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감축법(IRA)은 망하나요
근데, 진짜 도널드 트럼프가 다음 대통령이 되면 어쩌죠...?
지난주에 회사랑 회의를 하던 중, 저의 상사에게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마침 인플레 감축법(IRA) 덕에 우리 회사의 서비스 범위를 늘릴 수 있게 되어 향후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었죠.
저는 한국 집구석에 앉아서 일하지만 회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습니다. 워낙 작은 니치마켓을 공략하는 회사에 어쩌다 인연이 닿아 10년 넘는 세월 동안 일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회사에서 하는 일이 요즘처럼 다양해진 일이 없었습니다. 늘 비슷비슷했던 회사가, 인플레 감축법과 함께 확 생기가 돌게 된 거예요. 대륙도 다르고 시간대도 다른 곳에서 혼자서 일하는 게 가끔은 벽을 보고 일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지만, 요즘만큼은 제가 '진짜 직장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입니다.(그전엔 가짜였냐)
아무튼 그래서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불안 불안합니다. 기후변화의 ㄱ자도 싫어하는 사람으로 유명하잖아요. 지금 한참 흐름 타는 우리 회사, 진짜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타격을 받는 건 아닐까요? 인플레 감축법이 아무리 법이라지만 대통령의 권한으로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지나 않을까요?
그런데 마침,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 놓은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사설이기는 하지만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 WRI)의 정부 관계부 디렉터 의견이기 때문에 갑자기 신뢰가 팍팍 갑니다. 일반론이기는 하지만 꽤나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아래에 간단하게 번역+정리해볼까 합니다.
원문은 여기: (글쓴이: Christina DeConcini (WRI, government affairs 디렉터)
https://www.sustainableviews.com/why-the-us-ira-is-resilient-to-presidential-change/
인플레 감축법의 미래가 미래의 대통령이나 의회 구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까?
간단히 답하자면 "YES"입니다. 물론 달라질 수는 있겠죠. 향후 입법의 방향도 그렇고, 대통령 권한인 행정 명령(Executive Order, EO)을 이용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나름대로 바이든 정권에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감축하겠다느니, 2050년까지 넷 제로를 달성하겠다느니, 전기차를 보급하고 건물 부문 전력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느니 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요, 이런 모든 것들이 확 느려질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이 사설을 쓰신 분은 정권을 누가 잡든 IRA의 핵심 역할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 기후 정책의 입법 축은 여전히 IRA가 담당하고 있을 것이란 소리인데요. 인플레 감축법은 일단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청정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화, 전기차 보급, 전력망 개선 등에 무려 3,700억 달러를 쏟아 붓기로 한 법안입니다. 그리고 구조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변화를 견디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는 법률의 '구조'와 '정치적 상황' 두 가지로 분석합니다.
첫째, 인플레 감축법은 민간 투자를 유도하여 궁극적으로 미국 내 제조업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설계하였으며, 여기 포함된 세제 혜택은 10년 간 유효하여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현재 인플레 감축법 덕에 청정에너지 분야에 무려 17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미국 50개 주 중 44개의 주에서 진행되는 272개의 프로젝트에서 창출된 것인데요, 핵심은 이것이 소위 '뉴딜 스타일'의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겁니다. 즉, 주먹구구로 프로젝트를 선정하거나 인부들의 임금을 주기 위해 유권자들의 돈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란 거죠. 세제 혜택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청정에너지, 전기차, 배터리 생산, 탄소 제거 및 저장 프로젝트에 민간 투자를 형성하도록 고안되어, 제조업 전반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10년 동안 세제 혜택이 주어지면 그사이 회사들이 성장하고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제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입법으로 자리 잡은 것은 것을 행정 명령을 통해 멋대로 철회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를 없애거나 약화시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추가 입법 절차를 통해서인데, 이것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둘째, 인플레 감축업이 가져온 실제적인 이득은 전국적으로 국민들에게 환영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이를 뒤집기가 정치적으로 어렵단 소리죠. 공장이 돌아가고 고용이 창출되는데 입법자들이 이를 무력화시키기가 얼마나 어렵겠어요? 법을 통과시키려고 애썼던 건 기후에 적극적인 민주당이었지만, 이 법의 혜택이 돌아가는 건 분명 정치색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IRA 관련 펀딩을 이미 받았거나 받기로 결정된 10개 선거구를 보면 (지난번 글에 언급했듯이 이 법안이 통과된다고 바로 두둑한 돈주머니를 받는 건 아닙니다. 주마다 에너지부(DOE)에 신청서를 내서 검토를 받고, 돈을 받는 절차가 남아 있거든요) 그중 8개는 공화당이 대표하고 있었습니다. IRA가 투자를 촉진한 덕에 일명 "레드 스테이트"라고 불리는 캔자스, 켄터키,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등의 주들도 2030년 경이 되면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우세를 점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해요. 이런 상황이니 IRA 덕을 안 본다고 말하기 어렵죠.
투자뿐 아니라 고용 창출 및 지역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보더라도, 처음엔 IRA에 반대하던 일부 의원들도 자기네 주에서 이런저런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는 걸 보고 축배를 드는 실정입니다.
IRA가 도입된 지 2년도 되지 않았지만, IRA는 벌써 각 주 경제 사정과 전망에 너무 깊숙이 파고들어서, 주지사나 다른 관리들이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기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솔직히 굳이 왜 그러겠어요? 최근에 IRA 영향력에 관한 분석이 나왔는데, 청정에너지에 투자된 연방 정부의 투자금 1불당 벌써 5-6불 선의 이득이 창출되었다고 하니까 말이죠.
물론 취약점도 있기는 합니다. 아까 말했듯 관련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은 세제 혜택이지만, 직접 투자를 받는 분야도 있거든요. 이렇게 직접 투자로 책정된 금액은 향후 의회의 성향이 따라 지출이 불가할 수도 있겠죠. 이와 비슷하게, 새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기후 정책에 적극적이지 않다면 관련 정부 부처에 명령을 내려 아직 시작하지 않은 프로젝트를 미루든가 철회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꼼수들조차 시간이 지나며 법이 자리를 잡으면 점점 설 곳이 없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사설을 쓰신 분은 미국의 의료개혁 "오바마케어"를 예를 들어 초반에 반대가 심해도 점점 반대가 사라지고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뭐 여기엔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양 정당이 모두 IRA를 열렬히 지지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IRA에 포함된 중요한 조항들은 대개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향후 의회 과반수가 어떤 정당이든, 대통령이 누가 되든 결국은 살아남아 향후 수십 년 간 기후 목표 달성에 기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것을 기대해 봅니다.
저의 상사도 비슷한 대답을 했습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원래 무엇보다 냉철하고 빠르잖아요. 미국의 기업들이 아직 실제로 돈다발이 풀리기도 전인데 이렇게 빠르게 대비하고 반응하는 걸 보면, IRA가 쉽게 무력화되거나 약화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이에요. 저도 당분간 짤릴 일은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