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철학의 위안>
얼마 전 아이의 입원을 준비하면서 급하게 주문한 책.
같이 공부하는 글벗 작가님의 추천으로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을 구매했다.
우리나라 택배 시스템은 전 세계 1위 아닐까?
주문한 다음날 칼같이 도착.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이 집에 있다.
너무 오래전에 읽은 탓인지 내용은 기억에 나지 않는다.
그의 두 번째 저서가 우리 집 책장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번에는 꼭꼭 씹어서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대체로 쾌락을 혐오하며 매사에 엄격하게 굴었던 철학자들 중에 별종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인생을 잘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우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만약 미각의 쾌락을 빼앗고, 성적 쾌락을 빼앗고, 듣는 쾌락을 빼앗고, 또 아름다운 형태를 볼 때 일어나는 달콤한 감정들을 빼앗는다면, 나는 행복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본문 중에서)
작가가 말하는 철학자는 에피쿠로스다.
보통 철학자들은 쾌락에 대한 갈망이 부정적이라고 여겨졌는데(나만의 편견이었나?) 에피쿠로스는 반전이구나.
에피쿠로스의 행복 구매 리스트에는 3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 우정
두 번째, 자유
세 번째, 사색
에피쿠로스는 삶의 기초가 되는 우정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진정한 친구는 큰 재산으로도 얻을 수 없는 사랑과 존경을 베푼다는 점을 인정했다.(중략)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문제를 글로 적거나 대화 속에 늘어놓으면서 우리는 그 문제가 지닌 근본적인 양상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비록 문제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 말하자면 혼란, 배제, 마음의 고통 등을 예방할 수 있다. (중략) 인간이 결코 경험하지 못한 어떤 상태를 두고 미리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삶이 지속되지 않을 죽음 이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만약 우리에게 돈은 있는데 친구와 자유, 사색하는 삶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고, 비록 부는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친구와 자유, 사색을 누린다면 우리는 결코 불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친구와 자유와 사색.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마지막 사색이 걸린다.
나는 사색을 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았다.
나는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나? 나와 얼마만큼 친할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 다정한 눈길로 친절을 베푸는 나인데,
그럼 나는 나에게 그런 친절의 손길을 내밀기는 했을까...
무언가에 쫓기듯이 나를 다그쳐왔다.
네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더 잘해야 한다고.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모든 역할들을 완벽히 수행해야 한다고.
지치고 지쳐 쓰러진 여린 소녀가 내 안에 누워있다.
일어설 힘이 없지만 기어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걸어본다.
오늘은 40분은 못 채우고 집으로 돌아간다.
걸으면 정말 기운이 난다고, 세로토닌이 마구마구 나온다고 했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우울증 약을 끊어서 그런 걸까.
아니다. 고개를 강하게 젓는다.
이런 식으로 가면 평생 죽을 때까지 입에 약을 털어 넣어야 한다.
1. 행복을 위한 설계를 한 가지 세워라.
휴일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는 별장에 살아야 한다.
2. 그 설계가 잘못일 수도 있다고 상상해 보자.
별장을 구입하는 데에 돈을 쓰고도 여전히 불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
3. 한 가지 예외라도 발견된다면, 그 욕망의 대상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예컨대 친구가 없어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별장에서도 비참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4. 행복을 엮어내는 데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최초의 설계는 지금까지 나타난 예외까지 고려하여 수정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내가 누군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한에서, 나는 별장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
5. 이제 진짜 필요한 것은 혼란스러웠던 애초의 욕망과는 매우 다른 것인 것 같다.
행복은 훌륭하게 장식한 별장보다는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느냐에 더 많이 좌우된다.
(본문 중에서)
본디 물질적인 욕구가 그다지 없는 나로서는 이 예시가 씨게 와닿지 않았다.
가질 수 없어서 그런 건지 원래부터 안 좋아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명품백이며 좋은 차, 좋은 옷에 목숨을 거는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도 염색하다 얼룩이 진 남색 반팔티셔츠는 내 애착 티셔츠로 사시사철 나와 함께 한다.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나에게 무엇일까.
물질이 아니라면 정신을 채우고 싶다.
이런 정신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면 더욱 좋겠지.
감사하게도 <엄마의 유산>을 만나고 좋은 글벗들을 많이 알게 돼서 그분들의 글들을 읽는 게 요즘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친다면
지금 내 안의 불안들도 조금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같이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들의 글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오늘은 자기 전에 위에 말을 내뱉고 눈을 감아야겠다.
[환오 연재]
월요일 오전 7시 : [주부지만 요리를 못하는 요똥입니다]
화요일 오전 7시 : [책! 나랑 친구 해줄래?]
수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목요일 오전 7시 : [공대생이지만 경리만 10년 했습니다]
금요일 오전 7시 : [거북이 탈출기 두 번째 이야기]
토요일 오전 7시 : [구순구개열 아이를 낳았습니다]
일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