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포 밖의 것을 차별화라 부르는 편견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내 신장은 동년배의 평균적인 수준보다는 작은 편에 속한다. 성장기에는 학교 내에서만 조금 작다고 느꼈으나, 버스를 타거나 거리를 다닐 때 당시 대부분의 성인 남성의 평균치는 내 수준이었기에 그리 작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십여 년 전부터 서울의 붐비는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보면 온통 사방으로 밀집된 주변인들 사이에서 시선이 막혀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중고등학생은 물론 지금의 성인들인 3,40대의 성인들도 대부분 나와 한 뼘은 차이가 나기에 맘 놓고 숨쉬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키작남이라는 인식이 명료해졌지만 다행인 것은 더 이상 내 삶에 키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시기를 살고 있어 불편함이 없다. 기대하기로는 조속히 남북통일로 북한의 낮은 평균치와 합산되면 나도 우리나라 성인 평균치 수준으로 상승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산다.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는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한국사회에서 내 신체는 정규 분포의 중심에서 조금 부족한 수준이라 옷이나 신발, 그리고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대부분의 공산품을 어렵지 않게 선택할 수 있어서 불편하지 않다. 반면에 정규분포를 훨씬 벗어난 소수자들에게는 여간 번거로운 수고를 들여야 하는 불편 사회이다. 수학적으로 평균(산술 평균)은 극단적인 값에 민감하며 평균을 중심으로 떨어진 값인 편차의 합이 0이 되는 것을 말한다. 표본(sample)을 가지고 추정해보면 전체 모집단과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에 설문조사나 품질관리 등에 효율적으로 활용된다. 모든 값을 동등하게 적용함으로써 생기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 산술평균 외에 가중, 조화, 절사, 기하 평균 등의 다양한 개선된 평균값도 활용되곤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품이나 제도는 다수의 편의를 위해 설계되고 시행되는 경우가 많아, 이 분포 내에 들어온 개인은 포함된 것에 대한 안도감과 소속감을 가지곤 한다.
다른 관점에서 정규분포의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난 것에 대해 불편해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크게 선호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너무 잘생긴/예쁜 사람, 매우 똑똑한 사람, 키가 훤칠하게 큰 사람, 운동능력이 뛰어난 사람, 말 잘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가치는 평균에서 벗어난 비정상치(outlier)이다. 통계적으로는 평균에서 멀리 떨어진 극단에 해당되는데, 이때는 오히려 소수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정규분포의 견고한 대칭형 도형 안에 안주하는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어떤 영역에서는 분포 밖에서 고립된 자기를 원하는 이중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산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정규분포의 오른쪽 극단을 선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의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왼쪽으로 수렴되는 가치의 경우는 정규분포 안 쪽으로 향하는 갈망을 가진다. 위의 예에 대해 적용해보면, 예뻐지고 싶어서 화장을 하거나 성형을 하는, 스마트해 보이고 싶어서 가방끈을 늘리는 일, 신발 밑창에 키높이 패드를 넣거나 높은 굽을 장착한 구두를 선택하는 등이다.
로또 복권을 사는 사람들에게 왜 나는 복권을 사진 않기로 했는지 설명하는 나만의 논리가 있다. 복권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을 노리는 그 심정은 이해되지만 당첨될 확률은 엄청나게 낮고, 통계적으로는 분포의 오른쪽 극단에 속한 경우이다. 유사하게 마른하늘을 지나다 벼락을 맞아 횡사할 확률도 그와 버금간다면 이것은 분포의 왼쪽 극단에 있는 경우일 것이다. 내가 소망하는 확률이나 내가 절대로 피하고 싶은 확률이 유사하다면 어느 한쪽을 기대한다는 것은 또 다른 한쪽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과 같기 때문에 나는 모두를 거절한다. 이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양극단의 내몬 평가값에 대한 기준이다. 꼭 오른쪽이 좋을 것이라는 선호를 뒤집을 수는 없을까? 오래된 관념, 관행, 관습, 관성으로 표현된 고정된 관념 축은 여러 세기 아니 수 천년 인류 역사에서 상식으로 자리 잡은 편견의 산물이다. ‘잘생기고 예쁜’, ‘똑똑함’, ‘말 잘하는’의 기준이 과연 어느 수준이고 또 그것은 절대적으로 옳은가? 이른바 시대와 문화 그리고 지역에 상관없는 불변의 진리가 아닌 바에야 지극히 가변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더욱이 우리는 정규 분포의 안에서나 혹은 바깥 값에서도 ‘더 큰 값’에 집착하느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동안 정규분포 안에 포함되고 싶어 하는 경향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생존본능의 과정이었지만, 분포 밖으로 벗어난 것을 이제는 차별화라 부르고 그 다른 것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지난 수천 년 이어온 동일화, 평균화의 본능이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작동될 때 생존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는 다수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기대에 맞추어 사는 삶을 지양하는 수준을 넘어 다름에 대한 존중으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 단순히 사회가 요구한다고 믿고 있는 허구적 평균값을 맞추기 위해 과거의 생존공식을 오늘의 타임라인에 그대로 복사하고 붙여 넣기 하는 성실한 노력을 지속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기대한다. 누군가가 이야기 한대로 경력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고. '경험이 풍부하거나, 편견이 풍부하거나'. 남과 다르다는 것이, 평균에서 벗어나는 낯섦을 선택하는 모습이 익숙하고 평안하게 느껴져야 할 때다. 그래서 오늘은 나보다 훨씬 키 크고, 잘 생기고, 더 좋은 스펙을 가졌다고 알려진 사람이 옆에 지나갈 때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당신은... 많이 다른 사람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