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여든 인생을 닮고 싶지 않은 이유
타국에 사는 동생에게서 톡 메시지가 왔다."어제 오래간만에 알바 뛰고 몸살 났나 봐. 안좋은 성격이랑 툭하면 아픈거 엄마 닮았어"라고. 나는 위로가 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엄마 닮은게 아니라 그 나이에 알바까지 하니까 몸살이 나는 거지"라며 애써 답 메시지를 한다.
며칠 전, 언니와 같이 엄마집에 갔을때이다. 냉장고에 있는 야채들로 쓱싹쓱싹 반찬을 만들고 점심을 차렸더니 언니가 한마디 한다. "얼굴은 네가 엄마를 제일 많이 닮았는데 손은 엄마를 안 닮고 할매 닮았나 봐. 부지런하고, 잘해"라고. 나는 씩 웃었다. 엄마를 닮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뭐그리 반갑고 즐거운 말이라고. 엄마의 외모나 말 안하고 삐치는 성격을 제일 많이 닮은 나였기에 '엄마를 닮지 않았다'는 말이 좋았나보다.
나를 포함 우리 자매는 '엄마와 닮았다는 것'을 싫어한다. 늘 자식들이 최우선으로 엄마를 위해야 하고, 모든 일의 중심에는 엄마가 있으셔야 했다. 각자의 삶이 있는데 몇십 년 지속되는, 반복적인 상황들이 이제는 각자에게도 버거운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서로서로 도토리 키 재기를 한다. 누가 더 엄마를 닮았냐고... 아무 의미도 없는데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의 힘든 인생'을 닮고 싶지 않은 그 이유일 것이다. 엄마의 인생은 '결혼'이라는 둘레에 갇히면서 평탄하지 않았다. 경제력이 없는 남편!! 여덟명의 자녀들!! 한 명의 자녀가 하루에 '엄마' 한 번만 불러도 여덟 번이다. 엄마로 불리는 것이 지긋지긋하기도 할 것 같다. 외동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 나름 괜찮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 탓이었을까? 엄마의 성격도, 인생도 평온하지도 평탄하지도 않으셨다. 그 삶을 닮고 싶지 않아서이다.
여든 하나가 된 엄마의 하루는 시간이 많다. 자녀들이 모임 통장을 만들고, 체크카드를 발급해 드렸다. 카드 사용내역을 보면 엄마의 동선이 보인다. 참 바쁘시다. 갈 곳도 많으시고, 살 것도 많고, 할 일이 많으시다.
엄마의 이동 동선은 길고, 엄마의 인생은 여전히 바쁘시다. 편히 더 주무셔도 되는데 정해진 시간에 기상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약과 식사를 챙겨드시고, 2시간여 직접 다려서 약초물을 드신다. 자녀들의 잔소리에 안마의자에서 몸을 풀고, 저녁이면 필사를 하신다. 총 700페이지가 되는 불경을 몇 권째 필사를 하고 계신다. 하루에 1~2시간씩 손이 저리다고, 허리가 아프시다고 하면서도 스스로 정한 루틴을 지키시는 건 대단하다. 틈틈이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이입되어 울고 웃으시고, 일주일에 2회 노래교실에도 꼬박꼬박 개근상에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
엄마의 인생에는 왜 틈이 없을까? "좀 쉬어 참내..."라고 하면서 잔소리를 하다 엄마를 닮은 나의 하루를 생각하고는 웃음이 나온다. 하루를 느긋하게 보내면 손해 본듯한, 내 인생에 주어진 시간을 잘 못 보낸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죄책감이 든다. 5시에 기상해서 할 일을 계획하고, 다이어리에 시간대별로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운동이며, 공부며, 독서며 해야 할 일만 무진장 정리를 한다.
엄마를 닮아서, 그래서 나의 하루가 엄마의 하루를 닮은 듯하다.
마음 한편에는 '우리 엄마 대단하시다'라는 생각이 든다. 여든 하나의 삶이 중년의 삶과 비슷하다는 건 그만큼 엄마가 하루하루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사시는 거란 것이다.
언제 갈지 모르니...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일지도 라는 생각보다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그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