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미야.
5인이상 집합금지니까 우리도 이번에는 양력설 대신 음력설을 쇠면 어떻겠냐? 모두 모여봐야 7명뿐이다만 나라에서 모이지 말라니 안모이는게 맞지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니?"
"네... 아범이랑 상의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예상 못한 일이였다. 먼저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20년간 어머님을 겪어온 나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 시어머님 말씀 번역기 > 에 따르면 어머님의 말씀은 이렇게 해석됐다.
"나라에서 모이지 말라고는 하는데 섭섭하기는 하고 모이자니 불안하기는 하구나. 만일 하나뿐인 며느리, 네가 양력설을 쇠자고 해준다면 못이기는척 모이도록 하마!"
적적하실 어머님의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모이지 말라는데 굳이 모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다. 친정에도 양력설 모임은 삼가하자고 이미 말씀드려놓은 상태였다. "그래도 양가 어른 찾아뵈야하지 않나?"라는 남편에게는, 정 섭섭하다면 아이들은 놔두고 우리 내외 둘만 잠깐 뵈러 다녀오자고 했다. 결국 나와 상의를 마친 '아범'이 어머님께 연락드려 양력설 차례는 미루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어머님께서 ctrl+c, ctrl+v 같은 전화를 주셨다.
"애미야. 우리 다 모이면 7명이라 그냥 모여볼까 싶기는 했는데, 그냥 안모이는게 낫겠지? 그치?"
뫼비우스의 띠인가? 메멘토?
"흐흐흐. 네~ 어머니~ 안모이는게 낫겠어요~ 저랑 애비만 잠깐 들를게요~"
명절을 명절답게 챙기지 못하는 아쉬움과 외로움을 애써 숨기시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처연해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냉정해져야 했다. 모이지 말라는데 기어이 모여 방역에 거스르는 시민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행여 코로나라는 공식적인 핑계에 올라타서 당당하게 명절을 피하려는 꼼수를 부리는거 아닌가 오해는 마시라. 조삼모사도 아니고, 어차피 해야할 일... 양력설에든 음력설에든 내가 할일이다.
다만...
모두가 며느리인 동네 지인들과 결연한 뜻을 모으기는 했다.
양력설에 모이자고 떼를 쓰는 시부모님이 계시거들랑 정중히 거절할 것.
혹시라도 우리 중 누군가가 뜻을 어기지 못하고 시댁에 가게 되거들랑...
지체없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신고해줄것.