '상수'로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다.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늘 상수로 존재하는 상황만 된다면 우리가 매일 고민하는 대부분의 일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해당 분야의 기술개발의 발전이라는 것이 '변수에서 상수의 비율을 점차 높여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계로 표현되는 대부분의 자연현상과 산업공정은  어쩔 수 없이 변수의 존재감이 항상 더 크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변수는 말 그대로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다양한 현상을 동반한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특정 변수를 완벽하진 않지만 '잠재적 상수 처리'하여 끝없이 몰려오는 또 다른 변수를 제어하는데 일단 몰입하는 경우도 있다.  


  상수와 변수의 개념은 다른 영역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기존의 질서로 자리 잡은 공정과 새롭게 개발되어 제도권에 진입하려는 공정 사이에는 내포하는 각 제어요소의 상수와 변수 사이의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이미 많은 세월 동안 다양한 운용과 경험으로 예측 가능하고 제어 가능한 범위 내로 많은 변수들을 상수로 편입시켜왔던 기존 공정 대비, 도전 공정은 많은 변수중 상수로 전환시키기에는 운용이력이 짧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까스로 상수로 정의하였던 것조차, 어느새 변수로 전환되어 문제의 복잡함을 더하고, 이를 통해 다시 기존 상수의 재점검(?)까지 추진해야 하는 수고까지 예상하면 더욱 신중함을 요구한다.  더하여 새로운 공정을 바라보는 시각조차도 상수로 고정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공정은 늘 변수 투성이로 여겨지기 때문에 상수 전환을 위해서는 까다로운 ‘증명’을 요구받는다.   현재가치뿐 아니라 미래가치까지 모두 가변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넘어서는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장애일 것이다.  심지어 기존 시스템에서는 발견되는 문제조차 ‘가끔 경험되는 실수’로  너그럽게? 상수로 남는 것이 허락되지만, 도전하는 시스템은 혹독한 판정을 받아 좀처럼 변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가 된다.  물론 무분별하고 관대하게 도전 기술을 받아들임으로 초래할 대가가 적지 않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기존 질서에서 확보한 '상수'에 대해 도전하는 새로운 기술이 주장하는 바를 끊임없이 재평가하여 새로운 기술이 제시하는 관점을 무시하지 않을 때 뜻하지 않게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을 외면할 가능성이 있지않을까.


 반대의 경우, 턱없이 부족한 초기단계의 아이디어에 대해 많은 변수를 가정과 전제라는 범주화로 묶어서 경쟁하는 기술과 비교하려는 시도는 유의해야 한다.  변수 자체는 제대로 정의되는 것조차 어려운 특성을 갖기 때문에 때로는 변수 간의 상호작용(interaction)도 발생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가정 속에 묻어두기에는 위험요소가 많다. 가끔은 도전적이라는 용어가 갖는 적극성, 진취적인 이미지에 경도되어 굳이 소모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많은 경우를 경계한다. 

 여전히 변수투성이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수로 온전히 전환되는 일은 이상국가(ideal state)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좀 더 이해해 나가면서 얻는 경험과 지혜를 통해 상수의 개수를 늘려나가는 일은 변수에 대한 까닭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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