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저항능력의 유비
한자 ’ 내(耐)’는 본래 ‘견디다’, ‘저항하다’, ‘버티다’라는 뜻을 가지며, 물리적·화학적·환경적 여건에 대한 저항력을 강조한다. 이 한자는 특정 상황에서 소재, 사람, 또는 시스템이 외부의 압력이나 영향을 이겨내는 능력을 나타내며, 영어로는 'resist'로 표현되어 레지스탕스, 전기공학에서 resistance 같은 의미로 잘 알려진 용어이다. 특히 재료는 그 쓰임새가 대체로 내-외부 환경에 견뎌내는 특성을 가져야 할 필수요소이기에 대부분 강재의 용도를 이 방식으로 특정하고 있다. ’ 내(耐)’가 포함된 단어들은 '저항’이라는 공통된 개념을 공유하면서, 대상(열, 부식, 진동 등)에 따라 다시 세분화시켜 응용범위를 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각각의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 소재의 합금 조성, 제조 공정(열처리등)등을 통해 사용 환경에 대응하는 특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대항하여야 할 상황을 겨냥한 소재나 구조물의 성능을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 현실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1. 내열(耐熱): 열(고온)에 견디는 성질.
2. 내식(耐食): 부식(화학적 반응)에 견디는 성질.
3. 내진(耐震): 지진(진동)에 견디는 성질.
4. 내구(耐久): 오랜 사용이나 마모에 견디는 성질.
5. 내화(耐火): 불(화염)에 견디는 성질.
6. 내수(耐水): 물(침수나 습기)에 견디는 성질.
7. 내한(耐寒): 저온에 견디는 성질.
8. 내마모(耐磨耗): 마찰이나 마모에 견디는 성질.
9. 내압(耐壓): 압력에 견디는 성질.
최근 잦은 지진현상으로 인해 익숙해진 '내진강판'은 '지진에 견디는 능력'으로, 지진의 동적 하중을 흡수하고 분산하여 구조물이 붕괴되지 않도록 재료의 연성과 인성을 통해 충격을 견디도록 설계된다. 연성(ductility)은 유연성이라고 설명되며, 인성(toughness)은 재료가 파손될 때까지 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이다. 일상에서 자주 언급되는 회복 탄성력(resilience)은 재료가 스프링같이 복원되는 능력의 정도를 의미한다. 이 특성이 크다는 것은 재료입장에서 인성한계 내에서 견디며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된다.
이외에 부식환경에서도 견뎌내는 내식강판은 자기 스스로 보호피막을 형성케 하는 합금조성변화를 시도하거나 표면에 별도의 코팅제를 피복시켜서 구현한다. 대기에 노출되어도 별도의 합금처리나 코팅 없이도 어느 정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처리한 내후성 강재도 또 다른 예이다. 여기서 기후를 나타내는 후(候)는 일본식 용어인데 마땅한 한글용어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업계에서는 그렇게 통용하고 있다. 내한(寒) 강판도 극지와 같은 지역에서 사용되어야 하는 용도와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다. 또한 내마모 강판은 일반적인 강하다는 철강에 대한 인식을 넘어 더 거친 작업환경에서 소모되는 속도를 늦추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제조된 강재이다.
얼마 전부터 서울을 방문할 때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고 있다. 중앙청 인근에 위치한 박물관시절에 고등학생신분으로 방문한 후 몇십 년이 지나서야 시간여유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방문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해설사의 꼼꼼한 설명으로 학창 시절에 개념 없는 용어에만 익숙했지만 전체 맥락 없이 배웠던 지루했던 역사가 이제야 조금씩 정리되고 있다. 역사와 유물을 보는 관점이 다양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조상들이 살아온 삶은 척박함 그 자체였다. 현저히 낮은 노동효율성을 뒷 받침하는 농기구와 여러 도구들을(그 당시에는 혁신이었겠지만..), 그 시대의 장인들이 힘들게 제조하면서도 여전히 넉넉한 식량을 공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상황을 그려보았다. 인간의 대처방식이 상수보다 변수가 현저했던 자연재해에 노출되어 있으나 안정된 주거환경은 턱없이 부족하여 사 계절이 분명한 이 땅의 삶을 견뎌내기에는 너무도 나약한 존재였다. 물론 지배층과 부자들은 어느 정도 이 부분에서 더 나은 생활이 가능했겠지만, 현재의 관점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 과정 중에도 인간의 삶에 관련된 다양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반응했던 노력의 흔적은 두툼한 옷, 짐승가죽을 이용한 겉옷, 흙과 짚으로 혼합된 벽과 지붕 쌓기, 많은 노동과 재료를 이용한 석재/목재/금속제 농기구와 무기 등의 만들기였다. 비록 금속강재를 특정해서 설명된 '내(耐)'에 관련된 금속의 다양한 특성은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많이 연결되어 있다. 각 개인이나 국가가 역사 속에서 겪어내는 다양한 극한 상황과 내부/외부적 한계상황에서 존재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설명할 때 '내(耐)'를 접두어로 사용하는 용어들이 인용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열, 추위(寒) 기후, 부식, 진동, 반복적인 마찰은 각각 기계적, 화학적, 환경적 위기 상황에서 대응하며, 동시에 정서적 유연성과 감내하면서 새로운 해결책(문제해결능력)을 찾아내는 인간의 대응과정과 닮았다.
재료와는 다소간 차이가 있지만 인간의 삶에서는 단기적이고 강렬한 위기에 대한 빠른 적응과 회복에 중점을 두거나, 부정적 환경 속에서의 자신의 핵심 가치와 정체성 유지, 그리고 외부의 악의적인 비판과 사회적 압력에 침식되지 않는 보호막을 가지려는 노력을 강조한다. 그 보호막의 대표적인 예가 정서적 회복력(Resilience)이나 마음 챙김(신앙, 명상)이나 긍정적인 사고방식등이다. 그래서 재료의 여러 가지 특성을 정의할 때 피로(fatigue) 특성이나 Creep 특성, 항복강도(Yield Strengh)와 같은 용어가 사람의 느낌을 담고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