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몽상, 그리고 데카당스
예술가에겐 뮤즈가 있어, 영감을 받고는 하지.
하지만 나에게는 뮤즈가 없어 그 점이 항상 아쉽고는 해. 그래서 누군가의 뮤즈였던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동경하기도 하고 집요하게 파고들기도 하지.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집착인가.
뮤즈, 라는 말은 나를 설레게 만든다. 누군가의 뮤즈가 된다는 것은 인생에서 참으로 멋진 일이다. 특히, 예술가의 뮤즈, 라는 타이틀은 아무나 달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 특별함이 더욱 가치 있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나도 누군가의 뮤즈가 되고 싶었나.
누군가의 뮤즈로서 페르소나로서 살아가는 것과 뮤즈와 페르소나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 둘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매력적인 삶일까. 두 가지 모두 평범한 삶은 아니야, 그런 삶에 동경을 하고 무한히 끌리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런 예술가의 삶에 빠져들고 싶다. 예술가의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미치광이로 보이거나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예술가 삶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고통받으며 끝없는 창작을 해보고 싶다. 그런 무리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다.
이것은 쉽지 않아, 나는 늘 갈망한다.
그대, 뮤즈여,
황홀한 이름이여 존재여.
평범한 일상을 달콤한 사탕의 향기로움과 달짝지근한 포근함으로 둘러싸인 봄의 나른한 정원으로 바꾸고, 싱그러운 바람의 향기로 둘러싸인 여름의 화원으로 만드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
그대, 뮤즈여,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누군가의 가슴에 뮤즈라는 이름으로 새겨지는가.
날카로운 유리조각처럼 깊이 박혀 영원히 기억되는 불멸의 존재. 그 형태의 끝이 불행할수록 더 영원하고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가련한 운명을 가지고 있구나.
그대, 뮤즈여,
그 끝은 항상 고통, 불행해서 더 매혹적이다.
내 오랜 소망 중에 하나가 있어, 누구에게도 제대로 얘기하지 않았고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그런 꿈이다. 그 꿈을 꾸게 된 계기가 있어, 그 작은 계기 하나가 내 인생 오랜 시간 큰 영향을 주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게 될 줄이야.
그녀, 팩토리걸.
'우울과 몽상, 그리고 데카당스'에 실린 글 중 일부분만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