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Jun 09. 2020

아이가 된장만도 못한가요?

20층 꼭대기, 볕이 좋은 우리 집 베란다에는 된장이 산다. 6,7년 전부터 담그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김장처럼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아파트 베란다지만 볕도 좋고 바람도 잘 불어 된장이 살기에 나쁜 조건은 아니다. 

"된장을 담근다고요? 그것도 아파트에서? 대단하세요~ 요리를 엄청 잘하시나 보다~"

된장을 담근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요리 좀 하는 여자'라는 인정을 받게 해 준다. 요리 솜씨를 검증받을 일은 없으니 "아유~~ 아니에요~"라며 겸손의 액션을 취해주면 그만이다. 

"된장 담그기 어렵지 않아요? 손이 많이 갈 텐데?"라고 물어보면 

"그냥 소금물에 메주만 담그면 끝나요~ 지가 알아서 다 해요~"라고 대답한다. 실제 내가 하는 일이 뭐 있나 싶은 단조로운 과정이기도 하거니와 여느 요리처럼 손맛이 첨가되는 구석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오해였다. 


정월이 되면 강원도에서 된장사업을 하시는 지인에게 메주를 주문한다. 국산콩을 사용해 깨끗이 만들어 믿고 살 수 있다. 메주가 준비되면 소금과 숯, 짚, 고추, 대추, 항아리를 준비한다. 잘 씻은 항아리의 물기를 제거하고 짚에 불을 붙여 항아리 안을 소독해준다. 항아리 속 남은 재를 마른 면보로 잘 닦아내고 메주를 얌전히 넣어준다. 정수기 물을 항아리 용량에 맞게 받아두고 간수 빠진 천일염을 섞어 농도를 맞춘다. 달걀을 넣어 물에 떠오른 부분이 500원짜리 동전 정도 되면 적당한 염도가 맞춰진 것이란다. 포털에서 '된장 담그는 법'을 검색하면 누구는 500원짜리 동전이라고 하고 누구는 100원짜리 동전이라고 한다. 하여, 난 가상의 300원짜리 동전 정도의 크기로 염도를 맞춘다. 된장이 들어있는 항아리 안에 염도 맞춘 소금물을 부어준다. 빨간 고추와 대추 몇 개를 넣고 마지막으로 숯을 넣는다. 가스레인지 위에 철망을 얹어 달군 숯을 소금물 위에 서너 개 넣어 "취이익~~"소리가 나면 된장 만들기의 불꽃놀이 축제가 시작된 듯 설렌다. 


60일이 지나면 '장 가르기'를 한다. 건더기는 된장이, 남은 물은 간장이 되어주는 풍요의 시간이다. 소금물 덕에 퉁퉁 불은 메주를 조심스레 건져내 메주가루와 잘 섞어 다시 항아리에 담는다. 윗면에는 소금과 고추씨, 메주가루를 섞어 두툼하게 덮어주고 맛있게 익기를 기도한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먹을 수 있는 된장이 된다. 보통 된장을 담은 그 해에는 먹지 않는다. 왠지 더 숙성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서다. 유리로 만든 김치통에 모두 옮겨 담은 뒤 냉장고에 보관을 한다. 반 정도는 그 전해에 담갔던 된장과 합쳐 겹장도 만든다. 이렇게 한 해 두 해 겹치고 덧입힌 된장은 맛이 더 깊다. 귀하디 귀한 우리 집만의 된장이 만들어진다. 

메주를 건져낸 소금물은 뭉근한 불에 몇 시간을 끓여준다. 중간중간 거품을 걷어가며 끓이고 나서 식히면 조선간장이라 불리는 국간장이 된다. 작은 항아리에 담아 숙성시키기도 하고 크고 작은 유리병에 담아두기도 한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항아리에 담아둔 된장은 매일매일 들여다보는 수고를 필요로 한다. 촘촘한 망사로 덮어놓고 유리로 된 뚜껑도 덮어준다. 볕이 좋은 날은 유리뚜껑도 열어 실컷 볕과 바람을 쏘여준다. 매일의 기상예보를 눈여겨보았다가 비가 올 것 같으면 창문을 닫아준다. 베란다에 빨래 널러 가면서 한번, 걷으러 가면서 한번, 화분에 물 주면서 한번, 베란다 청소하면서 한번. 수시로 들여다봐주어야 맛난 된장이 된다. 


그런데 몇 해 전, 이 과정을 소홀히 한 나에게 형벌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나의 된장. 홀로 쓸쓸히 베란다 한편을 지키던 그 아이는 결국... 벌레를 품고 말았다. 하얗고 통통한 애벌레가 아침만 되면 항아리 입구까지 올라와 우글우글했다. 포털에 검색해보니 '맛없는 된장에는 파리도 안 꼬이고 벌레도 안 생겨요. 그러니 아침마다 올라오는 벌레를 다 잡아서 없애시고 드시면 돼요.' , '콩잎을 덮어두면 아침에 거기에 달라붙어있으니 콩잎만 꺼내 버리면 됩니다.'라는 조언부터 '당장 버리세요!'라는 조언까지 일관성 없는 답변들이 가득했다. 들인 시간과 공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 비비며 젓가락으로 벌레를 잡았다. 얼마나 달고 맛있게 먹었는지 작은 애벌레들은 모두 비만이었다. 다행히 날이 갈수록 올라오는 벌레가 줄더니 다 잡았나 싶게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벌레마저 달려드는 된장이라 그런가, 유난히 내음도 좋았다. '나만 이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간다면 모두들 벌레 따위는 꿈도 못 꾸고 맛있다며 된장찌개를 퍼먹겠지...' 하며 안도했다. 하지만 한번 벌레 생긴 된장은 조금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았다. 저 깊은 곳에 벙커를 설치하고 숨죽여가며 때를 기다리다가 적군의 발걸음이 뜸해지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듯했다. 결국 야심한 밤을 틈타 된장을 큰 김치통으로 옮겨 담고 미련 없이 음식물 쓰레기통에 털어 넣어 버렸다. 홀가분하면서도 섭섭한 기분이었다. 일 년 동안 씨 뿌리고 물주며 잘 키운 배추밭을 엎어버리는 농부의 심정이 이러할까... 


가뜩이나 바쁘고 신경 쓸 것 많은데 유리 멘털 같은 된장까지 신경 쓰기 싫어 그만둬야지 싶다가 결국 올해도 메주를 주문했다.  내 손으로 만든 된장으로 끓인 찌개와 쌈장을 포기 못하는 이유 반, "너희 집 된장이 짜지도 않고 맛있어~"라며 매년 기다리는 엄마와 동생, 지인들이 눈에 밟힌다는 이유 반이다. 매일 유리뚜껑에 쌓인 먼지를 닦아주고 골고루 볕을 쏘이도록 항아리를 이리저리 돌려준다. 파리 따위는 얼씬도 못하게 철저히 망을 보고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한다. 


된장에도 이렇게 정성을 쏟을진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아동학대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자기 자식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애정도 쏟지 않는 부모, 아니 부모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이들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의 낯빛을 확인해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확인한다. 학교 준비물은 챙겼는지 아침밥은 잘 먹는지 넌지시 살펴본다. 하교하는 아이의 표정과 "다녀왔습니다~"라는 말투에서 하루의 고단함 내지는 기쁨을 훑어보고 달달한 간식으로 지친 영혼을 달래준다. 따뜻하게 차려낸 저녁밥을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부모가 아니면 나누지 못할 이야기들을 나눈다.  쌔근쌔근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하루 종일 무탈했음에 감사함을 갖는 것. 이게 부모의 역할이다. 끊임없는 관심으로 지켜봐 주면서 때로는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응원하기도 하는 것. 방치하고, 때리고, 가두고, 상처 주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이들은 끔찍한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는, 된장처럼 벌레나 생기는 정도의 데미지만 입는 게 아닐뿐더러 망쳤다고 함부로 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만 두면 자기가 알아서 맛있는 된장이 되는 것 같지만 실은 사람의 쉼 없는 관심과 손길이 필요한 것처럼, 아이는 부모가 낳았다고 해서 그냥 크는 게 아니다. 무관심이나 간섭이 아닌 관심으로, 방치나 집착이 아닌 사랑으로 집중해주어야 한다. 온전한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말이다. 




이전 10화 집밥 전성시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