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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n 28. 2021

과연 빌런은 다이어트를 할 수 있을까?

중국의 배출권 거래제

세계 각국에 백신이 도입되고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네요. 워낙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중국을 이 시대의 빌런(?)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도 지금 중국 영토에 살고 있고 개인적으로 친한 중국 친구들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중국에서 이 전염병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하곤 합니다.  


사실 기후변화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중국은 단연 이 시대의 가장 큰 숙제입니다. 물론 한국도 산업이 발달하여 배출량 측면에서 보면 내 코가 석자긴 합니다만, 중국의 덩치와 성장 속도를 보았을 때 세계 모든 국가가 그들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죠. 중국의 성장세는 코비드에도 불구하고 멈출 줄 모릅니다. 작년 세계 전체의 경제가 엄청나게 위축되었을 때도 하반기에 혼자만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고요. 


경제 성장은 무슨 뜻일까요? 다름 아닌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입니다. 올해 상반기에도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추세로 배출량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으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0%(!) 가까이를 내뿜었고요. 전 세계에 나라가 몇 개인데, 단일국이 그만큼이라니 정말 어마어마한 수치죠. 


중국 정부도 자국에 찍힌 세계 최대의 오염국이라는 낙인을 인식은 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위협이 나날이 심해질뿐더러, 국제사회에서 다들 온실가스를 감축하려 애쓰고 있는 마당에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굴 수는 없는 분위기죠. 그래서 나름 2가지 중요한 목표를 선언하고 그에 맞는 국가 계획을 설계하고 있기는 합니다. 


첫째,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최대치를 달성하겠다! 
둘째, 2060년까지 탄소중립(넷 제로)을 달성하겠다!


근데 첫 번째 목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 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줄여도 부족한데 2030년에 피크를 달성하겠다는 말은 그때까지 10년 가까이 쭉 늘릴 거라는 얘기니까요. (시, 시간이 없다고요.)

그만큼 탄소 위주 인프라는 하루아침에 환골탈태할 수 없다는 게 느껴지죠. 중국에서는 지금 전력 공급 60%가 석탄으로 만들어지며, 석탄화력발전소를 계속 늘리는 바람에 국제적 비난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자국 영토뿐 아니라 다른 개도국에도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죠. 석탄이 기후변화에 가장 안 좋은 건 알지만, 당장 저개발국에도 전력이 필요한 건 부인할 수 없다는 논리죠. 


아무튼 그런데 올해는 이런 중국에도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배출권 거래제>인데요, 온실가스 감축을 향한 구체적인 제도로는 거의 처음이라고 볼 수 있죠. 원래 '우리도 배출권 거래제 할게!'라고 발표한 건 이미 한~참 전인데, 10년 넘게 준비(와 연기)를 거듭한 끝에 올해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계획상으로는 세계 배출량의 무려 12%에 영향을 미치게 될 어마어마한 규모죠. 옛날부터 쭉 진행해 왔던 유럽연합의 배출권 거래제(EU-ETS)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배출권거래제가 뭘까? 

그런데, 배출권 거래제가 대체 뭔지 잠깐 알아보고 갑시다.  

좀 웃기는 사례지만, 친구 셋이서 함께 다이어트를 한다고 합시다. 트레이너가 각 개인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개별적으로 일정량 삭감할 수도 있지만('탄소세'의 개념), 좀 다르게 접근할 수도 있어요. 셋이서 먹을 음식의 총량을 정해준 뒤 (셋이 맘껏 먹는 양보다 적은 양으로 정해져야겠죠) 누가 먹을지 알아서 정하게 두는 거죠. 먹을 수 있는 '식사권'을 각자에게 배분한 뒤, 식사권을 서로 거래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이때 사람들은 식사권을 사용해서 밥을 먹겠지만, 자기 것을 다 쓰고 나면 두 가지 선택에 직면하게 됩니다: 1) 비용을 지불하고 다른 사람에게 식사권을 사서 밥을 먹을 것이냐, 2) 식사권 사는 비용을 아끼고 밥을 덜 먹을 것이냐. 다들 배가 고프니 모두 밥을 배불리 먹으면 좋겠지만, 식사권의 총량이 정해져 있단 게 문제죠. '얼마나 먹고 싶은지'에 따라 식사권에는 자연스레 가격이 형성되고, 결국 각자는 '경제적 선택'을 합니다. 너무 비싸면 식사를 포기하고, 살만 하다 생각하면 식사권을 사서 밥을 더 먹겠죠. 

그러면 어차피 음식 총량이 애초부터 적었으니 누군가는 살이 빠지는 결과가 나옵니다. 각자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에 불만도 없고요. 이게 바로 시장 메커니즘에 기초한 배출권 거래제의 개념입니다.

배출권 거래제도 똑같아요. 식사권 대신 배출권이 주어질 뿐이죠. 정부에서 바람직한 배출 총량을 정하고, 기업들은 배출권을 이용해 온실가스 배출을 합니다. 배출권 보유량보다 배출량이 많은 경우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매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알아서 배출량을 줄이는 거죠. 

배출권 거래제 개념도 (이미지: Dutch Emissions Authority)

배출권 거래제(emission trading scheme)의 또 다른 이름은 캡 앤 트레이드(cap and trade)인데요, 배출 총량(cap)을 정하고 그 안에서 거래(trade) 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이름 자체에 개념이 들어가 있죠. 탄소세는 세금인 대신 배출권 거래제는 시장 기반의 제도이며, 경제적으로는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이 큰 전력 부문 등에서는 많은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배출권 거래제와 한계

아무튼 그래서 중국은 이러한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온실가스 배출이 큰 전력 산업부터 시작하고, 향후 기타 오염산업(시멘트, 철강, 석유화학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죠.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지만, 갑자기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면 해당 산업은 피해를 보기 때문에 처음부터 빡세게 다이어트를 시키진 않습니다. 처음에는 공짜로 배출권을 분배하고, 배출 총량도 현재의 양과 비슷하게 정한 뒤 점점 줄여 나가는 방식으로 시작하죠. 처음부터 트레이너가 식사 총량을 말도 안 되게 적게 줄여버리면 그냥 헬스장을 나가 버리고 싶을 테니까요. 그래서 맨 처음 단계에서는 발전소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만큼 그대로 배출권을 받으니까 배출량을 줄일 유인이 없고, 배출량 감축의 효과는 미미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배출권 거래제 계획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소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배출 총량(cap)에 정해져 있지 않은 데다, 언제 얼마큼 줄일지 계획도 불분명하다고 해요. 고정 총량(fixed cap)이 아닌 유동적인 총량(flexible cap)이면 상황에 따라 실제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변할 수 있다는 얘기죠. 


또, 형성될 탄소 가격도 문제입니다. 애들끼리 포켓몬 카드를 교환하는 것도 아니고, 공짜인 걸 주고받는 건 '시장'이 아니죠. 당연한 얘기지만, 배출권 거래제는 탄소 가격이 어느 정도 비싸게 형성이 되어야 효과가 있습니다. 비싼 비용을 내고 배출권을 사기가 부담스러워 배출량을 줄이는 선택을 해야 하니까요. 현재 중국 배출권 거래제 시장에서 이산화탄소 1톤을 배출하는 비용은 7.6 달러 정도로 형성될 것이라고 예측되는데요, 이는 시범 사업 때보다는 높은 수준이기는 합니다. 미국 동부 배출권 거래제 시장인 RGGI과 유사한 수준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EU-ETS의 60 달러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이죠. 과연 이 정도의 가격으로 배출권 거래제의 효과를 볼 수 있을까요?


올해 국제 에너지 기구(IEA)와 칭화대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초반엔 효과가 미미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배출권거래제의 효과는 분명해질 것이라고 하기는 합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파란 막대그래프가 아무런 제도가 없을 때의 시나리오고(배출량이 점점 늘죠) 초록색은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했을 때, 연한 초록색은 배출권 거래제 시장 가격 형성이 경매를 통해 완전히 시장 기반으로 형성될 때를 가리킵니다. 확실히 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되면 그냥 두는 것보다 배출량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죠. 


각 시나리오에 따른 배출량 예측치 (그래프 출처: IEA and Tsinghua University, 2021)


그런데 문제는! 이건 시간이 지날수록 '허용된 배출 총량이 점점 낮아질 때만' 맞는 그래프라는 겁니다. 만일 배출 총량을 규제하지 않으면 이 그래프대로 안된다는 거죠. 


끝으로, 만일 배출권 없이 배출 총량을 넘겼을 때 제지하는 벌칙도 너무 약하다고 지적받고 있습니다. 벌금이 그다지 세지 않은데, 그러면 배출권을 안 사고 그냥 벌금을 내고 마는 사업장들도 많이 있을 테니까요. 여러모로 향후 어떻게 이행되느냐에 성패가 갈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중국은 우리와 함께 지구에 살고 있는 이웃이고 기후변화의 미래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국가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뭐라도 시작한 게 다행이죠. 중국은 워낙 덩치가 커서 주목을 받지만, 정책과 목표의 괴리는 사실상 모든 국가가 직면한 숙제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고요. 


어제 제가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님의 글에서 한국의 윤순진 탄소중립 위원장 인터뷰를 보았는데, 최근 국가와 기업들의 넷 제로 선언이나 ESG 유행에 대해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라고 강조하시더군요. 탄소 중립은 이제 더 이상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며, 게임의 규칙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말이 시대의 변화를 절감하게 했습니다. 중국도 이러한 시대의 부름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겁니다. 좋든 싫든 '온실가스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미래에 조금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길 바라봅니다. 



* 참고 자료 

[1] https://www.carbonbrief.org/in-depth-qa-will-chinas-emissions-trading-scheme-help-tackle-climate-change?utm_campaign=Carbon%20Brief%20Weekly%20Briefing&utm_content=20210625&utm_medium=email&utm_source=Revue%20Weekly

[2] https://www.impacton.net/news/articleView.html?idxno=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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