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짬짜면의 시대
짬짜면과 반반치킨이 가능한 시대에, 더 이상 짬뽕과 짜장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당신과 나 또한 한 가지 모습만 가질 필요없다. 이미 수백 개의 다양한 모습들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데 그 다채로운 가능성을 닫아두기엔 내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하나의 모습으로 자신을 국한하지 말고 환경과 상황, 그리고 역할을 기가막히게 소화해줄 '또 다른 나'들을 찾아보자.
당신은 변화를 꿈꾸는 열망과 자신을 되돌아볼 용기만 있으면 된다.
# 내 안의 또 다른 나
페르소나(persona), 개인(person), 성격(personality)는 모두 동일한 어원을 갖고 있다. 본래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을 뜻했고, 분석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페르소나를 '공적으로 보이는 가면'으로 정립하며 심리학에서 주로 다뤄졌다. 인문학, 영화, 마케팅과 서비스 등 각각의 영역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결국 페르소나는 '외부에 내보이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라고 하는 이유는 '나'라는 실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1. 외부라는 사회의 요구(역할)와 환경(상황), 그리고
2. 개인의 사회적 열망과 의도로 만들어지는 페르소나는 특별한 사회적 목적을 위해 형성된 인물이며 외부 세계와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한다. 즉, 나를 대변하는 사회적 대변인으로 사회적 대상과 관계를 맺는 동시에 '나'라는 주체를 보호한다.
# 융의 영혼의 지도
페르소나를 더 깊게 논의하기 전에 칼 융의 '영혼의 지도 Map of Soul'에서 페르소나가 속한 의식과 무의식 세계를 살펴보자. 먼저, 우리는 쉽게 자아와 자기를 햇갈려한다.
의식세계에 위치한 자아(Ego)는 내가 의식하는 나 자신이다. 이에 비해, 자아(E)가 태어나는 궁극적인 실재이자 무의식세계에 잠재되어 있어 의식하기 어려운 내 자신의 본성이 바로 자기(Self)다. 자아(E)가 우선적으로 페르소나와 그림자,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포용한 후에야 자기(S)를 찾아갈 수 있다. 자아(E)는 의식적으로 탐색하고 노력해서 자기(S)를 발견(= 자기발견 Self discovery)하고, 그 모습이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대로를 수용(=자기수용 Self Acceptance)하여, 자기(S)의 뜻에 따른 삶을 실현(=자기 실현 Self Realization)해야한다. 이렇게 자아가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개인화(Individualization)이라 한다.
자아(E)의 영역에 존재하는 페르소나는 타인에게 보이는 자아(E)의 외적 심상으로 자아의식과 같은 결을 공유한다. 결을 공유할 뿐 자아(E)와 페르소나는 다르다. 페르소나를 자아(E)와 동일시할 경우 자신이 맡은 사회적 역할을 곧 '나 자신'이라고 받아들여 오류가 발생한다. 이럴때 1장에서 말한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자아(E)의 반대편에 위치한 그림자(Shadow)는 자아가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어두운 면이다. 억압된 본능과 약점, 비도덕적 특질과 감정이 여기에 속한다. 그림자의 크기와 강도는 성장 환경과 연관있기에 개인마다 표출하는 정도가 모두 다르다. 그림자는 쉽게 개인을 망각시키고 손상시키는데, 그림자를 향한 자아(E)의 자기방어로 이를 지각하는건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의 단점보다 타인의 단점을 더 잘 파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본인보다 친한 지인이 당신의 그림자에 대해 더 잘 알 수도있다.
그림자보다 더 원초적이고 선천적인 집단무의식 안에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인격이 존재한다.
아니마(Anima)는 남성 마음에 숨은 모든 여성적인 심리적 경향들이 인격화된 것으로 상상, 관계, 수용에 초점을 두고, 아니무스(Animus)는 여성 마음 속의 남성적인 심리적 경향들의 인격화로 의식, 행동, 권위에 집중한다. 아니마를 잘 포용한 남성은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아니마와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억압할 경우에는 민감하고 무기력한 감정과 우울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아니무스를 잘 포용한 여성은 활력이 넘치고 성취에 대한 열망이 강하지만, 아니무스를 잘 못 받아들인 여성은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심리적 성향을 갖게 된다.
영혼의 지도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여정은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를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나의 사회적 자아의 측면인 페르소나를 알고, 어두운 마음인 그림자를 직시하며, 내 안의 양성성을 포용해야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다.
그 시작으로, 페르소나를 만나러 가보자.
# 이름이 3개인 고양이
유튜브와 인스타에는 가명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데, 가명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의식적으로 형성한 페르소나를 대변하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한 개 혹은 여러 개의 가명을 갖고 있을 수 있지만 이를 통해 보여지는 모습이 그 사람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 왜냐면 가명이 속한 사회적 환경과 역할에 가장 부합하는 특성들로 페르소나가 구성됐기 때문에 개인의 일부이긴 하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T.S 엘리엇이 지은 시 'The Naming of Cats'가 있다.
시에서는 고양이 이름이 세 개는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평소에 부르는 이름과 오직 고양이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이름, 그리고 고양이 자신만 알고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이름이다. 여기서 앞에 2개 이름은 모두 바깥에 보여지는 페르소나를 뜻하고 마지막 이름은 자아(E)를 뜻한다. 그리고 고양이가 가끔 자기 이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깊은 명상에 빠진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만 아는 이름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과정이다. 고양이 이름과 같이 우리도 '대중적으로 보여지는 나'와 '특별한 환경과 대상에게 보여지는 또 다른 나'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만 아는 나의 모습을 온전히 보호하고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
# 안녕, 페르소나
우리는 이미 여러 페르소나를 주어진 환경마다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페르소나가 사회적 환경과 역할에 맞게 올바르게 발달되었는지는 확인해야되지만, 유연하고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위해 페르소나는 필수다. 올바른 페르소나는 활동 영역이 확실히 구별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납득가능한 성격의 특질을 갖추고 있다. 올바르게 발달하지 못한 페르소나는 활동 영역을 구별하지 않고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표출되어 관계적 충돌을 일으키며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다. 페르소나를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페르소나와 함께 내가 성장할 수 있다. 올바른 페르소나를 형성하기 위해, 내가 속한 사회적 환경과 역할을 파악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성격 특질을 모아보자.
우리는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쉽게 직업, 나이, ~의 엄마 혹은 아빠 혹은 다니는 회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사회가 부여한 일종의 라벨로 페르소나를 표상할뿐 고유한 개인의 특성이나 정체성이 되지 못한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라는 라벨이, 법적으로 변호한다면 '변호사'라는 라벨이 붙여지듯 타인 혹은 사회에 의해 붙여진 라벨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거나 없어질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라벨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데, 이럴 경우 하나의 페르소나에 유독 집착하여 오히려 자기 자신을 페르소나에 몰입시킨다. 흔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직장인들이 이런 페르소나 오류에 쉽게 빠지는데, 부모라는 페르소나를 온전한 자신과 분리하지 못해 정체성 혼란과 감정적 기복을 심하게 겪거나, 직장인이 퇴사 혹은 퇴직하며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허탈감과 우울감을 겪는다. 하지만 페르소나가 언제든지 환경과 역할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오히려 외부와 대신 대면하여 '나다움'이라는 정체성을 지켜주고 나의 숨겨진 다채로움을 보여줄 것이다.
'남들이 나를 낮게 얘기하면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냐고 물어봅니다. 그런데 제겐 개그우먼 박나래, 여자 박나래, 디제잉을 하는 박나래, 술 취한 박나래가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개그맨으로서 이 무대에서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왜냐면, 괜찮아! 제겐 술 먹는 박나래 혹은 디제잉하는 박나래가 있으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그 실패가 인생의 실패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은 인생에 있어서 여러분 한 사람이 아닌 거예요. 그걸 인지하고 있으면 하나가 실패하더라도 괜찮아요. 또 다른 내가 되면 되니까'
-박나래 <2019 원더우먼 페스티벌 강연 중>
페르소나는 나의 일부이자 내가 사랑하는 모습들이다.
단순히 재미나 자기 계발을 위해 페르소나가 필요한 게 아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그리고 내 안의 숨겨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사용하여 좀 더 행복한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보여질 당신의 다채로운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좋은 소식이 있다.
그 좋은 소식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사랑을 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걸 이룰 수 있는지. 또 당신이 얼마나 잠재력이 넘치는 사람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 Anne Frank 안네 프랑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