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지난주에 이어 <철학의 위안>

by 환오

우리는 몽테뉴의 수상록이 전적으로 그의 정신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라고 상상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철학을 글로 쓰려다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그 서투름을 자신에게는 그런 과업을 이룰 만한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그렇게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걸작의 이면에 숨어 있는, 뼈를 깎는 작가적 투쟁의 증거들을, 말하자면 수상록이 태어나기까지 치러야 했던 수많은 첨삭과 퇴고를 발견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



위대한 현자들의 책을 보다 보면 아.. 이 사람들은 뭐지 싶을 때가 있었다.

그들의 타고난 재능으로 이렇게 위대한 작품이 써졌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몇 달 글을 써봤다고 나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는 거 같다고

한편으로는 천재성은 타고나야 하는 재능의 영역이라 애써 합리화를 시켰다.


그런데 그들도 뼈를 깎는 노력을 했음을, 무수히 많은 날들을 자신과 싸워냈음을.

작품 뒤에 숨겨진 노력들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보이는 한 권의 책으로 결과만 볼뿐이다.

시대를 넘어 읽히는 작품이 탄생되기까지 보이는 기쁨 뒤에 안 보이는데서 좌절과 고통과 눈물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글을 코딱지만큼 써보니 알겠다.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내 안의 욕구가 커갈수록 글은 잘 써지지 않는다는 것을.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타닥타닥 쓰다가 멈칫하게 된다.

자꾸 자체검열을 하게 된다.

그저 오늘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묵묵히 그 자리에서 버티는 것.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깨닫고 또 깨닫는다.


성장은 고통이라고 했다.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쉬운 길을 가면 나를 괴롭히는 이 열망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결국 제자리걸음으로 또다시 성장에 대한 갈망을 꿈꾸게 될 것 같다.


마음의 평온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완성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완성을 추구하다 보면 으레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과 고민을 피하게 된다.

-본문 중에서-


애당초 완성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미완성인 나를 그대로 인정부터 해야 한다.

그 미완성인 내가 틀을 깨고 나가려고 애쓰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다.

오늘 하루도 깨우치고 깨닫고 깨지는 시간이 나에게 올 수 있기를.

가장 분별 있는 인간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고 애쓴다.

-본문 중에서-


고통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자유를 위해 애쓰는 하루가 되기를.

오늘도 애쓰는 나 자신에게 작은 응원을 보낸다.






[환오 연재]


월요일 오전 7시 : [주부지만 요리를 못하는 요똥입니다]

화요일 오전 7시 : [책! 나랑 친구 해줄래?]

수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목요일 오전 7시 : [공대생이지만 경리만 10년 했습니다]

금요일 오전 7시 : [거북이 탈출기 두 번째 이야기]

토요일 오전 7시 : [구순구개열 아이를 낳았습니다]

일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