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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의 원인은 자신에 대한 질문의 부재 때문이다.

지금 마음이 힘들고 무언가 고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머릿속에 부단히 질문들을 떠올릴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저 사람은 나를 왜 힘들게 할까?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그렇게 답이 나오지 않는 무한정하고 모호한 질문들과 확신 없는 대답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그 혼자만의 대화는 문제 해결은커녕 꼬이고 꼬인 실뭉치처럼 복잡하게 엉켜간다.




이러한 질문들의 공통점은 바로

외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모든 질문들은 내가 아닌 타인, 환경, 사건들에 질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나와 연결되어 있다. 실마리를 푸는 추리에는 오직 나만 쏙 빠져 있다.

중요한 키가 없으니 좀처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왜 무언가를 바라는 것인가?

그리고 나는 왜 어떤 말에, 어떤 상황에, 어떤 사람에 있어서 과민해지고 민감해지는지?

나는 어떤 것에 화내고 슬퍼하고 행복해하는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거나 우울이나 불안 등 신경증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 중 이러한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보기 어려워한다. 아니, 두려워한다는 게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일 것 같다.


자기 스스로를 보는 것은 자아를 가진 인간이라면 응당 쉽게 묻고 답을 지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고찰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상담실에서 보아온 내담자들은 자신의 과거 경험과 현재 행동에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행동의 이면에 숨어 있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를 두려워하며 상담이 오랜 시간 지나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조차 진짜 자신의 모습에 직면시키는 순간 여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제가 그랬었다고요?"라며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우리는 여태 너무 우리를 속여왔다.


가장 가까운 관계로써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부부 사이 혹은 가족 간에도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비밀이 존재한다.

잠깐 부부간의 비밀에 대해 말하자면, 사실 그런 것들은 애초에 비밀이라 부를만한 가치도 없는 별 것이 아닌 것이었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숨겨오다 보니 더욱더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대단한 비밀이자 불편한 진실이 되어버린다. 별 것 아닌 사실도 몇십 년을 알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대단한 배신과 실망감을 안길 수 있는 다루기 어려운 큰 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인식조차 못했겠지만, 자신 스스로에게도 그러한 거짓말을 했다. 다만 그것이 너무 오래되고 자신의 삶을 견인해온 어떠한 특별한 역할과 기능을 한 덕분에, 더욱더 그 진실을 파헤치기 어려워진다. 이것을 심리학 용어로 자기기만(self-deception)이라고 한다.


자기기만에 대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어떤 지루하고 의미 없는 작업을 두 그룹에게 지시한다. 그리고 두 그룹에게 각각 다른 대가를 보상한다. 한 그룹은 1달러, 다른 그룹에게는 20달러를 지급한다. 그러면 얼마 보상받지 못한 1달러를 받은 그룹은 자신이 한 작업이 생각보다 의미가 있고 재미있었다고 보고 한다.


돈으로 보상도 없고 여태 시간낭비를 한 자신의 행동을 어떤 식으로든 위안하기 위한 발버둥인 것이다.

재미없고 의미 없이 지루한 시간낭비를 했더라도 이런 식으로 자기기만을 하여 의미 있는 시간이라 인식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어쩌면 최선의 선택이다. 내가 나의 자존감과 나의 기분을 최대한 좋은 상태로 유지하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시도의 일환이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세상은 너무 험난하고 힘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알면서도 거짓말을 한다. 아니, 위안을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안해왔다.


자신을 속여서 까지 힘든 상황을 버티고 생존할 수 있게 한 것이 그 거짓말, 즉 자기기만 덕분이었다. 다만, 그것이 우리 인생 전체에 걸쳐 한 번도 들춰지지 않은 것이라, 그것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 나 스스로에게 큰 충격과 배신감을 안겨줄 것이다.


그러나 그 자기기만이 없었더라면 부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고통과 비합리적인 타인의 요구에 힘 없이 순응하고 굴복해버린 처참하게 짓밟힌 유약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피하기 위해 자기기만으로 간신히 모면한 것이다.


때문에 그 거짓말은 스스로 만든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에게 여태 한 번도 들킨 적이 없었다. 아니, 들춘 적이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 거짓이 명백히 드러난다면 자신이 여태 살아왔던 수 십 년의 인생은 속아서 행해온 공허한 시간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태 삶을 지탱해 온 거짓말을 대체할 것을 또다시 찾아야 하기에 그 불안감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담자의 이야기
40대 중반의 수영 씨는 최근 직업에 대한 허무함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인해 상담소에 발걸음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한 번도 대충이란 것이 없었다. 어린 시절 첫째로 자랐으며 부모님의 맞벌이 가정에서 그녀가 충분히 어리광 부릴 여유는 없었다. 부모님 모두 생업에 종사해야 했기에 너무나 그녀에게 쏟을 시간이 없었다. 그렇지만 우수한 학업성적을 받은 날에는 어김없이 부모님의 표정은 밝았고 맛있는 음식과 칭찬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고 힘든 날에 칭얼거리기라도 한다면 부모님은 나도 힘들다며 되려 하소연을 들어야만 했다. 그녀는 그녀의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때만 보상받을 수 있었다. 인정해주지 않았다. 잘했네 라는 말 이외에는 그녀가 들을 수 있는 작은 보상도 없었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 지나 좋은 대학교,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들어갔을 때조차 그녀는 이렇다 할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사는 것도 아니었으며 자신의 성취를 알아주는 사람 또한 이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의무감을 느꼈다.


'내가 그랬을 리 없다.', '내가 고작 그런 착각을 하고 나를 속여가며 그렇게 살아왔을 리 없다.'며 자기기만 행위는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지 않고 외면하며 기회가 있어도 회피하고 이내 본래의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거짓말을 뒤로하고, 진실한 대화를 나눌 때다.

그 대화는 꼭 필요한 것이었으며, 지금만큼 그 대화가 시기적절한 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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