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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Nov 28. 2016

"디자이너가 이런 것도 하세요?"

#14. 디자이너는 다방면의 경험과 지식을 필요로 한다.

"디자이너이신데 프로그래밍도 하세요?"

"네, 취미수준으로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아, '개자이너'시네요."



개발하는 디자이너를 부르는 '개자이너'라는 조어가 생기는 등, 디자인이라는 영역은 다양한 도전과 변화를 겪고 있다. 디자이너는 어떤 전문가인가? 그리고 어떤 분야에 특화되어야 하는가? 혹은 어떤 분야로 경험과 지식을 확장해가야 하는가?




디자이너에겐 다양한 무기가 필요하다.



본 매거진의 이전 글(#8)에서는 디자이너가 표현 기술의 전문가가 아니라 계획을 구현하는 구현 기획자로서 역할을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즉, 디자이너는 '구현을 기획하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직군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현 기획자'로서 디자이너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무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구현 기획을 위해서는 기획, 개발, 제조 부서 및 의사결정권자 등과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수없는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기 떄문이다. 이 설득의 과정은 종종 굉장히 어려우며, 때문에 다수의 경우에서 실패하고 잘못된 결과를 이끌기도 한다.


특히 디자인 분야에서 설득이 어려운 이유는 디자인이 주관적이고 모호한 성격을 많이 띄기 때문(#12)인데, 이 때 디자이너에게 설득, 또는 방어의 근거가 되는 것이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과 지식'이다. 개발 경험과 지식이 있는 디자이너라면 개발 과정의 절차와 논리를 이해할 수 있고, 개발자나 개발 부서에서 말하는 문제점 등을 받아들이고 반영할 수 있다. 제조를 소규모나마 직접 해보고 공장을 찾아가 본 적이 있다면, 제조 과정에서 발생할 문제점을 먼저 파악하고 예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이용해 더 설득력 있게 의사결정자에게 말할 수 있다.


단순히 이 디자인이 정성적으로 '좋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다양한 의사결정자를 설득시키기는 힘들다. 이 때 디자이너의 경험과 지식은 설득에 필요한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



디자인은 융합적인 분야이다.



언제부터인가 '융합 디자인'이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융합 디자인'은 마치 '역전앞'과 같은 느낌으로 들린다. 디자인은 원래 태생부터가 융합적이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융합적이어야하는 점을 강조했다면 모르지만, '융합 디자인'이라는 조어는 마치 융합하는 방식을 디자인 하는 분야인 것 처럼 들려 조금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어떤 대상이 디자인된다는 것은 우선 그 대상이 사용됨으로써 이루고자하는, 특정의 목표를 가짐을 의미한다. 여기서 먼저 '사용자'가 등장한다. 사용자는 다수의 경우 '인간'이다. 여기서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파생되며,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사용자(user)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대상을 사용해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사용하게 할 것인가'이다.


디자인된 대상은 실제로 제작될 수 있도록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프로그램'이라고 부른다. 프로그램은 꼭 컴퓨팅 과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가위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위를 이루는 각각의 구성요소들을 고민해야 하며, 어떻게 조립되어 생산될 수 있는지를 일정한 절차로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개발자(developer)라고 호칭한다.


프로그램으로 개발되고 나면 이것을 직접적으로 제조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단 하나만 제조되어 많은 사용자들에게 사용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공장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되기도 한다. 어쨌든, 제조자(publisher)들은 프로그램화된 디자인을 제조하여, 세상에 내보내는 역할을 맡는다.


위의 간단한 디자인의 구현 과정에서 사용자, 개발자, 제조자라는 세 가지의 이해관계자가 나왔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의사결정자(decision maker)는 이들 세 부서와 별개로 움직이며 가장 큰 변수가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투자자(investor)들도 변수가 된다. 또, 디자인 대상과 관계된 수없는 외부의 변수들은 디자인 과정에서 끊임없이 작동하며 그야말로 나비효과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감하게 해준다.


이러한 상황들을 지켜봤을 때, 디자이너가 단순히 미적인 표현 기술에만 몰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순진한 생각이 될 수 밖에 없다. 디자이너가 '이런 것도 하는' 게 아니라, 디자이너가 성장하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야만' 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노련한 이미지를 가져야 하며, 왠만한 자극에는 꿈쩍하지 않는 포커페이스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식을 통해 미리부터 닥쳐올 변수들을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당황하는 디자이너에게 위에서 언급한 많은 이해관계자들은, 처음부터 부정적인 자세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날개를 달아준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은 디자이너가 살아남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가져야 하는' 삶의 방비책만은 아니다. 경험과 지식을 갖춘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는 데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으며, 디자인한 결과물이 최종적으로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고 진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가진다.



Tizio, Richard Sapper


독일의 유명한 디자이너 리하르트 자퍼가 디자인한 Tizio는, 당시의 기술로 작은 크기에서 밝기를 내기가 어려웠던 한계를 넘기 위해 자동차 전조등을 활용하는 등 그의 디자인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이는 제품이며, 공학적 디자인의 대표작으로 여겨진다.


Tizio Sketch


이 램프는 관절마다의 무게중심과 길이가 절묘하게 설계되어 조명의 각도를 조절했을 때 조절된 각도에서 무게적 안정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전의 조절식 램프들이 관절마다 조임쇠를 넣어 나사를 조였다 풀면서 각도를 조절하게 했던 것에 비해 훨씬 편리하면서도 직관적인 설계이다.


이는 디자인이 단순히 미적인 표현을 뛰어넘어 다양한 관점의 연구와 어울러졌을 때 얼마나 큰 확장성과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리하르트 자퍼 본인의 디자인관에 걸맞는 형태를 가짐은 물론, 그 디자인관에 걸맞는 사용성까지도 가지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복합적인 영역이다. 외형적 형태 뿐이 아니라, 디자인 철학은 구매에서부터 폐기까지의 다양한 사용자 경험에서 표현될 수 있다. 이 때 디자이너 본인이 형태적 심미에만 집중한다면 디자인 철학의 표현이 불충분할 수 있다. 디자이너에게 많은 고민과 생각이 필요한 이유이다.

 



당연히 선무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당연하게도, 디자이너가 가진 전문성이 존중받아야 하는 만큼 타 분야의 전문성 역시도 존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약간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떤 분야에서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각 전문가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점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쌓음으로써 '디자이너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디자인을 올바르게 표현하고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디자이너의 경험과 지식이 활용될 때, 보다 본질적으로 디자인의 가치와 감성이 전달될 수 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글을 한동안 못쓰다가 겨우 완성했습니다. 많이 집중하지 못해서 조금 어지러운 글이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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