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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Jul 08. 2019

홀로코스트,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곳

독일 여행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걸어서 10분쯤 되는 거리에 커다란 사각형 콘크리트가 질서 정연하게 놓여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콘크리트는 다양한 방법으로 놓여 있다. 가로로, 세로로 어떤 것은 눕혀져 있기도 하고 세워져 있기도 했다. 어떻게 놓여 있든 일렬로 줄지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이 콘크리트 숲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웃음소리는커녕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함이 지배하고 있었다.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다. 이곳을 방문하던 날은 매우 쌀쌀하고 비도 흩뿌리고 있었다. 잔뜩 몸을 움츠리며 지하에 있는 기념관 입장을 기다리다 한 떼의 초등학생들을 발견했다. 그들도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특하게도 추운 날씨와 기다림에서 오는 지루함에도 칭얼대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그 아이들을 보며 우리 초등학생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은 청소년들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받은 교육의 영향이었을까? 그들의 표정은 엄숙하기만 했다. 기념관에 들기 전에 잠시 동안 콘크리트 사이를 걸었다. 단단한 콘크리트 사이를 걷는 줄로만 알았는데 까닭 없이 가슴이 먹먹하고 머리는 텅 비워지는 것 같았다. 짧은 시간 동안 사람과 삶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지하에 마련된 전시관은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소란스러움은 전혀 없었다. 오직 침묵만이 존재했다. 수없이 많은 안타까운 사연에 말을 잃은 탓이다. 그 가운데 Room of Names가 있다. 나치에게 학살된 유대인 600만 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방이다. 커다란 방의 벽면에는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비치고 스피커를 통해서 낮고 느린 음성으로 이름불리어지고 있었다. 이름을 모두 부르는데 6년 7개월 하고도 27일이 걸린다고 한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당혹스러웠던 방이었지만 내용을 알고 나니 저절로 숙연해진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듣고 나니 김춘수 시인의 <꽃>이 불현듯 머리떠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그 시간은, 그런 광기는 절대로 되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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