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사이, 모른다고 말할 용기

무지보다 더 창피한 것이 있다.

by Anne H


바보 같은 질문에 진실된 답은 없다.



사회생활을 하며 들었던 가장 별로인 질문을 떠올려보자. 뭐였더라. 아, 그래! 질문을 가장한 타박.


"왜 몰라요?"


모르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공부가 부족하거나, 인식이 부족한 이유밖에 없다. 그러니 딱히 답할 말이 없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했을 뿐인걸? 모른다는 게 당당하다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모르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 알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가끔 뒤에 이런 말이 따라오면, 한숨부터 나온다.


"담당자가 몰라서 되겠어?"


이건 애당초 답이 정해진 질문이다. 어떤 용자가 '네, 몰라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겠는가? 당연히 '아니요.. 알아야죠..' 하겠지. 이런 대화는 항상 내게 의문을 남겼다. 그래서 당신은 무엇을 얻고 싶은가? 나의 부족함, 창피함? 그걸 확인하면 마음이 시원해지나.


'나의 무지가 당신의 힘이 됩니까?'


저런 말을 들으면 반성보다 뜨거운 반감이 올라왔다. '모르는데 어쩔까요? 당신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습니까?' 그러니 저절로 자꾸만 아는 체를 하게 된다. 자세히 몰라도, 대충 얼버무린다고 해야 하나. 아마 그럴 때마다 코가 길어졌다면, 내 코가 지금쯤 저 성층권에 닿아 얼었을지도.


그러던 어느 여름날, 누군가 번개처럼 달려와 얼어붙은 내 코를 ‘툭’ 부러뜨렸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무지보다 더 창피한 것이 있다는 것을.






폭염이 지속됐다. 에너지 절약 정책을 충실히 따르는 공공기관의 여름이란 늘 찝찝함의 연속이었다. 점심을 먹고 의자에 앉았는데 피곤함이 몰려왔다. 비타민 하나를 입에 털어놓고 얼음이 다 녹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 아침까지 정리한 보고서를 스테이플러로 찍으며 생각했다.


'무슨 질문을 하시려나'


첫 팀장님 보고. 예상 질문을 생각해 본다. 보고서에서 내가 이해 못 한 부분이 있던가? 새로 맡은 업무라 내용이 낯설어서 그런지 추측이 어려웠다. 보고를 가는 발걸음에 불안함이 따라붙었다.


아니나 다를까, 팀장님은 내가 쓴 보고서를 쭉 보더니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던졌다. 전혀 고민해보지 못한 관점에서의 의문점. 난감했다. 더위에 뇌 CPU는 멈췄고, 성격이 급한 입술은 바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잘 모르겠습니다."


입이 움직이고 나서야 '앗 차!' 싶었다. 새로 만난 팀장님 앞에서 이런 모습이라니. '' 하.. 대충 얼버무렸어야 했나'하는 후회가 몰려올쯔음, 팀장님이 웃으며 입을 뗐다.


"저도 잘 몰라서 물어본 거예요.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게 궁금하긴 한데. 과장님은 어때요?

같이 좀 더 찾아본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 봅시다."


잘못 들었나? 지금 팀장님이 본인도 모른다고 했나? 같이 찾아보고 공부하자고 했나? 더위로 절어있던 마음이 계곡물에 던져진 마냥 시원해졌다. 모르는 걸 이렇게 멋있게 고백하고 또 받아들일 수 있구나. 팀원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함께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줄 수 있구나.


상사의 솔직 담백한 고백과 제안. 그간 대충 아는 척하거나, 모르는 걸 질책만 하던 선배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진짜 부끄러움은 무지가 아니라, '모름'을 '질책의 도구'로만 사용했던 태도였다.


나는 그렇게 되면 안 돼.






중간관리자가 되고 나서 모르는 게 더 많아졌다. 업무범위가 넓어지고, 실무보다 관리의 의무가 요구되는 일들이 생겨났다. 상급자가 되면 일이 줄거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똑같은 시간 속에서 나는 더 많은 걸 알아야 했다. 나는 나의 답변에 움직이는 팀원들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구나.'


긴장감이 들었다. 내가 몰라서 제대로 된 방향을 못 잡아주면 어떡하지. 동료들은 내가 다 알 거라고 생각하고 나한테 묻는 게 아닐까? 심난함이 먹구름처럼 몰려와 우울의 비를 뿌렸다. 길잡이 역할을 맡은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


어쩔 수 없다. 나도 모르는 게 있을 수 있지. 적어도 아는 척하며 대답하지 말자. 모르는 게 생기면, 솔직히 말하고 더 공부해서라도 제대로 해보자. 그리고 나도 다 아는 게 아닌데, 절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의 무지를 탓하지 말자. 사회라는 경기장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는 동행은, 언제나 숨이 막혔다.


물론 이런 다짐 속에도 시련은 찾아온다. 자신의 업무임에도 모르는걸 너무 당연시 여기거나, 스스로 공부하지 않고 그냥 알려달라는 팀원을 만나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럴 땐 답답함이 마음을 사정없이 짓누른다. 그러면 나는 납작해진 인내심을 부풀리기 위해, 전자 키보드에 입력해 둔 글을 읽는다.


'차분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얘기한다.


"이건 00님이 꼭 아셔야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에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내가 어떤 내용을 써서 보고할 때는, 적어도 '나'는 그 내용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모르는 걸 따지고 질책하기보다, 다시 잘해보자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이 회사에서 완벽하게 존재할 수는 없기에. 그리곤 팀원을 돌려보낸 뒤 생각한다.


'나는 어떠한가?'








모르는 게 많은 초보상사의 길은 험난하다. 그저 옳다고 믿는 것들을 실천하며 발을 떼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내가 어떤 상사인지는, '나'보다 함께한 '동료'들이 정해줄 일이다.


나는 '모른다고' 말할 용기를 주고받고 싶다. 그게 서로의 구멍이 되기보다, 같이 올라갈 언덕이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올라가 본 언덕에서 나는 행복했었기에, 그들의 경험도 행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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