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좋은 가을날, 라라크루 여러분은 무얼 하고 보내려는지요. 혹은 하고픈 것이 있다면 나눠주길 바랍니다.
찐득한 바람 때문에 아침부터 에어컨을 켜야 했던 것이 불과 보름 전인데, 이제는 잠들기 전 열린 창문이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 지경입니다. 외출복을 입으려다가 갑자기 옷장 정리를 했습니다. 한참 더 입을 줄 알았던 반팔 재킷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옷장 안쪽에 걸어두었던 긴팔 재킷 중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준비할 겨를도 주지 않고 가을이 훅 들어왔습니다. 만끽할 여유를 주지 않고 갑자기 가버릴 것이 벌써 아쉽습니다.
이 가을, 난 무엇이 하고 싶은가 생각해 봅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나의 며느리를 돌아오게 할 전어구이 먹기? 낙엽을 잔뜩 쌓아두고 그 위에 쓰러지기? 등산복 하나 장만해서 단풍 구경 가기?
가을에만 할 수 있는 무엇이 있긴 한 걸까,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봅니다.
가을을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고 하는데, 가을은 진화론적으로 사람 역시 살찌는 계절이라고 합니다. 다가오는 추위에 대비해 몸에 지방층을 쌓아 놓으려는 인류 진화의 결과라는 것이죠. 먹을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던 과거에는 적절한 전략이었겠지만, 한겨울에도 복숭아를 먹을 수 있는 오늘날에는 미리 비축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평생, 한결같이, 꾸준히, 일관되게, 묵묵히 심지어 성실하게 지방층을 쌓으며 살았습니다. 빙하기라도 대비하는 사람처럼 말이죠. 간혹 혹독한 다이어트로 몸무게 앞자리를 바꾸고, 브이라인을 확인하고, 작은 치수의 옷으로 옷장을 재정비하던 때도 여! 러! 번! 있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나도 얼마든!'이라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나면 어찌나 어지럽던지요. 결국,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몸의 기전이 식탐으로 발현되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에는 결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핍은 때로는 우리에게 강한 성취동기를 부여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할 의욕을 심어주고, 내 삶을 성장하게 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결핍은 사람들의 생각을 좁게 만들고 자기 조절 능력을 떨어뜨리며 타인과의 관계를 왜곡시키는 정신적 병균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과잉도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체중 과잉은 저에게 강한 성취동기를 부여하고 열심히 감량할 의욕을 심어주고, 제 삶을 성장시키는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