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건강
<땅에 떨어진 음식도 3초 안에 주워 먹으면 괜찮다>는 소위 "3초 룰"을 아시나요? 제가 고등학교 때 친구 중 이 룰을 철저히 지키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실수로 떨군 양파링이며 새우깡을 재빨리 주우며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괜찮아, 안 죽어.
사실 뭐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굳이 아등바등 스트레스받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을지 모릅니다. 안 그래도 팍팍한 우리네 삶이니까요. 그런데 가끔은 기후변화 문제도 그렇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폭염 때문에, 가뭄 때문에 힘들다곤 하지만, 뭔가 '당장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사실 죽고 사는 문제임
여기서 찬물을 한 번 끼얹자면, 사실 죽고 사는 문제가 맞습니다. 그리고 의학계에서는 실제로 기후변화로 인한 인명 피해를 수치화하려는 노력을 예전부터 해 왔어요.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이런 연구가 있습니다. 이번 세기에만 해도 이산화탄소 4천4백 톤 가량(평균적으로 미국인 3.5명이 평생 동안 배출하는 탄소배출량 수치)이 배출될 때마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1명이 죽습니다.
이산화탄소 4,400톤 = 1명의 목숨
이라는 수식이 성립되지요. 아직 잘 안 와닿기는 합니다. (왠지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 같고 막) 그런데 이건 단지 탄소 배출로 인한 '기온 변화'만 본 겁니다. 기후변화로 인해서 생기는 극단적 기상 현상, 홍수 피해, 식량난 등은 모두 제외하고, 단지 '더워서 사망하는 사람'만 봤단 소리죠. 실제는 기후변화 때문에 태풍이 극심해져서 홍수가 나고, 집이 무너지고, 물이 부족해서 사망하는 사람도 못지않게 많을 텐데 말이에요. 그뿐인가요? 가뭄이 심해져서 산불이 나면 어마어마한 양의 연기와 재가 하늘을 뒤덮고, 이로 인해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속출하지요. 이런 것도 다 고려해야 실제 피해를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기후변화랑 신체 건강이 무슨 상관?
화석연료 사용이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피해는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1. 전 지구적으로는 "기후변화"
- 기온 상승, 폭염, 극단적 기상 현상, 강우 패턴 변화
- 폭염 및 극단적 기상 현상으로 인한 사망, 질병(물이나 음식으로 인한 수인성 및 식인성 질병, 열대에서 흔한 병원균이나 기생충으로 인한 벡터 매개 질병 등등), 식량난 및 물 부족의 영향, 정신 건강
2. 지역적으로는 "공기 질"에 영향
- 실내외 공기 질 악화
- 심호흡계 질환, 폐암, 급성 호흡기 질환, 심혈관계 질환, 뇌졸중, 정신 건강
그래서 의사들이 1차적으로는 열사병이나 천식 악화라는 진단을 내리더라도, 2차적으로는 기후변화가 사망이나 건강 악화의 원인이 된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실제로 이런 연구들도 있습니다.
1991년에서 2006년 사이에 도시에서 발생한 더위 관련 사망건의 1/3 이상이 기후변화와 관련 있다. (Nature Climate Change, Vicedo-Cabrera et al., 2021)
1991년에서 2018년 사이에 꽃가루 철이 길어진 것의 50%, 꽃가루 농도 증가의 8%가 기후변화 때문이다. (PNAS, Aderegg et al., 2021)
최근 하버드 의과 대학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공중 보건의 위협을 직시하고, 어떻게 하면 의학계 내부에서 기후변화 방지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례로 코로나 전에는 1년에도 몇 번씩 열리던 의학 컨퍼런스를 최대한 온라인으로 대체하여 비행으로 인한 탄소 발자국을 줄이자는 의견도 있지요. 코로나를 겪어보니 사실 온라인으로 업무의 상당한 부분을 문제없이 할 수 있단 점이 밝혀졌으니까요.
미세 입자의 위협, 생각보다 무섭다
화석연료를 태우면 단지 이산화탄소와 메탄처럼 지구를 데우는 온실가스만 배출되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인체에 유해한 다른 오염 물질도 배출되죠. 특히 크기가 2.5 마이크론 (0.0025 밀리미터) 이하의 미세한 입자를 PM2.5라고 부르는데, 이게 엄청나게 안 좋습니다 [1].
WHO에 따르면 이러한 미세 입자 오염으로 인하여 지구 상 모든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2.2년이나 줄었다고 하는데요. 이게 얼마나 엄청난 거냐면, 알코올, 더러운 물과 위생, 에이즈, 말라리아, 전쟁, 테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영향이라고 해요. 세계 인구를 고려하면 170억 년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진 셈이죠.
자동차를 타고, 제철소나 발전소를 가동하는 것이 일상인데, 여기서 온실가스뿐 아니라 이런 유해한 물질이 내뿜어져 나온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게다가 요즘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이 심해져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규모 산불이 점점 잦아지고 있는데요, 산불은 이런 유해 미세 입자를 엄청나게 배출합니다. 그야말로 악순환이죠.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니 좀 더 적극적으로
최근 기후변화의 폐해에 대한 기사가 부쩍 늘었습니다. 최근 몇 달간 해외 유력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만 해도 [2],
- 기후변화는 정신 건강에 위협. 적응 방안을 찾아야 (워싱턴 포스트)
- 서부 지역의 극단적 폭염 현상은 기후변화 때문 (뉴욕 타임스)
- 대규모 산불 겪은 그리스, 기후 위기 부처 신설 (CNN)
- 뉴욕 시, 기후변화로 강력해진 태풍 '아이다'로 인해 위기의 최전선에 서다 (AP)
- 독일, 홍수 사망자 증가, 관계자들은 원인으로 기후변화 지목 (NPR)
- 코로나19로 바뀐 우리 사회의 면면들. 이제는 기후변화의 차례다 (타임)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은 지금 파리 협약의 목표인 <2도 목표>만 달성하더라도 (지구 기온 상승 폭을 2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2100년까지 1억 5300만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지금처럼 살면 기후변화의 폐해 때문에 사망할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거죠.
적극적인 정책은 큰 힘을 갖습니다. 미세 입자의 위험성을 알게 된 이후 입안된 미국의 청정대기법(Clean Air Act) 덕에 1970-1980년의 10년 간 미세 입자가 50%까지 감소했죠. 기후변화에 대처하려고 만들어진 <도쿄의정서>도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 가스 등 물질을 규제하는 <몬트리올 의정서>의 성공에 힘입어 그 골격을 따르고 있고요. 말 그대로 목숨이 걸린 일이니, 이런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덧.
아직도 안 와닿는 분들이 있다면, KBS 다큐멘터리 <붉은 지구>를 강추합니다. 쉽고 흥미 있게 잘 만들어졌으면서도, 실제로 기후 위기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얼마나 우리 삶과 직결되어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 표지 이미지: Unsplash.com
* 참고 자료
[2] Harvard Medical Grand Rounds, <Fossil Fuel Pollution and the Climate Crisis: Patients, Practice, and Policy> 자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