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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l 12. 2021

직선보다는 동그라미를

돌고 도는 순환경제(circular economy)와 기후변화

1945년 가을 즈음, 전 세계인들은 16년에 걸친 결핍과 궁핍을 견뎌온 상태였다. 처음에는 대공황이 있었고, 그 후 전쟁이 찾아왔다. 이제 그들은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며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상점으로 몰려가 삶을 더 편하고 즐겁게 만들 물건들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소비와 광고가 크게 늘어났다.
-데이비드 브룩스, <인간의 품격> 중-


'나'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름 석자, 한국인, OO 엄마, XX 과장 등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여러 단어들이 떠오를 거예요.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현대인의 절대다수는 "소비자"일 겁니다. 특히 요즘은 '나'를 위한 소비가 지극히 정당화되는 시대인 듯합니다. 빅 미(Big Me)YOLO가 세태를 지배하죠. 인스타그램만 보아도, 이토록 특별한 '나'를 위한 각종 물건과 활동, 그리고 과시가 점철된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 모든 소비 활동을 지탱하는 것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경제이고, 인간 각자가 가진 욕망이 커지며 경제도 몸집이 점점 더 커집니다. 지구의 자원을 취해서 만든 물건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폐기해 버리면 그대로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데 말이죠. 


이대로 지구의 자원을 소비하다 보면 지구가 네 개나 필요하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을 거예요. 인간의 생태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을 계산해 보면 지금만 해도 지구가 줄 수 있는 자원의 1.5배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1], 늘어나는 인구가 점점 더 과시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은 지구가 4개는 필요하단 거죠. 지구라는 행성이 동전을 넣으면 자판기에서 뿅 하고 것도 아닌데,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타일러가 쓴 책의 제목처럼, "두 번째 지구는 없"는데도 말입니다.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라는 동그라미가 필요해 

지금의 경제 시스템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Take - Make - Waste"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로부터 자원을 가져와서(take), 무언가를 만들고(make), 다 쓴 다음에 버리는(waste) 직선형 과정을 따르죠. 그러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지구는 유용한 자원은 고갈되고, 남는 것은 모두 쓰레기 더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월-E>에서처럼 결국은 지구를 버리고 도망을 가야 하는 시대가 와야 할지도 몰라요. 

영화 <월-E>에 나오는 쓰레기 더미 지구ㅠㅠ (이미지: Walt Disney Pictures/Pixar)


그에 반해 자연의 시스템은 어떤가요? 생태계는 이런 직선 모양이 아니라, 끊임없이 순환하는 동그라미입니다. 태어나고 살다가 죽더라도 썩어서 없어지고, 결국은 다음 세대의 생명에게 보탬이 되지요. 순환 경제도 이러한 자연계의 원리를 본떠서 직선을 지양하고 동그라미를 만드는(closing the loop) 데에 주목하고 있


순환 경제에 대한 쉽고 좋은 글들은 브런치에도 많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yeongsookim/1 


특히 요즘 순환 경제가 화두가 되는 분야는 패션 업계인 것 같아요. 젊은 시절 싼 옷을 잔뜩 사서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다가, 싫증이 나면 버리곤 했던 저로서는 뜨끔한 주제입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을 버리는 대신 리폼하거나 바꿔 입는 것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보다 좀 더 '지속 가능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패션 업계에서는 고민하고 있다고 해요. 


사실 순환 경제의 핵심이 여기에 있는데요, 순환하는 경제라고 해서 다들 옷도 거지같이(...) 입고 다니고 남이 쓰던 낡은 물건만을 쓰자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용한 자원을 "가치 있게 재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단 거죠


https://brunch.co.kr/@ireneadler72/97

이 글을 읽고 나서야 눈에 들어온 것인데, 아이 옷을 사줄 때 유심히 보니 100% recycled polyester 라는 태그가 붙어 있더군요. 

이런 태그.. (이미지: Variant)

 


기후변화와 순환 경제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기후변화와 순환 경제도 관련이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순환 경제와 기후변화는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어요. 재화를 생산하는 데는 에너지가 들고, 현재와 같이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경제에서는 "에너지 사용 = 온실가스 배출 = 지구 온난화"니까요. 요즘처럼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기승을 부리는 이때에, 온실가스 감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제조업 등의 분야에서 순환 경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이유죠.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의 62%가 재화를 '생산'하는 데 쓰입니다. 즉 자원을 추출하고 가공하여 소비하는 데에만 전체의 5분의 3이 넘는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겁니다. 재화를 운반하고 소비하는 등 그 이후의 활동에는 나머지 38%가 배출되고요. (토지 사용 전환과 삼림 파괴로 인한 부분은 제외) 생산 과정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재사용, 재제조, 재활용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전문가들도 "지구 기온 상승 폭을 2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파리 협약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순환경제가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2]. 그런데 아직 대부분의 국가 정부 정책을 살펴보면 '기후변화 따로, 순환 경제 따로' 접근하고 있는 듯합니다. 파리 협약 관련 정책에서 순환 경제를 언급하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니 말이죠. 


현재 지구에서는 연간 900억 톤이 넘는 광물과 화석 연료, 금속, 바이오매스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중 재활용되는 비율은 9%에 불과합니다. 9%만이 동그랗고, 나머지 91%는 쭉쭉 직선을 나가다가 몽땅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단 거죠. 


더 무서운 점은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겁니다. 자원 소비는 점점 빨라지고 있어서, 1970년대에 비해 현재 3배(!)가 되었고, 2050년까지 다시 2배로(!!) 늘 것이라고 해요(UN International Resource Panel). 그러면 대체 쓰레기가 얼마며 온실가스 배출량이 얼마일까요.. 지금 당장 온실가스를 0으로 줄여도 아마 기온이 2도 이상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데, 무더운 쓰레기 행성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우리는 소비자니까

지난 몇 주간 북미의 열 돔 현상으로 인한 더위와 가뭄이 매일 뉴스에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 종이 멸종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하니 기후변화는 단연 금세기 최대의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최근에는 캘리포니아 해안가에 위치한 최고의 럭셔리 저택들이 부동산 값이 떨어진다고 보도되기도 했는데요, 헐리웃 셀럽들이 사는 그런 대저택들을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 이유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안선이 상승해서 침수 피해가 잦을뿐더러, 매년 더 강력해지는 태풍 때문이라고 합니다. 빙하가 녹는 것이야 눈앞에 안 보인다 쳐도, 당장 부동산 관련 뉴스만 보아도 기후변화가 턱 밑까지 왔단 걸 알 수 있어요. 폭염이며 헐리웃 스타의 저택이며 지금은 모두 멀리 떨어진 미국의 이야기지만, 지구라는 한 배에 탄 이상 조만간 우리 자신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이 위기 상황에서 당장 정책을 결정하고 규제를 도입하는 건 정책 결정자의 일이지만 우리의 몫도 분명히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소비' 아니겠어요? 손가락 끝으로 수많은 물건을 보고 클릭 하나로 구매할 수 있는 세상에서, 소비자로서 나의 행위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고민해 보는 것이 꼭 필요해요. 어떤 물건이 순환적으로 생산되는지, 재사용/재활용이 가능한지, 다른 옵션은 없는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조금 귀찮아도 근처에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상점은 없는지도 찾아보고요. 


이토록 특별한 '나'를 한껏 외치는 시대에, 작은 노력이야말로 그토록 소중한 나를 더 잘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1] https://www.bbc.com/news/magazine-33133712

[2] https://unfccc.int/news/circular-economy-crucial-for-paris-climate-go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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