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정 Aug 12. 2021

수다 타임과 드라마 타임을 줄이면 몸짱이 될 수 있다

엄마의 운동 vol.2

익숙한 동네길에서 새로 오픈한 옷가게와 마주쳤다. 예쁜 옷으로 가득했고, 오픈세일이라는 명분으로 가격까지 착했다. 간만에 여유있는 날이어서 양껏 실컷 둘러본 다음, 마음에 드는 티셔츠 하나와 블라우스 하나를 골라 계산했다. 새 옷과 함께 귀가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그렇듯이 설레고 충만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옷이 내게 잘 어울리는지 내 몸에 맞춰봤다. 옷가게에서 입어보지 못하고 그냥 가져온 터라 예쁘기는 한데 원하던 핏이 나올까 걱정이 좀 되던 터였다. 옷가게에서 입어보지 못한 이유는 혹시나 사이즈가 안 맞을까 봐 걱정돼서가 아니라 사이즈는 맞는데 내게 안 어울릴까 봐 걱정돼서였다.

영 모양새가 별볼일 없는데 그냥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입어보기까지 했는데 안 사겠다고 도로 제자리에 되돌려놓을 때 민망함의 값을 뻔히 알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집에 와서 입어본 뒤 안 어울리면 교환을 하러 가는 쪽이 마음 편했다. 살이 찌고 나서 옷을 살 때마다 나는 그 부분에 가장 위축됐던 것 같다. 가격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 바로 핏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내 몸과 맞춰본 옷의 핏은 다행히 괜찮았다. 새로 산 티셔츠와 블라우스 모두 두루뭉술한 팔과 허리와 엉덩이 라인을 적당히 잘 감추어주는 은혜로운 옷들이었다.

매우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옷장 문을 열어 티셔츠와 블라우스를 고이 모셨다. 그런데 아뿔싸! 이미 옷장 안에는 그것들과 매우 비슷한 티셔츠와 블라우스가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핏은 물론 프린트까지도 비슷했고, 심지어 블라우스는 택도 떼지 않은 채로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런 옷만 사고 있었다. 두루뭉술한 나의 팔과 허리와 엉덩이 라인을 적당히 잘 감추어주는 그런 은혜로운 옷들 말이다. 내 옷장은 이미 그런 옷들로 가득했다.

실소가 터져나왔다. 굴곡이 사라져버린 내 몸매를 그제야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는 살찐 내 몸을 잘 가릴 수 있는 옷이 아니라, 진짜 예쁜 옷을 사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당연히 살을 빼야 했다. 나의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큰 애로사항은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놀이학교에 다니는 외동아들을 양육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프리랜서 북에디터로서 어린이책과 육아서적을 기획하고 편집하느라 밤잠을 만족스럽게 자는 날이 없을 만큼 하루하루 참 많이 열렬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재고 따져봐도 도무지 운동할 시간이 마련되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일단 헬스장부터 등록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등록했지만 어떻게든 되질 않았다. 운동할 시간을 어떻게 마련할지 설계하다가 나는 TV를 보는 시간과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줄여 운동을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구체적으로는 TV를 보더라도 헬스장에 가서 런닝머신이나 사이클을 타면서 보는 게 목표였고, 사람들과의 만남은 친목 모임, 특히나 주변 엄마들과 만나 밥을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는 것을 '일단 멈춤'하는 것이 목표였다.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이 지금도 운동을 할까 말까 갈등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이 '시간'이 아닐 듯싶다. 하지만 단언컨대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핑계다. 시간은 만들면 반드시 마련된다. 내가 경험해보니 그랬다.

일단 휴식을 핑계 삼아 기계적으로 틀어놓고는 TV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화면과 소리를 무의식적으로 보고 듣는 일을 멈추니 한결 하루가 여유로워졌다. 드라마를 보며 흥분하고 슬퍼하고 환호하는 재미는 사라졌지만, 사실 나랑은 전혀 상관없고 또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드라마 속 이야기에 굳이 흥분하고 슬퍼하고 환호할 필요는 없었다. 안 보기 시작하니까 굳이 보고 싶지 않아졌고, 그래서 최신 유행 드라마로부터는 멀어졌지만 그 대신 최신 유행 음악은 빠삭해졌다. 늘 이어폰을 꽂고 운동을 했으니까.


TV로부터 멀어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여유를 선물해준 것은 사라진 수다 타임이었다. 당시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데다가 2년 전에 새로 이사를 온 터여서, 아이의 놀이학교 친구 엄마들이나 근처 아파트 단지 엄마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일에 많은 정성을 쏟고 있었다. 그맘때는 엄마의 인맥이 아이의 인맥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으면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수다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늘 피곤했다. 영혼이 빠져나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몇 시간이나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끊임없이 웃어 젖혔지만 이상하게도 남는 건 없었다. 주변 사람 누구누구 얘기하다가 그 누구누구의 자녀들의 면모를 분석하기도 했고,  시댁 얘기 친구 얘기 선생님 얘기 집값 얘기 학원 얘기를 하면서 쉼 없이 달렸지만 헤어지고 나면 기억나는 게 별로 없었다. 사실 수다 타임은 진작부터 매우 소모적인 일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나의 시간과 나의 에너지가 속절없이 방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수다 모임에는 빠짐없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에게 그 시기를 빠져나온 내가 감히 조언을 하자면, 수다 모임에 빠졌다고 망가질 인간관계는 수다 모임에 열심히 참가한다 하더라도 결국 언젠가는 망가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또한 수다 모임이 거듭되면 어떤 미묘한 신경전 같은 것이 벌어질 때가 있는데, 그런 상황에 상처를 받고는 자학하고 절망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이 봐왔다. 자주 만난다고 인간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공감과 이해가 관계를 단단히 결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운동할 시간은 만들면 만들어진다. TV가 주는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를 과감하게 떨쳐내면 된다. 운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예쁜 몸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데다가 끝없이 지속된다.

주변 엄마들과의 수다를 통해 소속감을 만끽하려는 선택도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 진정한 나의 정체성을 찾는다면 어딘가에 속해 있어야 위안이 되는 아슬아슬한 인간관계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사실 내가 멋진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내게 먼저 다가온다.

 

수다 타임과 드라마 타임만 없애도, 아니 줄이기만 해도 당장 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 운동을 시작하기만 하면 몸짱은 따놓은 당상이다. 왜냐하면 몸짱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노력하기만 하면 100% 성공할 수 있다.

이전 01화 아줌마들은 살 찌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부터 버리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