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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l 26. 2021

파도는 죽어서도 다시 바다니까

파도의 힘을 이용한 조력 발전

파도는 죽어서도 다시 바다였다 
죽을 힘을 다해 
죽는 연습을 하는 최초의 생명 같았다

- 오병량, <묻다> 


재생 에너지는 영어로 "리뉴어블(renewable) 에너지"입니다. 말 그대로 재생, 회복이 가능한 에너지죠. 석탄이나 석유, 천연가스 같은 화석 에너지는 땅을 파내서 꺼내 사용하고 나면 다시 쓸 수 없지만, 재생 에너지는 항상 새로이 공급되는 자연의 힘을 이용합니다. 


재생 에너지원에는 뭐가 있을까요?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그리고 조력. 그런데 흔히 볼 수 있는 네모난 태양광 패널이나 빙글빙글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와 달리 조력 에너지에 대해서는 참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학창 시절에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해" 뭔가를 한다고 배웠던 것 같기는 한데요. 파도는 철썩철썩, 온몸을 다해 부딪치고도 어느 시인의 말처럼 "죽어서도 다시 바다"가 됩니다. 참 좋은 재생 에너지원 같은데 말이죠. 

 


조력 에너지, 별로 많이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조력 에너지는 사실 '파도(파력, wave)'라기보다 '조석 현상(tide)'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 방식입니다. 댐처럼 커다란 발전기를 바다에 설치하면 밀물일 때 바닷물이 들어왔다가 썰물일 때 쏴아-하고 빠져나가는 힘을 이용해 전력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죠. 이런 방식 말고도 파도의 움직임 자체를 이용한 에너지 생산 방식도 있는데, 둘 다 바다의 힘을 이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밀물과 썰물의 높이 낙차를 이용하든, 아니면 바람에 휩쓸린 파도를 이용해 터빈을 돌려서 전력을 만들든, 바다 에너지가 갖는 매력은 엄청난 잠재성입니다. 바다 에너지가 잠재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의 양은 연간 무려 2 TWh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는데요(테라는 1 뒤에 0이 무려 12개!), 이게 얼마나 엄청난 양이냐 하면 7억 5천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만한 전력량입니다. 게다가 풍력만 해도 바람이 안 불면 무용지물인데 조수 간만의 차는 연중무휴, 꼬박꼬박 일어나는 현상이란 것도 큰 장점이죠.  

 

그래서인지 정부나 국제기구에서 발행한 에너지 계획에서는 대개 조력 에너지를 언급은 하고 있는데요, 사실 현재 바다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양은 정말 얼마 안 됩니다. 놀라울 만큼 말이죠. 

총 에너지 중 재생 에너지 사용 비율 (2018년 기준, 도표 출처: REN 21)

위 그래프를 보면 왼쪽 전체 네모 중 노란 부분이 재생 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이고, 그걸 또 뜯어보면 저... 아래에 제일 쪼끄만 0.4%에 조력 에너지가 숨어 있습니다. 그나마도 지열과 CSP(집광형 태양광 발전)랑 합한 수치가 저렇습니다. 


대체 왜 이럴까요? 


다른 재생 에너지원과 마찬가지로, 가장 큰 문제는 비용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력 발전소가 있는데, 바로 아래 사진의 시화 조력 발전소입니다. 보기만 해도 엄청난 토목 공사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죠. 그나마 어릴 때 배웠듯 한국 서해안은 조수 간만의 차가 커서 가능한 것이지, 다른 국가들은 아예 입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비용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옵션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또, 바다라는 거친 환경에 커다란 구조물을 세워야 하고, 부식이나 염해에 따른 리스크를 해결해야 하는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습니다. 사기업들이 기꺼이 투자하고자 하는 경우가 드문 이유죠. 

시화 조력 발전소 (이미지: 연합뉴스)

아무래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력 발전도 다른 재생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정책적 인센티브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국고는 한정되어 있고, 조력 발전의 이런저런 한계로 인해 1970년에 유럽에서는 대신 원자력 발전을 밀어 주기로 했었죠. 지금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태양광이나 풍력을 더 선호하는 추세고요. 



조력 대신 조류

얼마 전 해상 풍력 발전에 대해 쓴 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다에 영구적인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이 비용적, 기술적으로 워낙 힘든 방안이다 보니 약간 휴대용(?) 같은 느낌의 부유식 구조물을 이용하는 것이 요즘 새로운 트렌드인 것 같습니다. 


조력 발전도 마찬가지로 댐이나 방파제처럼 엄청난 공사를 하는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조류 발전"입니다. 해저에 박는(?) 구조물이 아니라 기다란 부표 같은 것을 동동 띄우고, 양 옆에 달린 터빈이 파도에 휩쓸려 돌아가며 발전을 하는 방식이죠. 발전 규모는 앞서 말한 조력 발전에 비해 훨씬 작지만, 부유물이 받는 압력이 고정된 구조물에 비해 적을뿐더러 수리하기도 간편해서 유리하다고 합니다. 


특히 영국은 예전부터 풍랑이 센 북해를 이용하고자 노력을 해 왔는데, Orbital Marine Power라는 회사는 2019년부터 조류 발전 프로젝트에 착수하여 올해부터 본격 전력 생산에 도입한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이 바로 부유식 조류 발전기의 모습이에요. 길쭉하죠? 어떤 성과를 낼지 기대를 해 봅니다. 


조류 발전 터빈의 모습 (이미지: Orbital Marine Power)

파도는 죽어서도 다시 바다지만..

그러고 보면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하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싶습니다. 태양은 어디나 내리쬐고, 바람은 어디서나 불고, 바다는 이렇게나 넓고, 파도는 1년 365일 철썩거리는데 말이죠. 항상 돈이 문제고, 기술이 문제고, 정치가 문제고..  항상 재생 가능한 자연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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